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칼럼] 중등교사 임용시험문제에 이제는 모택동 어록이 나올것인가?
[강규형 칼럼] 중등교사 임용시험문제에 이제는 모택동 어록이 나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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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주의의 원형은 리다자오(李大釗)의 사상
한국 좌파 주류의 뿌리는 모택동주의에서 파생된 민족해방(NL)혁명론
現집권세력과 그 동조자들의 왜곡된 생각과 편향된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한 임용시험
앞으로 “모택동 어록(語錄)”이 국가고시에 나올 것인가
양심이 마비가 된 한국판 홍위병들이 날뛰는 시대는 언제 끝날 것인가
강규형 객원 칼럼니스트
강규형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11월 24일 열린 중등교사 임용시험의 역사교과 지원자들이 치른 역사 과목의 문제들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어찌 그리 현 집권 세력과 그 동조자들의 왜곡된 생각과 편향된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중 한 문제는 특히 필자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적 공산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다자오(李大釗, 한국식 발음은 이대교 이대조 이대소 등 여러 가지이다)이 “신청년(新靑年)”에 기고했던 글을 그대로 실었다. 리다자오는 중국 자유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점진적 개량주의의 거성인 후스(호적 胡適)를 비판하면서 아래와 같이 얘기했는데, 요번 임용시험은 이 구절을 그대로 지문으로 상요했다. 볼셰비즘은 러시아를 공산화한 레닌주의라고 짧게 요약할 수 있다.

“고백하건데 나는 스스로 볼셰비즘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당시 온 세상이 미친 것처럼 협약국의 전승을 축하할 무렵, 나는 “볼셰비즘의 승리”라는 글을 써서 “신청년‘에 실은 적이 있습니다. ... (중략)... 결국 볼셰비즘의 유행은 실로 세계 문화상의 대변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좌파 주류의 뿌리가 모택동주의(Maoism)임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모택동은 중국이 반(半)식민지·반(半)봉건적인 사회이기에 민족해방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으며, 농민이 대다수인 중국 사회에서는 정통 공산주의와는 다르게 “농민-노동자 연대”의 혁명을 주장했다. 이런 그의 사상은 그대로 한국에 수입돼 한국의 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이란 거대담론의 형태를 띠고 NL(민족해방)혁명론의 근거가 됐다. 이러한 사상은 리영희, 박현채, 안병직(안병직 등 일부는 후에 모택동주의를 버리고 자유주의로 전향)등에 의해 널리 퍼졌고 결국 1980년대 학생운동과 혁명운동의 노선투쟁에서 PD(민중민주주의파)계를 압도하고 NL계가, 그중에서도 주체사상파가 승리하는 이론적 배경이 됐다.

김일성 자신이 주보중(주바오종 周保中) 휘하의 중국 공산군 소속으로 활동했기에(향후에는 소련의 88국제여단 소속 대위) 중국공산주의와 한국공산주의는 쌍둥이처럼 닮은 점이 있다. 중국 공산당의 창설자이자 공산주의의 아버지는 베이징대 인문대 학장을 지내던 진독수(천두슈, 陳獨秀)였다. 그는 베이징대 학장(총장)이었던 채원배(차이위안페이, 蔡元培)가 제공한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에서 여러 사상을 접하게 되며 결국 공산주의자가 됐다. 그는 중국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사람이었다. 반면 베이징대에서 도서관 주임(도서관장)을 하던 리다자오는 공산주의의 중국식 변용을 주장하면서 중국식 공산주의의 아버지가 됐다. 그 밑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공산주의에 빠져든 사람이 바로 모택동(마오쩌둥 毛澤東)이었다.

이후 모택동은 중국공산당의 주요 지도자로 성장했지만, 초기에는 결코 유일무이한 최고지도자가 아니었다. 그와 언제나 권력을 놓고 다투고 이론적으로 대립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립삼(리리싼 李立三)과 장국도(장궈타오 張國燾)가 대표적 인물이었다. 모택동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옹호하는 소련파 이립삼을 맹렬히 비판했고 그 이후 중국에서 “이립삼 노선”이란 단어는 극좌모험주의를 뜻하거나, 외국의 예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교조주의의 대명사로 악용됐다. 장국도는 모택동이 사서로 있을 때 베이징 대학교의 정식 학생이었다. 정식학생이 아니었고 일개 도서관의 직원이었던 모택동을 장국도는 업신여겼고, 사상적으로도 소련식 공산주의를 추종했다. 즉 이립삼과 장국도는 한국식으로 얘기하자면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고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을 주창했던 한국의 PD파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반면 리다자오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던 모택동은 소위 NL파였던 것이다. 리다자오의 민족해방을 중시하는 혁명론과 중국 농민이 혁명세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고스란히 모택동에게 전수됐던 것이다. 리다자오는 나중에 만주군벌 장작림(장쭤린 張作霖)에 의해 처형됐다.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는 다 죽게 된 모택동을 살린 것은 장작림의 아들인 장학량(장쉐량 張學良)이었다. 그는 1936년 시안(西安)사건에서 장개석을 감금하고 국공합작을 강요해, 궤멸 직전에 빠진 모택동과 중국공산군을 위기에서 구출했다.

리다자오는 한국의 중등교원 임용고시의 역사 과목에 나오기에는 그다지 적절치 않은 문제라고도 보이지만 현 집권 세력의 입맛에는 딱 맞는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교사지망생들은 이런 사상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 이 쪽 방향으로 공부를 하게 마련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광화문에서 그리고 여러 다른 곳에서 노골적으로 “백두칭송위원회”같은 사람들이 벌이는 김정은 “위인 맞이” “축제”가 한창이다. 폭압 통치를 하고 자국민들은 물론 인척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그가 왜 위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지금 이르게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는 1980년대부터 싹이 트고 성장한 민족해방혁명주의가 만개했음을 직접적으로 목도하고 있다. 좌파 이념 중 가장 낙후되고 저급한 NL민족해방혁명주의가 한국좌파의 주류가 된 것은 한국사회 자체뿐 아니라 한국좌파권에도 비극이었다. 이제는 앞으로 “모택동 어록(語錄)”이 여러 국가고시에 나올 판이다. 모택동을 추종하며 미쳐 날뛰던 홍위병들의 “업적”에 대한 문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양심이 마비가 된 한국판 홍위병들이 날뛰는 시대이다.

모택동과 문화혁명을 찬양하는 얼치기 서적을 마구 써대면서 한국의 지식토양을 오염시킨 리영희를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는 대통령이 벌써 두명 째이다. 그러니 이러한 문제들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집권 세력과 그 추종자들이 중국공산당 이론의 계보를 제대로 아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모택동과 그 세력들이 중국 대륙에 벌여놓은 수천만 명이 죽어 나간 아비규환 살육극의 생지옥에 대한 지식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독자들은 일단 펜앤드마이크에서 연재되는 송재윤 교수(캐나다 맥매스터 대 교수)의 “문혁춘추“를 읽어보시라. 그리고 프랑크 디쾨터 홍콩대 교수가 샅샅이 연구하고 집필한 소위 [마오 3부작](1부 [해방의 비극]; 2부 [마오의 대기근]’; 3부 [문화대혁명], 열린책들)을 읽어보고 진실을 파악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것을 읽고 나서도 모택동을 찬양하고 리영희를 존경할 마음이 생길런지... 한국판 홍위병 시대는 언제쯤 끝날런지...

*리다자오의 이름만 한국어식 표기를 선행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이름의 한국어식 발음이 아직 통일되지 않고 여러 발음으로 불리기 때문임을 알려드립니다.   

강규형 객원 칼럼니스트(명지대 교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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