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인류 문명의 오적(五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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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2.10 11:25:44
  • 최종수정 2019.12.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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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유주의 질서 위협하는 ‘인류 문명의 오적’
제1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제2적 시진핑 중국 주석
제3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제4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제5적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어떤 사회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한 개인들에게 공과 허물을 얼마만큼 돌려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회적 사건은 여러 거대한 힘들이 작용해서 일어나므로, 개인들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그런 거대한 힘들을 놓칠 위험이 커집니다.

이런 위험을 일깨워주는 사건은 1905년의 을사조약 체결입니다. 대한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이 조약의 체결 과정에서 책임이 컸다고 일컬어진 당시 대신들은 ‘을사 오적’이라 불렸습니다. 그 사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그들의 허물에 대한 평가가 너무 거칠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을사조약이 맺어지게 된 환경은 아주 복잡합니다. 근본적 조건은 조선이 일본군에 점령되었다는 사정이었습니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대한제국 황실과 관리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자, 국제 사회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실질적 지배를 인정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러시아가 맺은 ‘포츠머스 조약’은 ‘조선에서의 일본의 우월적 지위’를 명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일본이 을사조약을 조선에 강요하도록 만든 직접적 요인은 ‘포츠머스 조약’에 대한 일본 국내의 부정적 여론이었습니다. 선정적 신문들은 전리품이 막대하리라는 기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조약이 체결되자, 일본 정부가 협상에서 실패했다고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조약 반대 집회들이 각지에서 열렸습니다. 특히 도쿄 히비야(日比谷) 공원에서 열린 집회는 폭동으로 이어져 도쿄가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내리고 근위사단을 동원해서 폭동을 진압했습니다.

포츠머스 조약에 분노한 국민들을 달랠 길을 찾던 일본 정부는 ‘조선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했음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려 했습니다. 이런 의도에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해서 실질적 보호국으로 삼는다는 극적 조치를 연출했습니다.

1905년 11월 15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특사는 고종을 알현하고 협약안을 제시했습니다. 대신들은 협약안에 거세게 반발했지만, 이토로부터 사정을 들은 고종은 문제적 부분들을 수정해서 협약안을 받아들이는 타협책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고종과 대신들은 협약안에서 몇 곳을 수정했습니다. 이어 고종은 4개조로 된 협약안에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하기를 보증함”이란 조항을 추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1월 17일 오후 일본측과의 협의를 위해 떠나면서, 대신들은 수정안을 최후의 대안으로 여기고 일단 협약안을 거부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실제로 대신들은 일본 공사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협약안을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날 저녁 일본군이 착검을 하고 궁궐로 들어와 고종의 거처를 에워쌌습니다. 이토는 황제와의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황제는 목이 몹시 아파서 무척 괴롭다면서 접견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이토는 황제 앞으로 나아가서 직접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황제는 그래도 거절하면서, “그 일은 내각 대신들과 협의하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이토는 대신들에게 “황제께서 이 일에 관해 나와 협의하도록 여러분들에게 명을 내리셨소”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어 일본군의 입회 속에 다시 회의가 열렸습니다. 고립된 대신들은 고종과 협의해서 작성한 수정안을 이토에게 제시했고, 이토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11월 18일 미명(未明)에 조선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과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노스케(林權助)가 협약에 서명했습니다.

흔히 ‘을사조약’이라 불린 이 ‘제2차 한일협약’은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조선 전체를 점령하고 궁궐을 봉쇄한 상황에서 고종이나 대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조약 체결이 알려지자, 인민들의 의분이 폭발했습니다. 그러자 고종은 자신이 그것을 승낙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황제의 말을 믿은 사람들은 ‘을사 오적’을 처단하고 협약을 폐기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을사 오적’이 만들어진 내력입니다. 오적으로 꼽힌 인물들은 호감이 가는 인물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따르는 도덕적 책임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큰 책임을 지우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개인적 책임이야 고종 자신이 훨씬 큽니다. 그들에게 큰 책임을 지우면, 망국의 진정한 요인들을 찾아내서 성찰할 기회가 사라집니다.

이처럼 사회적 사건에서 개인들에게 큰 책임을 지우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래도 그런 방식이 효과적일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전체주의 세력이 부쩍 강성해지고 자유주의 세력이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자유와 풍요를 누리던 인류 문명에 대한 이런 위협은 모든 나라들에서 갖가지 형태로 나오므로, 한눈에 살피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그런 위협의 촉매 역할을 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꼽아보는 것도 좋은 방안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유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인류 문명의 오적’을 꼽아 보았습니다.

제1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어떤 체제든지, 외부의 위협을 막아내는 데 중점을 두어 설계되고 운영됩니다. 그래서 내부의 분열과 배반에 취약합니다. 철옹성으로 일컬어진 성들이 무너진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내부의 분열에 이은 적과의 내통이 함락을 불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은 공산주의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진영의 음험한 도전을 잘 막아냈습니다. 덕분에 ‘미국 중심의 평화(Pax Americana)’라 불리는 세계적 평화와 번영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이끌면서, 미국의 지도력과 권위는 크게 추락했습니다. 자연히, 자유주의 진영은 제대로 협력하지 못하고 빠르게 커지는 전체주의 진영에 계속 밀립니다.

트럼프의 정책들 가운데 제대로 된 것이 드물지만, 아마도 가장 문제적인 것은 그의 인종차별적 이민 정책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민들을 받아들인 너그러운 사회는 늘 큰 이익을 보았습니다. 멕시코 국경을 막은 장벽보다 미국의 앞날에 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은 없습니다.

조부가 독일에서 온 이민이었는데 자기는 고귀한 혈통의 후예인 듯 행동하는 데에서 드러나듯, 트럼프의 문제는 그의 야비한 인품입니다. 야비한 인품에선 높은 식견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어쩌다 좋은 정책을 골랐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만한 심리적 자원이 없습니다. 자기 이익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당연한 정책도 이내 바꿉니다.

트럼프처럼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물론 미국 사회에 중대한 문제들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도 그의 행태가 워낙 해로워서, 그가 인류 문명에 대한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제2적 시진핑 중국 주석

중국은 공산당이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기형적 사회입니다. 10퍼센트도 못 되는 공산당원들이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계급 사회입니다. 전체주의 사회는 보편적 원리를 부정하므로, 조만간 특정 계급이 권력과 부를 장악하는 사회로 이행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공산주의 사회들 가운데 압제적이고 차별적이고 부패하지 않은 경우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통치 아래, 중국은 더욱 압제적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신강성의 위그르 족에 대한 탄압은 지독해서 그 지역 전체가 거대한 강제수용소(Gulag)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홍콩을 장악하려는 그의 시도는 홍콩 시민들의 용감한 투쟁으로 주춤한 상태입니다.

그런 체제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에 중국 공산당 정권은 해외 팽창 정책으로 대처합니다.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로 만들겠다면서 인민들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격발시켜서 그들의 눈길을 밖으로 돌립니다. 당연히, 이웃 나라들에 대한 중국의 오만과 위협은 점점 심각해지고 국제 질서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제3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처음부터 러시아 비밀경찰 조직 KGB의 요원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냉전의 최전선인 동독에서 스파이로 일한 경험은 그를 속속들이 음험한 인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의 세계관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미국과의 대결에 골몰합니다.

러시아는 이제 2류 국가에 지나지 않지만, 핵무기 분야에선 미국과 대등합니다. 미국과 패권을 놓고 겨루는 중국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핵무기이니, 이 분야에서 미국은 10배 이상 우월합니다. 그런 약점을 러시아의 강력한 핵무기가 가려주고 있습니다.

푸틴이 제기하는 보다 심각한 위협은 그가 러시아 정보기관들을 통해서 퍼뜨리는 역정보(disinformation)입니다. 지난 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그런 행적이 드러났습니다. 러시아의 정보기관들이 지난 한 세기 동안 퍼뜨린 역정보들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그 영향의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커졌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푸틴이 쥐고 있는 트럼프의 약점도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트럼프가 저지른 러시아에서의 난잡한 행위들에 관한 생생한 정보들이 푸틴 손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졌습니다. 트럼프의 정책적 결정들 가운데 러시아의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들은 없고 오히려 미국이 물러난 자리를 러시아가 차지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제4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설명이 필요 없음.

제5적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는 젊을 적에 쿠바로 가서 비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귀국하자, 쿠바의 공산주의 정권을 위해 첩자(mole) 노릇을 했습니다. 조국 베네주엘라에 대한 충성심이 처음부터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두로는 우고 차베스 아래에서 부통령을 지냈는데, 2013년 차베스가 죽자, 지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이어 치러진 선거들에서 불법적 방식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의 통치는 석유가 많이 나서 부유한 베네주엘라를 아주 가난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민중주의적 경제 정책은 경제를 파괴했고 시민들의 삶은 극도로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기 지지자들에게 큰 혜택을 주고 사법부를 통해서 정적들을 억압하고 군대를 동원해서 시위 군중들을 살해하면서 권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베네주엘라는 작고 몰락한 나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적들에 끼인 것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행태가 ‘서푼 짜리 독재자들’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베네주엘라와 마두로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그런 사정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고찰 (24)

초지능의 가능성 (상)

이제 사람의 지능은 더 높아지기 어렵다. 정보를 얻고 처리하는 기관들의 크기나 능률을 더 늘리기 어렵다는 사정이 근본적 제약으로 작용한다. 사람의 감각기관들은 더 발전시킬 길이 없고, 사람의 뇌는 이미 너무 커서, 육체적 차원에선 생존에 큰 위협이 된다. 진화의 과정은 지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만, 너무 더뎌서, 실질적으로는 정지된 것과 같다.

인공지능은 다르다. 컴퓨터는 용량에서 별다른 제약이 없다. 기능도 빠르게 나아진다. 예상대로,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되면, 인공지능의 능력은 양자적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자연히, 인공지능은 조만간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게 되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런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출현은 컴퓨터가 처음 실용화되던 시기에 이미 예측되었다. 폴란드 출신 미국 과학자 스타니스와프 울람(Stanislaw Ulam)은 존 폰 노이만과 초지능의 출현이 필연적이라는 점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그들은 1)초지능의 출현에서 결정적 이정표는 컴퓨터가 자신보다 똑똑한 ‘자식’ 컴퓨터를 설계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며, 2) 컴퓨터에 의한 그런 개량은 점점 가속되어, 지능 폭발(intelligence explosion)이 나올 것이고, 3) 사람의 지능은 초지능에 압도되어 뒤쳐지게 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서, 폴란드 출신 영국 수학자 어빙 존 굿(Irving John Good)은 1965년에 “첫 극지능 기계는 사람이 할 필요가 있는 마지막 발명이다, 그 기계가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줄 만큼 순종적이라는 전제 아래 (The first ultraintelligent machine is the last invention man need ever make, provided that the machine is docile enough to tell us how to keep it under control)”라고 말했다.

굿이 ‘지능 폭발’이라 부른 현상을 미국 수학자이자 과학소설가 버너 빈지(Vernor Vinge)는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라 불렀다. 199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30년 안에, 우리는 초인간 지능을 창조할 기술적 수단들을 갖출 것이다. 조금 뒤, 인간의 시기는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일 양자 컴퓨터가 그런 기술적 수단들 가운데 하나로 판명된다면, 빈지의 예언이 맞은 셈이다.

놀랍지 않게도, 많은 사람들이 초지능의 출현 가능성에 회의적이거나 아예 그것을 부정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초지능의 출현이 멀지 않다고 여기지만, 초지능의 가능성에 대해 판정할 근거가 워낙 적으므로, 논쟁은 이어질 것이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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