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고찰 (14)
[복거일 칼럼]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고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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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요즈음 잇달아 나오는 일들을 보노라면, ‘하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기되 놓치지 않는다 (天網恢恢 疎而不漏)’는 옛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당장은 하루가 다르게 나라의 기틀이 허물어지는 터라서, 마음이 어둡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라를 지킬 힘이 빠르게 빠지고 있습니다. 특히 안보에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져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실은 앞으로 더 나빠질 것처럼 보입니다.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큰 나라들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인지라, 역사적으로 우리에겐 지정학적 조건이 유난히 중요했습니다. 한 나라가 둘로 나뉘고 곧바로 적대적 관계에 들어선 뒤, 지정학적 조건은 대한민국의 운명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며, 대한민국을 줄곧 위협해왔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도움으로 그 거대한 공산주의 세력을 힘겹게 막아냈습니다. 지금 그런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한반도에 관심이 작았습니다. 19세기 말엽 잠시 ‘은자의 왕국’에 관심을 가졌었지만, 빈곤하고 부존자원도 없는 나라라는 것이 드러나자, 이내 조선을 잊었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을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툰 것과 대조적이죠.

미국은 전통적으로 고립주의에 기울고 영토적 야심이 작았던 강대국이었습니다. 어떤 땅이든 한번 차지하면 결코 내놓지 않으려고 애쓴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과 같은 나라들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미국은 너른 태평양 건너편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연히, 미국은 한반도를 해두보(beachhead)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해두보는 대륙으로 진출하려 할 때야 뜻을 지닙니다. 미국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놓친 근본적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유일한 강대국이었으므로, 미국은 우리에겐 믿을 만한 강대국이었습니다. 다른 편으로는, 그런 태도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줄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뒤 갑자기 남한의 후견인이 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냉전이 이미 치열해진 1947년,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한국의 군사적 가치를 아주 낮게 평가한 보고서를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보냈습니다. 이듬해 애치슨은 한국과 타이완이 미국의 방위선 밖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실제로, 1949년 미군은 소수의 군사고문관들만 남기고 한국에서 철수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전쟁 중에도, 전황이 불리해지면 일본으로 철수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미국은 일본만 우방으로 삼으면 서태평양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북한에 유화 정책을 펴고 미국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자, 미국은 한미동맹을 평가절하했습니다. 한국에 제공한 군사 기밀들이 곧바로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하자, 미국은 한국에 대한 기밀 제공도 중단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친북한 정책에 대한 미국의 이해와 인내는 끝내 바닥이 났습니다. 곤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혈맹’ 한국을 베트남 전쟁의 적국 베트남보다 한 단계 아래 우방으로 규정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전략적 투자를 꺼립니다.

일본은 다릅니다. 13세기 원(元)의 침공 이후 일본은 조선이 자신에 대한 침공 기지로 이용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을 해두보로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려 시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엔 한국이 공산주의 세력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근년에 러시아에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 중국, 러시아의 공산주의 연합이 복원되었습니다. 러시아의 강대한 군사력과 지정학적 영향력, 빠르게 커지는 중국의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북한의 호전적 행태가 어울려서, 이 전체주의 연합은 무척 위협적입니다.

이 세력에 미국, 한국, 일본의 자유주의 연합이 힘겹게 대응해 왔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서 해두보 역할을 해온 한국은 이 자유주의 연합에서 가장 약한 고리입니다. 사회 깊숙이 침투한 북한의 영향력에 점점 크게 흔들리고, 경제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중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약화되는 자유주의 연합에 결정적 응집력을 부여한 것은 일본입니다. 일본이 탈퇴하면, 이 연합은 바로 무너집니다. 일본은 국력과 군사력이 아울러 큽니다. 정보 수집에도 뛰어나, 북한의 기습 공격에 대응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전시에 필요한 물자도 대부분 일본에서 공급받아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일본이 미군의 후방 기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전쟁은 이 사실을 괴롭도록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일본에서 점령 임무를 수행하던 미군이 없었다면, 한국전쟁 초기에 한국이 살아남을 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을 후방 기지로 삼을 수 없었다면, 초기의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려웠을 터이고 중공군을 한반도 중부에서 저지할 수 없었을 터입니다. 미군 항공기들과 전함들의 비행장들과 모항들은 대부분 일본에 있었고 병력이 크게 줄어들고 격전에 지친 육군 부대들은 일본에서 병력과 장비를 보충 받아 재편성되었습니다. 군수품들은 거의 다 일본이 제공했으니, 한국전쟁으로 일본의 경제가 부활했다는 얘기에 이런 사정이 담겼습니다.

지금도 사정은 같습니다. 얼마 전에 정년 퇴임한 이용준 대사의 회고록 원고를 미리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익을 위해 외교 일선에서 평생을 보낸 외교관의 회고록이니, 새길 만한 일화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일화들 가운데 제 가슴에 깊이 들어온 일화는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필자가 과거 2002년 주한미군 참모장과의 SOFA 개선협상 수석대표를 맡고 있던 시절, 일본의 방위비 분담 현황 시찰을 위해 오키나와 주도 나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공항 인근 지역에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가 녹슨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채 방치되어 있는 광경이 꽤 인상적이었다. 2천만m2가 넘는 땅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 안내원에게 그 넓은 땅을 왜 놀리는지 물었더니, 그 땅은 한국에 전쟁이 나면, 미국에서 공수되어 올 증원군의 1차 집결지로 사용될 땅이라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꼈다. 한국에도 그런 땅이 없는데 웬 일본에.”

지정학적 조건이 그러하므로, 미국은 한국에게 일본과 협력하라고 줄곧 권고하고 때로는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의 불행한 역사는 그런 협력을 어렵게 했죠.

큰 권력과 지도력을 아울러 지녔던 박정희 대통령만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서 일본과 수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안보와 발전에 결정적 요소지만 다른 대통령들은 결코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점에서, 일본과의 수교는 박정희 대통령의 위업들 가운데서도 으뜸입니다.

미국 지도층은 유럽의 후손들이어서, 미국은 늘 유럽으로 끌립니다. 일본군이 펄 하버를 기습한 뒤에도, 미국은 “독일 먼저” 격파한다는 전략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한국, 일본, 미국의 자유주의 연합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미국과 일본의 동맹이고 가장 취약한 요소는 미국과 한국의 동맹입니다. 그렇게 취약한 한국과 미국의 동맹을 떠받치는 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의 협력 관계입니다.

그런 판국에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현 정권은 아예 일본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려는 속마음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우리 시민들은 우리와 일본이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치명적 착각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일본에 의존해왔고 예측가능한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반면에, 일본은 우리와 관계가 나빠져도, 아쉬울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사정을 공공연하게 얘기합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 보다 큰 비중을 두도록 하는 일은 우리에겐 생존이 걸린 과제입니다. 이 일에서 능력이 작은 우리는 능력이 큰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쉽게 늘리는 방안으로 반일 감정을 북돋우는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신문에 여당이 사법부를 향해 행패에 가까운 험담을 했다는 기사들이 실렸습니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댓글 자동 생성 프로그램’으로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유죄 판결이 지난 번 대통령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해서 현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를 필연적으로 낮춘다는 사실에 반응한 것입니다만, 실은 그런 태도도 그들의 됨됨이를 드러내어, 궁극적으로 하늘 그물의 코를 하나 더 만드는 짓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늘 그물은 사람들이 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짜는 하늘 그물을 당사자들은 잘 모릅니다. 거기에 하늘 그물의 미묘한 면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만 하더라도, 애초에 이 사건을 파헤치자고 나선 것은 여당이었죠. 우리는 그런 반어(irony)들을 통해서 하늘 그물의 존재를 느낍니다.

신문을 내려놓고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한숨으로 삭히는데, 뒷산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박재삼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욕심을 털어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이번 겨울은 유난히 메말랐습니다. 하늘도 언짢으신 것인지… 무술년도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들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인공지능의 출현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직업 기사들에게 완승한 것은 인공지능의 진화에서 나온 중요한 이정표들 가운데 하나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을 빠르게 추월하는 추세를 걱정한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건 분야들 가운데 하나가 바둑이었으므로, 그것의 문화적 충격은 작지 않았다.

그래도 궁극적 승부는 이미 정해진 터였다. 설령 이번 대국들에서 패하더라도, 알파고가 멀지 않은 장래에 인간 기사들을 이기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미 서양장기인 체스에서 인공지능은 완승한 터였다.

장기든 바둑이든, 게임이라 불리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계산 장치’다. 그리고 계산이야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보다 훨씬 낫다. 10대 후반의 기사들이 이름 높은 바둑 고수들에게 흔히 이기는 현상도 그 나이에 사람이 계산을 가장 잘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빠르게 사람의 지능을 보강하고 대치해 왔다. 여러 분야들에서, 특히 진료와 법적 판단에서,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라 불리는 인공지능이 자리를 잡았다. 전문가 체계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고하는 규칙들과 자료들을 정리해서 스스로 판단할 뿐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능력까지 갖춰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이런 추세에서 상징적 사건은 이미 40여 년 전에 나왔다. 19세기 중엽 수학자들은 ‘4색 추측(Four Color Conjecture)’을 내놓았다. 맞닿은 구역이 같은 색이 아니도록 지도를 칠하는 데는 네 가지 색깔들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추측의 증명은 보기보다 훨씬 힘들었다. 1976년에야 미국 수학자들인 케네스 애펄(Kenneth Appel)과 울프강 헤이컨(Wolfgang Haken)이 해법을 찾아냈다. 덕분에 ‘4색 추측’은 ‘4색 정리(Four Color Theorem)’가 되었지만, 증명 과정이 너무 방대하므로, 컴퓨터 프로그램만이 따라갈 수 있다. 인공지능이 수학적 증명의 본질적 부분이 된 것이다.

이어 ‘케플러의 추측(Kepler’s Conjecture)’이 컴퓨터의 도움으로 증명되었다. 과일과 같은 상품들을 되도록 조밀하게 진열하는 문제는 수학에서 구체 포장(sphere packing)이라 불린다. 17세기에 케플러(Johannes Kepler)는 이 문제에 대한 추측을 내놓았지만, 그것의 증명은 무척 힘들었다.

1998년에야 미국 수학자 토머스 헤일즈(Thomas C. Hales)가 ‘케플러의 추측’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이번에도 인공지능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의 증명은 250장의 텍스트와 3기가바이트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인공지능은 다른 기술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종래의 기술들은 주로 사람의 근육을 보완하지만, 인공지능은 사람의 지능과 같은 수준에서 작동한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혁명적 특질이 있다.

기계들에 인공지능이 장착되면, 기계들은 지능적이 되어 자율성을 지니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런 기계들에서 사람이 할 일은 없어진다. 무인항공기나 ‘운전자 없는 자동차’는 이런 추세를 잘 보여준다. 1950년대 말엽에 나온 ‘인간의 노후화(Obsolescence of Man)’라는 개념이 점점 구체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람의 뇌가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사정이다. 어떤 유기체든 적절한 뇌의 구조와 크기가 있다. 뇌가 너무 복잡해지거나 커지면, 그 유기체는 기능적 일체성(functional integrity)을 잃게 된다. 자연히, 사람의 뇌는 현재보다 커지기 어렵다.

사람의 뇌는 이미 비정상적으로 크다. 사람은 체격이 비슷한 다른 유인원들보다 뇌가 3배 가량 크고, 유인원들은 체격이 약간 작은 원숭이들보다 뇌가 3배 가량 크다. 사람이 생존에 필요한 수준보다 9배나 큰 뇌를 지녔다는 얘기다. 뇌가 워낙 커서, 사람은 출산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위험을 겪는다. 그리고 큰 뇌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엄청난 자원을 들인다.

뇌가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커진 까닭을 설명하는 것은 현재 인류학과 진화생물학이 안은 큰 과제들 가운데 하나다. 어찌되었든, 진화의 과정이 워낙 느리므로, 뇌의 기능이 빠르게 향상될 가능성은 없다. 이처럼 뇌의 크기와 기능이 한계에 이르렀으므로, 사람의 지능도 더 향상되기 어렵다.

반면에, 인공지능의 용량은 제약이 없다. 컴퓨터는 기능적 일체성이라는 제약을 비교적 쉽게 벗어날 수 있다. 병렬 계산(parallel computing) 방식으로 엄청나게 큰 슈퍼컴퓨터(supercomputer)를 만들 수 있고, 구름 계산(cloud computing)으로 구조와 운영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아직 좁은 분야의 일만을 잘 하는 부분 지능(narrow intelligence)에 머물지만, 이런 지능들을 융합한 전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이 나올 가능성은 크다. 이런 융합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실은 자연스럽다. 뇌의 진화가 가리키는 것처럼, 사람의 지능도 한 가지 일만 하도록 된 단순한 프로그램들이 차츰 융합된 것이다.

누구나 날마다 절감하는 것처럼, 기술의 발전은 가속된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전문가들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가속된다. 게다가 새로 나온 혁신은 다른 기술들을 가능하게 한다. 플랫폼(platform)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널리 쓰이게 된 사실이 이런 사정을 잘 보여준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개념은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가능성의 진화(evolution of evolvability)’다. 진화 과정에서 나온 중요한 혁신은 진화의 범위를 단숨에 넓히며, 이런 혁신들이 쌓이면서, 진화의 가능성 자체가 점점 커진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존 메이나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는 지구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나온 주요 혁신들로 아래의 여덟 가지 변환들을 꼽았다.

1) 복제하는 분자들에서 원형-세포들로 (from Replicating Molecules to Molecules in Proto-cells);

2) 독립적 복제자들에서 염색체들로 (from Independent Replicators to Chromosomes);

3) 유전자이자 효소인 RNA에서 유전자인 DNA와 효소인 단백질로 (from RNA as gene and enzyme to DNA genes and Protein enzymes);

4) 원핵생물들에서 진핵생물들로 (from Prokaryotes to Eukaryotes);

5) 무성생식에 의한 복제에서 유성생식에 의한 개체군들로 (from Asexual Clones to Sexual Populations);

6) 단세포 유기체들에서 다세포 식물들, 균들 및 동물들로 (from Single-celled Organisms to Multi-celled Plants, Fungi, and Animals);

7) 외톨이 개체들에서 군체들로 (from Solitary Individuals to Colonies);

8) 영장류 사회들에서 인류 사회들로 (from Primate Societies to Human Societies).

위에서 든 변환들은 모두 지구생태계의 진화가능성을 혁명적으로 높였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표면 전체가, 모든 바다들과 대륙들이, 생명체들로 채워졌다. 이제는 외계로 진출하고 있다.

지구생태계가 뚜렷이 보여주는 ‘진화가능성의 진화’를 미국 생물철학자 대니얼 데넷(Daniel C. Dennett)은 ‘설계 공간(Design Space)의 확장’으로 보았다. 어떤 혁신이 일어나면, 자연이 설계할 수 있는, 즉 진화 과정이 출현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류 문명은 빠르게 발전했다. 그래서 진화가능성이 단숨에 커졌고 문화라는 형태로 설계 공간이 혁명적으로 늘어났다. 고대 문명이 일어나면서, 물건들을 생산하는 물리적 기술 (Physical Technology)과 함께 그런 기술에 바탕을 두고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술 (Social Technology)이 진화했다.

‘진화가능성의 진화’는 기술의 발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모든 기술들이 점점 빠르게 발전한다. 그렇게 발전한 기술들은 새로운 기술들의 출현과 발전을 돕는다.

미국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이런 현상에 대해 “지수적 성장(exponential growth)은 모든 진화 과정의 특질”이라고 지적한다. 기술의 발전은 오랫동안 미미하지만, 눈에 뜨일 정도로 자라나면, 걷잡을 수 없이 가속된다. 그렇게 발전된 기술은 둘레에 혁신의 기운을 전파해서 설계 공간을 늘린다.

이제 인공지능이 새로운 설계 공간을 열었다. 인공지능은 이미 인류 문화의 발전과 사회의 진화에 근본적 공헌을 했다.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하고 혁명적인 진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우리는 곧 ‘인공지능의 진화’를 메이나드 스미스의 목록에 9번째 주요 혁신으로 올릴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우리의 상상력이 따라가기 힘들 만큼 거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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