1. 1970년대 리영희의 “비판적 중국학”이란? 리영희는 대한민국 좌파세력의 구루(Guru)다. 현재 50-60대 한국 인텔리들은 젊은 시절 리영희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적 이상주의를 키웠다. 여러 논객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로,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사상의 은사”로, “허구의 시대에 정직하게 살려고 했던 인간의 징표”로 미화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여러 차례 리영희의 저서를 통해 현실에 눈뜨고 가치관을 정립했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예컨대 2010년 1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좌파 진영에서 ‘적폐’ ‘농단’ 등의 극단적 용어로 우파 진영에 덮어씌우는 프레임 전략을 비판하고 나섰다. 좌파 진영이 정의와 선의를 독점하고 있는 양 자처하고 나서서, 대중을 선동하고 반대 진영을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민주적인 사법제도를 후퇴시키는 행태라는 것이다.김태규 부장판사는 12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농단”과 “적폐”라는 용어의 불편함’이라는 글에서 “최근 2년간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상당수가 ‘적폐’와 ‘농단’을 들지 않을까 싶다”면서 “이 용
정상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죄다 뒤틀리고 뒤집히고 뒤로 가고 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 그러하다. 망해가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망한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연 예전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했다. ‘결코 돌아갈 수 없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이미 그렇게 된 것일까? 최근에 일어난 신임 법무부장관과 관련된 입시부정과 사모펀드 의혹을 보면서, 이것이 좌파들의 민낯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이 바보 취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에 화가 많이 났다고 한다. 원래는 더 강한 수위로 말하려다 많이 절제했다는 여권 핵심 관계자발(發) 전언이다.반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29일 입장문을 통해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검찰은 충실히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검찰개혁은 개혁대로 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는 수사대로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24일 "(조국 장관)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30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언주 무소속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극렬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좌파들의 소위 '검찰 개혁', '조국 수호' 집회에 대해 "권력의 친위부대가 위압적 집회시위를 벌이는 것은 과거 나치의 친위대나 중국 공산당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일종의 전체주의 파시즘 현상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이언주 의원은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조국 게이트를 수사하고 있는 서초동 검찰청 바로 앞에서 문재인 정권의 친위부대들이 조국 장관 수호와 검찰 개혁을 외치며 대규모집회와 시위를 하며, 검찰을 압박했다"며
1. “NL주사파” 시대 유감 1990년 가을, 서울 도심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도심에서 모종의 정치집회를 마친 운동권들이 떼를 지어 전철을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퇴근길 붐비는 그 전철 안에서 학생 한 명이 불쑥 소리쳤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보나마나 그는 NL(민족해방노선)계 운동권이었다. 시민들은 힐끔힐끔 기세등등한 그 학생을 곁눈질했다. 눈살을 찌푸리는 승객들도 있었지만, 항의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짧은 침묵이 살얼음처럼 쫙 퍼지는데, 뒤쪽 끝에 서 있던
제 2부 연재를 시작하며 2018년 1월부터 1년 넘게 펜앤마이크를 통해서 "문혁춘추: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를 연재해 왔다. 35회의 연재를 통해 대략 1948년에서 1962년까지 15여 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펴 보았다. 2부에서는 "문화대혁명"(1966-1976, 이하 문혁)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려 한다. 의 제호를 내걸고도 왜 우리는 그 이전의 역사에 1년 이상 머물러 있었나? 문혁은 중국공산당의 혁명투쟁 과정에서 배태된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문혁의 출발점은 1940년대 연
39살,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영화판에서 본격적인 문화전쟁을 시작하고 만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문화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영화인총연합회의 회장이셨던 김지미 선생님과 영화배우 이대근 선생님의 경고에도, 이문열 선생님의 문화계 98%를 좌파가 장악했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계는 점점 더 전체주의화 되어가고 있다.이제는 몇 % 남았냐는 질문을 하지 말고, 몇 명 남았냐고 물어봐 달라는 남정욱 작가의 자조 섞인 말과 12인승 버스면 된다는 필자의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일 정도로 문화계는 완전히 초
일본이 드디어 한국의 급소를 찔렀다. 일본의 핵심소재 대한국 수출금지에 대한 한 언론의 표현이다. 일본정부는 4일부터 반도체 공정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과 에칭가스(불화수소), TV·스마트폰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절차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그동안 자국의 업체가 이들 3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한번 포괄적인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포괄허가'를 부여했다. 이런 우대 조치가 폐지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운동권 정권의 경제정책, 외교정책, 대북정책은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완전 실패작’이다. 탈원전(脫原電)과 수중 보 해체 등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실패했나? 이 거대한 실패의 궁극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걸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야 국민이, 20~30~40대가, 여성들이, 운동권 정권을 지지한다는 40%대 여론이 역사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은 보다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운동권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 이유로는 흔히 베네주엘라 식 포퓰리즘, 반(反)기업 발상, 지나
여당인 민주당은 지난 4월말 재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배제하고 바른미래당, 정의당, 평화당과 더불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공수처 설치 법안 등 4대 법안을 패스트 트랙 절차로 입범하기 위해 제1야당의 반대를 따돌리고 폭력적으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상정했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경우 여당인 민주당과 정의당 등 좌익 정당이 실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 정도를 초과해 과반 의석을 확보할 확률이 대폭 증가하여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닦게 되고 공수처로 법원, 검찰을 장악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려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5回. "人民民主 人格殺害: 國家主席의 最後" 1. 몰아치는 문혁의 광풍 1966년 5월부터 1976년 9월, 10년간의 세월 동안 중국 전역에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쳤다. 문혁을 직접 겪었던 중국의 중·노년층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중국에선 전국 어디에서나 크고 작은 대중집회가 열렸다. 동료에 대한 직접적 비판과 자아비판을 강요받던 비판회(批判會), 공공기관과 작업장에서 주자파(走資派), 수정주의자 등을 색출해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 집단린치를 가하는 투쟁회(鬪爭會), 모택동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4回. “黑苗와 白描의 辨證法” 1. 혁명이냐, 생존이냐? 대약진운동의 처참한 실패 이후 중공지도부는 두 패로 갈렸다. 모택동이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세력)라 비판했던 개혁세력은 대기근의 참사를 수습하고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를 회복하려는 실용주의자들이었다. 반면 모택동이 이끄는 강경세력은 자력갱생의 구호 아래 핵무장을 추진하는 한편 계급혁명의 깃발을 내걸고 이념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1961-1965년 사이 유소기와 등소평에 의한 경제개혁이 한참 진행될 때, 실제로 이 두 세력
2018년 3월 8일 워싱턴 백악관 뜰에서 문재인정부의 대북특사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직접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변했다. 그때부터 지난 2월 28일 하노이 미북협상 결렬까지 약 1년 동안, 북한은 실로 ‘역사적인’ 외교행적을 남겼다. 김정은은 집권이후 2017년 11월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보다 무려 3배 이상의 미사일 도발과 4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은 도발을 멈추고 무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유례가 없던 미북정상회담까지 두 번이나 치른 것이다. 이는 ‘비핵화’를 넘어 ‘종전선언’과 ‘한반도평화
문재인 정부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예측 가능한 정권이다. 집권하고 나서 이러저러한 사고를 낼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단지 그 정도와 스피드가 놀라울 뿐이다.북한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간 얘기가 됐으며, 외교도 전반적으로 엉망진창 수습 불가능한 상태로 보인다. 경제정책은 애초부터 성공이 불가능한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며, 자신하던 일자리 창출은 점점 더 악화일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쓴 22조 원 같으면 연봉 2,200만 원짜리 일자리 백만 개를 만들 수 있는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소식이 독일에 널리 퍼진 것은 1870년이었다. 파죽지세로 환락의 도시 파리까지 밀고 들어갔던 독일 시골뜨기들의 눈빛이 서서히 불온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보불 전쟁의 결과였다. 민주주의는, 전쟁이라는 배양기 속에서 자라나 전염병처럼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1차 세계 대전은 바이러스의 폭발적 증식을 만들어 냈다. 전쟁은 민족을 만들어냈고 민족은 전쟁을 불렀다. 총력전 체제 하의 국민들에게는 민주주의와 복지라는 전리품 혹은 뇌물이 주어졌다.1차 대전은 민족의 출현, 민중의 각성을 만들어 냈다. 러시아가 선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30회. “차르(Czar)의 유토피아” 1. 대약진의 신기루 대약진운동의 깃발이 중국 전역에 나부낄 때, 인민의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유토피아란 차르(Czar)의 의식을 점령한 신기루일 뿐이었다. 모두가 차르의 신기루를 바라보며 유토피아의 꿈을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중공중앙의 고위급 관료부터 산간벽지의 농민들까지 모두가 한 입으로 거짓말을 해야 했다. 모두가 스스로 내뱉은 거짓부렁에 속아야만 했다. 불가능을 꿈꾸며 굶어죽던 시간이었다. 기만과 허위의 계절이었다. 농촌의 현실에 입각해 생산
지난 11월 24일 열린 중등교사 임용시험의 역사교과 지원자들이 치른 역사 과목의 문제들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어찌 그리 현 집권 세력과 그 동조자들의 왜곡된 생각과 편향된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그중 한 문제는 특히 필자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적 공산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다자오(李大釗, 한국식 발음은 이대교 이대조 이대소 등 여러 가지이다)이 “신청년(新靑年)”에 기고했던 글을 그대로 실었다. 리다자오는 중국 자유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점진적 개량주의의 거성인 후스(호적 胡適)를 비판하면서 아래와 같이
2019년 한국경제는 한 마디로 '경제대위기'의 쓰나미가 안팎에서 몰려오고 있는 형국이 될 전망이다. 얼마 전 물러난 김광두 전 경제정책자문회의 부의장의 "경제위기 논쟁은 한가한 말장난이며 한국경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처럼 한국경제는 금융위기가 아닌데도 이미 벌써 금융위기와 같은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경제는 지금 국가비상사태라"는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진단마저 나오겠는가. 가장 큰 원인은 현재의 심각한 경제상황에 대한 청와대와 정책당국의 안이한 진단과 '소득주도성장정책'
1. 이재수 장군의 투신자살에 문 정부의 침묵.이재수 장군은 내가 보병학교 교관시절(1981~1984) 보교 교장이신 차성호 장군의 전속부관(이 중위)이었고, 당시 '이 중위'는 정직하고 명예심이 강한것으로 기억된다. 2010년에는 대구 2작사에 훈련을 가서 '이 장군(인사처장)'을 만났는데 그때도 과거 '이 중위'의 모습 그대로였다.이재수 장군의 자살사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여당은 침묵하고 있고, 위로의 빈말 한마디도 없으니 참으로 비정하게 보인다. 사나운 짐승들도 자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