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고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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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8.05 10:53:29
  • 최종수정 2018.08.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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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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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이 들어선 뒤 국적 포기와 해외 이민이 크게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쳤겠지만, 우리 사회의 최근 상황에 상심한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는 분들이 제 둘레에 적지 않습니다.

언젠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후예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비록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그들은 늘 부조들의 고향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화가 발달하고 예의가 바른 조선이라는 나라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들이 3백 년 넘게 지녀온 조선인의 정체성은 빈 껍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일본인들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 제 가슴에 서렸던 감정은 지금도 그다지 무뎌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근본적인 결단입니다. 새로운 정체성이 나아서가 아니라 이전의 정체성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그 만큼 큰 불행입니다.

이번에 대한민국에 실망해서 국적을 버렸거나 이민을 간 분들께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적절한 얘기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젊었던 시절 ‘대학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총장은 영문학자 권중휘 선생님이었습니다. 이듬해 졸업식에서 총장이 한 축사에 관한 기사가 ‘대학신문’에 실렸습니다. 총장이 <실락원(Paradise Lost)>의 마지막 연을 인용하면서 사회로 나아가는 졸업생들에게 굳은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라고 당부하자, 졸업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였습니다.

<실락원>의 마지막 연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살 곳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렸죠. 권중휘 선생님께서 축사에 인용하신 구절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모릅니다만, 흔히 인용되는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Some natural tears they dropt, but wiped them soon;

The world was all before them, where to choose

Their place of rest, and Providence their guide:

They hand in hand, with wandering steps and slow,

Through Eden took their solitary way.

그들은 자연스러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내 씻었다;

온 세상이 그들 앞에 있었다, 그들의 안식처를 고를,

그리고 섭리를 그들의 안내자로 삼을:

그들은 서로 손 잡고서 비틀거리고 느린 걸음으로

에덴동산을 지나 그들의 외로운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포기한 분들과 이 땅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 분들께, 위대한 시인이 실명한 상태에서 구술한 위대한 서사시의 마지막 구절을 정표 삼아 드리고 싶습니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은 모든 사람들에게, 실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에게, 같습니다. 위에서 인용된 시구의 ‘섭리(Providence)’를 안내자로 삼는 것입니다. 밀튼이 원래 뜻했던 기독교적 섭리든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생명의 원리든, 섭리는 우리의 삶을,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들의 삶을, 인도합니다.

그런 길을 일찍 깨닫고 꿋꿋이 걸어간 선각자로부터 저는 늘 영감과 용기를 얻습니다. 얼마 전에 그 분의 삶에 관한 글을 써서 대구의 ‘매일신문’에 실었습니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스스로 돕는 길

지금 우리 시민들의 관심은 싱가포르의 미북정상회담에 쏠렸습니다. 그러나 그 회담에 관한 글은 쓰기도 어렵지만 시효가 나흘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전망하는 대신 과거를 돌아보는 글을 쓰렵니다.

1919년의 3.1독립운동은 모두 놀랄 만큼 거족적이었고 오래 이어졌습니다. 조선총독부 관리들과 일본 사회도 놀랐지만, 시위에 참가한 조선 사람들 자신들도 놀랐습니다.

조선 사람들로선 이처럼 거센 독립운동의 상황을 해외에 알리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특히 국제 정치의 중심인 미국에 알려서 미국 여론의 관심과 지지를 받는 것이 긴요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이승만에게 상해, 파리, 호놀룰루 등지에서 전보들이 답지했습니다. 총독부의 무자비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4월에도 시위가 이어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승만은 그 전보들을 들고 주요 신문들을 찾았지만, 기사를 실어주는 신문은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많은 자금을 들여서 미국의 언론을 우호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러시아의 팽창을 막아내는 세력이라는 관점에서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미국 여론은 일본의 식민 통치를 호의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승만은 통신사 INS의 젊은 기자인 제이 제롬 윌리엄스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이승만이 자신을 소개하고 전보 두 통을 꺼내놓자, 윌리엄스는 곧바로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기사가 여러 신문들에 실렸습니다.

그 뒤로 이승만은 그런 전보들이 들어오면 윌리엄스를 찾았고, 조선의 시위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덕분에 이미 ‘죽은 논점(dead issue)’이 되어버린 조선 독립이 작게나마 되살아났습니다.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자신이 초대 대통령에 뽑히자, 이승만은 본격적으로 외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1차대전에서 이긴 나라들에 속했고 아시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10년 전에 지도에서 사라진 조선이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부활할 가망은 누구에게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승만과 그의 친구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선이 부활하려면 미국 사람들이 조선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의 존재가 잊히면, 상황이 크게 바뀌어도 행운이 찾아올 길이 막힌다고 본 것이죠. 그래서 이승만은 기회가 나올 때마다 조선이 잊히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요즈음 말로는 ‘소음 광고(noise marketing)’를 한 셈이죠.

이승만은 행운이 찾아올 길도 예측했습니다. 일본의 해외 팽창은 일본 사회의 특질에서 나왔으므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끝내는 미국과 충돌해서 패망하리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이 패망한 상황에서 그는 조선이 독립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런 기회를 잡으려면, 조선이 잊히지 않아야 한다고 그는 늘 강조했습니다. 역사는 그의 예측이 정확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돕는다’는 서양 속담이 뜻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스스로 돕는 길은 행운이 작용할 바탕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바탕이라도 없으면, 하늘도 행운을 줄 수 없습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빠진 싱가포르 회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행운이 작용할 작은 바탕이라도 마련했는가?’ 그리고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행운이 작용할 바탕을 마련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능과 지능

생명체들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한다. 적응은 환경에 맞는 형태로 몸과 행태가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환경에 적응한 생명체의 몸과 행태는 환경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즉 적응은 환경에 관한 지식의 체화(incorporation)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식이라 부르는 것들은, 즉 학문과 종교와 예술은, 이런 생물학적 지식(biological knowledge)의 한 부분이다. 인류가 지닌 지식은 방대하지만, 그래도 그런 지식이 생물학적 지식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생태계를 아는 데 긴요하다.

식물은 우리가 지식이라 부르는 것을 지니지 않았다. 그래도 잠시 생각해보면, 식물이 환경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지녔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몇백 년을 거뜬하게 사는 나무들이 지닌 생물학적 지식은 방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 남서부에 사는 소나무의 유전체(genome)는 230억 개의 염기쌍(base pairs)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유전체는 30억 개의 염기쌍을 지녔다. 염기쌍의 수와 유전자의 수는 대체로 비례하므로, 소나무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유전자들을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공룡이 살았을 때부터 생존한 종이니, 그럴 만도 하다.

어떤 생명체에게든 환경은 끊임없이 바뀐다. 우주 자체가 진화하고 그 안에 깃든 생명체들이 진화한다. 그래서 적응은 힘들고 적응에 실패한 생명체들은 사라진다. 만일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최적의 수준으로 진화하고 거기 머물 것이다. 거꾸로, 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환경은 그렇게 끊임없이 바뀌지만, 환경의 어떤 부분들은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아주 느리게 바뀌거나 순환적으로 바뀌는 부분들도 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선 예측이 가능하므로, 생명체들은 적응할 수 있다.

예컨대, 지구의 기상 환경은 공전 주기에 맞추어 순환적으로 바뀐다. 따라서 계절이 바뀌는 것은 예측이 가능하고, 생명체들은 그렇게 얻은 지식을 이용해서 그런 변화에 적응한다. 다람쥐는 가을이 되면 털이 풍성해지고 겨울에 먹을 도토리들을 저장하기 시작하지만, 여름이 가까워지면, 털이 성기어 진다. 이처럼 예측이 가능한 환경에 관한 지식은 유전자들에 담긴다. 우리는 이런 지식을 본능(instinct)이라 부른다.

그러나 예측이 가능한 순환적 변화도 아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예측이 가능한 변화들도 어떤 한도 안에서 출렁거린다. 겨울은 여름보다는 훨씬 기온이 낮지만, 실제로 겨울철 어느 날에 기온이 몇 도나 될지 예측할 수는 없다. 이런 ‘예측가능한 예측불가능성(predictable unpredictability)’은 특별한 대응을 요구한다.

그래서 미세한 변화들을 감지하는 신경과 신경이 얻은 정보들을 처리해서 행태를 조종하는 뇌가 출현했다. 이처럼 예측이 가능한 현상에서 예측이 불가능한 부분을 따라잡는 능력은 지능(intelligence)이라 불린다.

지능은 동물만이 갖추었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식물은 모두 튼튼한 몸과 엄청난 재생력을 지녔다. 특히 나무들의 능력은 경이롭다. 가지들이 꺾여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필요하면 새 순을 내고, 꺾꽂이로 번식하고, 접을 붙이면 다른 나무의 열매들을 맺는다. 그러면서 몇백 년은 거뜬히 산다. 지금도 우리는 식물의 그런 놀라운 능력에 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동물의 주된 특질은 움직임이다. 먹이를 찾고 천적을 피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당연히, 동물에겐 환경의 변화가 극심하다. 그런 생활 방식에서 지능이 필요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움직이는 동물들일수록 지능이 높다.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재대로 적응하려면, 지능이 높아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한 추산에 따르면, 현존하는 동물 종들 가운데 5퍼센트 가량이 지능을 갖추었다. 동물계엔 25개의 문(phylum)들이 있는데, 5개의 문들이 지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아는 생물학 지식이 아직 크게 부족하므로, 지능을 갖추었음이 드러날 동물은 늘어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지능의 기본적 형태는 학습과 기억이다. 보다 발전된 형태는 저장된 지식을 조작하는 추론과 사고다. 그리고 사회를 이룬 고등 동물들은 지식을 공유하는 문화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본능과 지능 사이의 관계다. 본능은 지식의 기본이다. 그 위에 지능이 깃든다. 즉 생명체들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특별한 경우들에서만, 지능이 독자적으로 판단하도록 허용한다. 사람의 지능은 엄청난 수준으로 진화했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본능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다.

동물이 갖춘 본능들 가운데 가장 쓸모가 크고 가장 강력한 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동물이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지능의 작용을 인도한다. 모든 현인들이 통제되지 않은 감정을 경계하고 선동가들이 사회에 그리도 해로운 까닭이 거기 있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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