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D Day). 영연방군 담당 ‘주노 해변(Juno Beach)’. 영국군 국왕연대(King’s Regiment)는 해안의 장애물들을 뚫느라 손실을 많이 입었지만, 독일군의 저항을 뚫고 내륙으로 진격했습니다.국왕연대 8대대의 제임스 퍼시벌 드 레이시(James Percival de Lacy) 상사는 독일군 12명을 사로잡았습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적개심을 누르면서, 그는 두 팔을 든 포로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형제 하나는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과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드 레이시 상사는
어떤 사회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한 개인들에게 공과 허물을 얼마만큼 돌려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회적 사건은 여러 거대한 힘들이 작용해서 일어나므로, 개인들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그런 거대한 힘들을 놓칠 위험이 커집니다.이런 위험을 일깨워주는 사건은 1905년의 을사조약 체결입니다. 대한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이 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책임이 컸다고 일컬어진 당시 대신들은 ‘을사 오적’이라 불렸습니다. 그 사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그들의 허물에 대한 평가가 너무 거
얼마 전에 공정식 장군이 서거했습니다. 이제 6.25전쟁에서 싸운 해병대 주요 지휘관들 가운데 살아계신 분들은 몇 분 안 될 것입니다. 또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려왔습니다.공 장군은 우리 마음에 ‘도솔산 싸움’과 함께 새겨졌습니다. 그는 많은 싸움들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역시 우리에겐 치열했던 ‘도솔산 싸움’에서 그가 세운 공이 부각됩니다. 아쉽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해병대에서 복무한 사람들을 빼놓으면, 그 싸움도 거의 잊혀진 듯합니다.대한민국 해병대는 6.25 전쟁에서 처음부터 미국 1해병사단에 배속되어 실
‘사기(史記)’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열전(列傳)입니다. 사기는 중국 고대 왕조들의 편년사(編年史)인 본기(本紀), 연표, 부문별 문화사인 서(書), 열국사(列國史)인 세가(世家) 및 개인들과 집단들의 전기인 열전으로 이루어진 통사입니다. 기전체(紀傳體)라 불리는 이런 역사 서술 방식은 한문 문명권에서 기본적 방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70권이나 되는 열전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혹리열전(酷吏列傳)’입니다. 혹리는 ‘혹독하고 까다로운 관리’입니다. 법을 집행할 때 사정을 살피거나 대상에 따라 법을 달리 적용하
청문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드러난 조국 법무부장관의 행태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그가 평생 위선적으로 살아왔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런 위선들이 연속적으로 탄로날 때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이 분명한 변명들을 내놓는 태도가 더 놀랍다는 얘기였습니다.하긴 그런 태도는 조국 장관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내로남불’이 현 정권을 상징하는 구호가 되었다는 사정이 가리키듯, 현 정권 전체가 그렇습니다.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의 행태를 이해하려면, 이념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
이웃이 정 싫으면, 개인은 이사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마음을 많이 써야 합니다. 이웃들보다 힘이 약하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특히 국제 규범들을 잘 지켜야 합니다. 국제 규범들이 허물어지면, 모두 손해를 보지만, 약한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손해를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웃 나라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들의 행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우리와 일본 사이의 분쟁에서 이런 점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한국 정부는 국제 규범들을 지키지 않아서
[1884년 12월 초순(음력)의 제물포. 급진적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났을 때의 일입니다. 거사 주도 세력은 일본으로 망명하려고 제물포항에서 일본 선박 ‘치도세마루(千歲丸)’에 몰래 탔습니다.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세관 업무를 관장하던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가 병력을 이끌고 이들을 쫓아왔습니다. 그는 ‘치도세마루’에 타려던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에게 도피한 조선인들을 하선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법을 어긴 죄인들을 인도하라는 폰 묄렌도르프의 요구
[미국과 중국이 격렬하게 대결하는 상황이 되면서, 중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한국전쟁을 상기시킨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1956년에 나온 선전 영화 을 다시 상영하는 것이 이런 움직임을 상징한다는 얘기였습니다.영국 잡지 기자가 을 보고 나서 쓴 글이 흥미로웠습니다. 오만한 미군이 중공군을 깔보고 공격했다가 용감한 중공군과의 백병전에 져서 두 손 들고 도망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라고 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후퇴하는 미군 병사들이 돌아서서 싸우도록 하려고 그들에게 기관총을 쏘라는 명령을 내리는 미군
[얼마 전에 박근(朴槿) 대사가 서거했습니다. 외교에 일생을 바친 분입니다. 은퇴한 뒤엔, ‘한미우호협회’를 여러 해 동안 이끌면서, 민간 외교에 진력했습니다.외교 능력은 국력에 비례하는지라, 우리 국력이 크지 않았던 시절 우리 외교관들은 무척 힘든 처지에서 국익을 지키려 애썼습니다. 박 대사는 북한과의 대결이 특히 첨예했던 제네바와 국제연합에서 대사로 활동했습니다.북한의 핵무기가 현실적 위협이 되었을 때, 그는 중국을 움직여야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한국과
[얼마 전에 한 부대에서 복무했던 선배와 만나 점심을 들었습니다. 군복 입었을 적 얘기를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해서 아쉬웠다면서, 글을 보내왔습니다. ‘태극기 집회’의 성격에 대한 통찰이 담겨서, 감명을 받았습니다.“복형. 제가 처음 한 겨울 아스팔트 위에 섰을 때, 저는 심장 수술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려웠지만, 차라리 길바닥에서 쓰러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자식들도 극좌로 돌아서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깃발 주변에서 만난 분들이 서로 인사하면 인연이 모두 닿아 마음을 터놓는 것
[권력은 칼날과 같습니다. 가볍게 잡아야 합니다. 힘주어 잡으면, 손을 벱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권력은 가볍게 쥐고 대신 덕을 두텁게 해서 자신의 도덕적 권위를 키웠습니다.대통령 선거에서 ‘적폐 청산’을 공약으로 내걸면, 권력을 가볍게 쥘 수가 없습니다. 저항이 거세니, 칼날을 잡은 손에 힘을 점점 더 주어야 합니다.권력을 잡은 대통령에게 ‘적폐’의 상징은 전임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임자들을 핍박하고 궁극적으로 초라하게 만듭니다. 당장은 보복으로 속이 시원할 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요즈음 잇달아 나오는 일들을 보노라면, ‘하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기되 놓치지 않는다 (天網恢恢 疎而不漏)’는 옛 말씀이 떠오릅니다.그래도 당장은 하루가 다르게 나라의 기틀이 허물어지는 터라서, 마음이 어둡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라를 지킬 힘이 빠르게 빠지고 있습니다. 특히 안보에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져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실은 앞으로 더 나빠질 것처럼 보입니다.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인지라, 역사적으로 우리에겐 지정학적 조건이 유난히 중요했습니다. 한 나라가 둘로
[지난 달 초순에 러시아의 인권운동가 류드밀라 알렉세예바(Lyudmila Alexeyeva)가 서거했습니다. 향년 91세. 압제적인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인권운동을 하면서, 온갖 박해를 받은 분이 그리 오래 산 것은 경이적입니다.그녀는 1960년대 후르시초프(Nikita Khrushchev) 정권 시절에 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소비에트 헌법을 존중하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습니다. 그런 구호를 외치는 것이 어떤 고난을 가져올까 생각하면서, 플래카드를 들었다고 뒤에 술회했습니다.놀랍지 않게도, 그녀의 예상은 적중
[얼마 전 남북한이 공동으로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화살머리고지는 철원에 있는데, 이 지역은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라 불렸을 만큼 치열한 싸움들이 벌어졌던 곳입니다.‘화살머리고지’는 ‘Arrowhead Hill’을 직역한 것입니다. (Arrowhead의 옳은 번역은 ‘화살촉’입니다.) 원래 이 지역이 미군 1군단의 작전 구역이어서, 중요한 지형들은 영어 이름을 얻었습니다. White Horse Hill, Porkchop Hill, Eerie Hill 및 Old Ba
[얼마 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종복원기술원이 지리산에서 등산객들로부터 음식을 받아 먹던 반달곰을 붙잡았습니다. 작년에 지리산에 방사된 새끼 반달곰이라 합니다. 야생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사육하기로 한 모양입니다.사람들이 기른 동물들이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근본적 이유는 물론 그들이 살 터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곰과 같은 맹수는 사람과 자주 부딪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조건은 채워질 수 없습니다.또 하나의 이유는 어미로부터 야생에 필요한 지식을 물려받지 못한 것입니다. 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인
[지난 8월 중순에 임광규 변호사가 서거했습니다. 좌파 정권들 아래서 ‘헌법을 생각하는 모임’ (헌변)을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대한민국의 기틀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으려 애쓰신 분입니다.신문에 부고가 나오지 않아서,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전해 듣고 인터넷에 들어가보니, 그 날 발인했다고 나왔습니다. 임 변호사는 원래 ‘인권변호사’로 불린 분이었습니다. 이후에 우파 지식인으로 활동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신문마다 부고가 크게 났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쓸쓸해졌습니다.제가 책을 펴내서 보내드리면, 임 변호사는 이태리 음식점으로 저를 초
[현 정권이 들어선 뒤 국적 포기와 해외 이민이 크게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쳤겠지만, 우리 사회의 최근 상황에 상심한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는 분들이 제 둘레에 적지 않습니다.언젠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후예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비록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그들은 늘 부조들의 고향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화가 발달하고 예의가 바른 조선이라는 나라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얼마 전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실 비서관이 형기를 다 채우고 출소했다는 소식에 ‘아,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지금 나오지만, 감옥이 저 안인지 밖인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제 가슴에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전직 대통령 두 분이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나온 얘기라서 속이 더욱 쓰렸습니다.작년에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희곡 을 펴냈습니다. 이어 그 희곡으로 영창극(詠唱劇)을 만들어 공연했습니다.그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인심이 바뀌었음을 절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러 해 전 작가 이문열 씨와 만났을 때, 그가 좌파로부터 박해 받은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느닷없이 좌파 사람들이 이문열 씨의 책들을 태우겠다고 책을 실은 상여를 메고 그의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의 기세에 눌려, 누구도 나서서 막지 못했습니다.그때 마을 이장이 혼자 상여를 가로막고 선언했습니다, “상여는 사람 사는 마을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그래서 상엿집을 마을 밖에 짓는 것이오.” 그 한마디에 기세등등하던 억지 상여 행렬이 돌아섰답니다.이문열 씨의 얘기를 듣자, 그 당당한 이장의 모습에 중국 천안문 학살 때 전차 행렬
[대학에서 저를 가르치신 은사 한 분은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의 이념을 전파하는 데 힘을 쏟으셨고 많은 제자들을 좌파 지식인들로 만드는 데 기여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예상과 달리,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 아래 대한민국이 경이적 사회 발전을 이루자, 자신의 신념을 정직하게 성찰하셨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공개적으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우파로 전향하셨습니다.그 뒤 선생님께선 저와 많은 얘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얘기가 끝나면, 선생님께선 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시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