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노동시장, 무너진 대학, 무너진 언론, 분열된 사회, 과연 다시 세울 수 있을까?
​​​​​​​좌파의 민낯을 보고나서야 이제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10.3 자유시민항쟁’은 좌파들의 평등, 공정, 정의를 거부하는 외침이다.
지금 이런 뒤틀린 상황은 선거를 통해 만들어졌고, 새로운 상황도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좌파들의 ‘지지 않는다는 선거’, 막을 수 있는가?
못 막으면 우리 자녀들은 그들 자녀들을 섬기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아는가?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정상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죄다 뒤틀리고 뒤집히고 뒤로 가고 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 그러하다. 망해가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망한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연 예전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했다. ‘결코 돌아갈 수 없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이미 그렇게 된 것일까? 최근에 일어난 신임 법무부장관과 관련된 입시부정과 사모펀드 의혹을 보면서, 이것이 좌파들의 민낯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자영업자든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이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믿었던 문재인정권의 평등, 공정, 정의가 그들만을 위한 공정과 정의인 것을 알게 되었다. 뒤틀리고, 뒤집히고, 뒤로 가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어제 도심 광장에 나왔다. 그들에게 속았다는 사람들이 조국사퇴, 문재인 심판을 외쳤다. 꿈과 희망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순간이다. 더 늦으면 아무도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망한 나라가 되고 만다. 이제 바로 잡아야 한다. 10.3 개천절에 현 정권 규탄을 위해 광장에 나온 엄청난 숫자의 인파는 좌파의 민낯과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징후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무너진 노동시장

얼마 전에 지방 대도시의 한 중소기업의 사장에게 들었던 얘기이다. 그 회사는 100여명 되는 직원을 가진 오랜 업력의 중소 제조 기업인데, 최근에 신입사원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퇴사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워낙 신입사원들의 퇴사가 빈번해서 이제는 직원을 뽑고 교육시키기가 두렵다고 했다. 그 사장은 청년실업난을 다른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에는 일자리가 있는데도 청년들은 취업하려 하지 않고, 취업해도 평생직장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요즘의 많은 젊은이들은 대기업이 아니면 어떤 한 회사에 소속되기를 원치 않고,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더라도 일정 기간만 근무하고 퇴사하는 일을 반복한다고 한다. 더욱이 어떤 한 회사에 장기적으로 근무하려는 생각보다는,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알바’를 선호하며, 돈이 필요하면 알바를 두 곳을 뛴다고 생각하고, 돈이 모이면 놀거나 여행 다니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자리 찾는 젊은이들이 흔하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최저임금의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그리고 실업수당이나 청년수당 탓이라고 했다. 복지에 맛 들려 직장을 갖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세태를 얘기하며 한숨지었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입사한 직원에게 나가는 연 지출액이 약 3,500만 원정도 된다고 했다. 여기에서 2년제 대학을 졸업하거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거나 군대를 필할 경우에 직원들의 급여는 그보다 많아야 해서, 최저임금이 인상된 이후 적자가 크게 늘어 폐업을 생각한다고 했다. 인건비가 늘어난 만큼 생산성이 오른 것도 아니고, 납품가가 오른 것도 아니라, 인건비가 오른 만큼 회사의 적자가 쌓여서 그 누적 적자로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자영업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듣는 얘기이다.

업종과 지역적 특성에 맞지 않게 강제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무너져 버린 노동시장은 회사들을 폐업으로 몰고 있다. 적자가 일상화된 회사들은 당연히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일하지 않으려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나라는 망한 나라이다. 머지않아 일하고 싶어도 일할 회사가 없어질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현재와 같은 풍요를 사치라고 하게 될 것이다. 이 풍요는 그동안 부모, 선배 세대가 열심히 노력하고, 이웃하고 있는 국가들의 지원과 그들과의 협력으로 누려온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수준과 실력에 비해 과분한 것이었다. 이제 이 풍요가 끝나가고 있다. 더욱이 이웃 국가들의 도움에 감사해하고 협력을 강화하기는커녕 뒤통수를 치는 것이 바로 우리이다. 좌파들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농경사회를 지향한다.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알 리가 없다. 북한과 함께 우리 민족끼리 협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그것도 결국은 농경사회를 지향하는 수십 년 전의 운동권 시각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그들은 잘 모른다. 이렇게 뒤틀어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 뒤집힌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이 정권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드디어 알게 되었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그 사람들은 산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가상화폐, 사모펀드를 이용해 사기를 치거나 태양광, 스마트시티 등의 이름으로 정부 예산을 빼먹는 것에는 능숙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나만 바보가 된 것을 느끼게 된다. 도저히 이런 나라를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사람들이 ‘10.3 자유시민항쟁’에 나왔던 사람들이다.

무너진 대학

최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교수가 현재 베스트셀러로서 관심을 끌고 있는 ‘반일종족주의’ 책의 내용을 수업 중에 설명할 때, 교수의 강의 내용에 반대 생각을 갖고 있던 한 수강생이 강의를 녹음하여 어떤 언론매체에 제공하고, 이 내용이 거두절미되어 보도됨으로써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류교수는 여러 단체들에 의해 고소를 당하여 현재 경찰의 수사를 받는다고 한다. 그 대학교는 류교수의 강의를 중단시키고 대체강사를 투입한다고 하였다. 학교는 경찰 수사결과를 보고 징계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대학에 학문과 연구의 자유가 있는가‘ 물어야 할 때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강의 중에 공산주의자가 되자고 선동하는 실정법의 위반에 대해서는 학문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류교수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바로 경찰 수사에 들어간다. 강의 내용을 이유로 강의를 박탈한 그 대학은, 스스로 ‘진리와 자유의 터전’이라 해왔던 주장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훌륭하게 유지해 왔던 학교의 명성이 훼손됨을 알고 있을텐데, 대학에서 ‘진리와 자유’를 지키는 것보다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박유하교수의 학술서적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법적 소송도 이와 유사하다. 학술적인 공간에서 마련되어야할 이성적인 논쟁이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처리되었다. 이렇게 되면 대학에서는 더 이상 ‘진리’나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박유하교수가 기소되었을 때 해외의 많은 학자들이 특히 많은 좌파 학자들까지도 형사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면서, 학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가 공권력에 의해 처리되는 우리나라의 후진성에 우려를 보냈다. 이제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학문의 영역에서 논쟁을 통해 밝혀져야 할 일들이 공권력의 수사를 받고 형사기소가 되고 재판에 의존하여 형사처벌의 유무로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 일반화된 사회가 되고 있다.

대학은 ‘학문을 통한 진리탐구‘를 위해 설립되었고, 유럽과 미국이 현재 세계를 선도하는 힘은 대학에서 나온 것이고, 현재 모든 대학들은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하고 있다. 대학의 자유가 현대 문명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근대 이후의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강의와 연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고 하고 신분보장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류교수에 대한 경찰 수사와 대학에서의 강의 배제는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더 이상 학문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진리 탐구의 산실로서 대학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다. 진리는 자유가 보장된 토론을 통해서 다가갈 수 있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 중에 한 교수의 발언 내용이 학생에 의해 고발당해 경찰 수사를 받는 것은 히틀러 나치시절 독일이나 스탈린 시절 소련이나 모택동 시절 문화혁명 때 중국의 대학에서 보았던 것이었다. 지금 한국도 그런 전체주의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북한과 닮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이 ’10.3 자유시민항쟁‘에서 태극기를 들었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공정과 정의를 정의부(Ministry of Justice)라 불리는 ‘법무부’장관이 유린하면서 무너진 ‘사회정의와 윤리’를 걱정하는 교수들이 현재 1만명이상 시국선언에 서명하고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 교수들도 ‘10.3 자유시민항쟁’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무너진 언론

지난 주말 검찰청사 앞에서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촛불시위가 있었다. 언론 보도에 검찰개혁의 내용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관심도 없다. ‘조국수호‘라는 인쇄물을 들고 있는 사진과 몇 명이 모였나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여당 원내대표는 처음에는 10만 명이 시위에 참가할 것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어느 뉴스방송에서는 갑자기 촛불시위 참가자가 80만 명이 모였다고 나오더니, 잠시 후 100만 명, 또 얼마 지나지 않아 150만 명이라고 했다. 나중에는 200만 명까지 올라갔다. 이에 흥분한 여당 원내대표는 마음속으로 참가한 사람들까지 2,0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비판 없이 기자들은 이를 받아썼고, 데스크는 검토 없이 신문과 방송에 내보냈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시도나 노력은 없고, 적어도 수십 배 과장된 숫자를 판단할 지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자기편들의 과장된 주장만 더 부풀려 보도하는 쓰레기 기사가 난무하는 그런 언론기관들이 되어 버렸다. 특히 일부 방송들은 그 정도가 쓰레기 정도가 아니라 개돼지의 똥오줌 수준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진실을 파헤치려는 한, 두 종편방송이나 한, 두 신문의 노력이 눈물겹게 보인다. 열악한 조건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몇몇 유튜브 방송의 보도가 없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지난 3년간 언론이 보여준 거짓과 조작, 또 수많은 드루킹들의 숨은 왜곡에 속은 사람들 그리고 속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모두 엄청난 좌절과 분노를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진실을 파헤치려는 시도보다는 자기편들의 과장된 주장만 보도한다. 뻔한 거짓말을 알면서도 버젓이 하는 방송,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는 신문. 이 거짓 속에서 제대로 사건의 본질을 볼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속았다는 분노 속에서, 앞으로는 쓰레기 정보를 쏟아내는 방송과 신문의 보도내용에 속지 않고, 이런 언론들을 거부해야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수만 명을 200만 명이라고 부풀려 속이려 드는 언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민들이 어제 ’10.3 자유시민항쟁‘에 함께 했다.

분열된 사회

대선 선거전 유세 중 어떤 후보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이 반으로 나뉘어 분열되고 사생결단을 내는 등 5년 내내 싸우게 될 것’이라 하였다.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적폐로 돌리고, 국민을 적으로 삼고 악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나라가 통합되겠느냐’고 했다. 불행히도 그 예언이 사실이 되었다. 영호남의 갈등이 지금처럼 심한 경우는 실로 없었다. 어떤 모임에서든 정치적인 문제로 이렇게 반목하고 갈등을 빚은 적이 없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섬기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분이 영호남을 서로 완전히 원수처럼 만들고 말았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거리에 나와 경찰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겨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다. 이웃 국가들과 관련된 80-90년 전의 일들을 들추어내어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들의 증오와 분노를 끄집어낸다. 선동으로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려 국제관계도 갈등으로 몰고 가고 이를 자파 결집에 이용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틀려서 한참을 뒤로 가고 있다. 영호남 지역으로 분열시키고, 기업가와 근로자를 분열시키고, 친일이냐 반일이냐로 분열시키고, 친북이나 반북이냐로 분열시키고, 끊임없는 분열 조장으로 뒤로 가고 있다. 돌아올 수 있을까? 좌파 선동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우리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 이들이 ‘10.3 자유시민항쟁’에 나온 사람들이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까?

경제도 안보도 교육도 모두 무너진 지금, 그들이 그토록 자신 있게 내세우는 인권은 어떤가? 굶어서 죽은 ‘탈북민 한성옥 모자’의 인권이나 중국 땅에서 인신매매 당하여 성노예로 팔려 다니는 탈북자들의 인권은 그들에게는 인권도 아니다. 인권이건 공정이건 정의건 모두, 그들에게 적용하는 것과 국민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이번에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계기로 드러났고 드디어 좌파의 실체를 국민들도 깨닫기 시작했다. 각성되지 못한 우파는 한없이 무능하다는 것을 지난 3년 동안 처절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까? 이것을 깨닫고 정말 위기를 느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 이들이 ‘10.3 자유시민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우파든 좌파든 스스로의 각성에 의해 형성되고 성장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식된 것이다. 그래서 취약하다. 그러다보니 초보자들처럼 싸운다. 해방이후의 이념 대결과 비슷한 양상이다. 그러나 이제 깨달아가는 것 같다. 아직도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건재해있고, 이들이 정권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영구집권을 꿈꾸고 있고 이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또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주던 우방이자 동맹국인 미국도 더 이상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롯이 우파 스스로의 각성에 의한 희생과 헌신에 의해서만 자유가 지켜질 수 있고, 땀과 노력이 정직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만이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기회를 살려 다시는 우리의 자유가 위협받지 않는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재앙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을까?

현재의 불행한 상황도 따지고 보면 선거를 통해 만들어졌다. 언론들에 의해 가짜 기사가 만들어지고, 많은 ‘두루킹‘들에 의해 여론이 조작되어도 결국 이것들은 선거를 위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상황도 선거를 통해, 개개인의 투표행위를 통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여당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내년 총선 승리를 다짐을 한다.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못 막으면 자유시민들의 자녀들은 그들 자녀들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계급제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10.3 자유시민항쟁!‘ 끝은 아무도 모른다. 각성된 자유시민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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