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고찰 (11)
[복거일 칼럼]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고찰 (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는 정보의 非유전적 전달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종복원기술원이 지리산에서 등산객들로부터 음식을 받아 먹던 반달곰을 붙잡았습니다. 작년에 지리산에 방사된 새끼 반달곰이라 합니다. 야생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사육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기른 동물들이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근본적 이유는 물론 그들이 살 터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곰과 같은 맹수는 사람과 자주 부딪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조건은 채워질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어미로부터 야생에 필요한 지식을 물려받지 못한 것입니다. 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인 그런 지식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미로부터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 곰이 느닷없이 방사되고서 겪었을 어려움들 생각하면 할 수록, 마음이 아파집니다. 그래도 겨울철을 혼자 났으니, 기특합니다. 겨울잠을 자려면, 여러 가지 지식들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잘 곳을 찾아서 무사히 겨울잠을 잤는지, 그저 기특하기만 합니다. 아니면, 아예 겨울잠을 자지 않고 등산객들이 주는 먹이로 살았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새끼들을 잘 돌보는 어류, 조류, 포유류에서 어미로부터 새끼로 전수되는 문화의 중요성을 새삼 성찰하게 됩니다. 생물학자들이 그런 지식의 방대함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문화가 그렇게 중요하므로, 진화론에서 논란이 가장 많은 부분은 문화의 진화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문화가 실제로 진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보편적 다윈주의는 문화의 진화가 유전자의 진화와 같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떠받칩니다.

그러나 문화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하므로, 그것의 진화에서 ‘복제자’ 노릇을 하는 존재를, 즉 생명체들의 복제자인 DNA유전자와 동등한 것을,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문화의 기본적 단위로 복제자 노릇을 하는 존재는 ‘밈(meme)’이라 불립니다. 밈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밈의 정체에 대해선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아주 적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밈이란 개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학자들의 의견도 엇갈립니다. 밈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한 분야에서 석학으로 대접받는 학자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못하겠다고 고개를 젓는 경우도 가끔 나옵니다.

그래도 이제 밈이란 개념은 생물학과 인문학에서 정설로 인정받습니다. 실제로 밈이란 말은 일상적으로 쓰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어렴풋이라도 이해하는 것은 지적 활동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밈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자 하는 분들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그 책은 무척 어렵습니다. 이제는 고전이 된 그 책을 쓸 때, 도킨스는 일반 독자들보다는 동료 진화생물학자들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그래서 쉽게 쓰는 것보다 자신의 주장들이 비판 받지 않는 데 마음을 더 썼습니다. 대신 그 책에 담긴 지식과 통찰은 누구에게나 좋은 지적 자양이 될 것입니다.

미국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감상하다 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됩니다. 애초에 영화의 바탕이 된 뮤지컬을 만들 때, 레너드 번슈타인(Leonard Bernstein)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바탕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는 현대 뉴욕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중세 이탈리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두 작품들 사이에 본질적 동질성이 있다고 느낍니다.

중국 영화 <야연(夜宴)>을 감상하다 보면, 자꾸 <햄릿>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느낌은 점점 짙어져서, 다 보고 나면 펑샤오강 감독이 <햄릿>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꾸었나 따져보게 됩니다. 하나는 중세 덴마크의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고대 중국의 이야기인데, 우리는 둘 사이에 본질적 동질성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공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본질적 동질성을 지니도록 만든 무엇’이 바로 밈입니다. 그래서 DNA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도 끊임없이 복제되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식인은 밈들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새로운 밈들을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지식인들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독창성이고, 반대로 가장 경멸 받는 지식인들이 모방하거나 표절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바로 그런 사정에서 나옵니다.]

문화의 기본적 단위

위에서 여러 번 언급된 것처럼, 문화는 ‘정보의 비유전적 전달’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보들은 유전자들에 담긴 유전적 정보들과 문화를 통해 전달되는 비유전적 정보들로 이루어진다.

보편적 다윈주의가 가리키는 것처럼, 문화도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진화한다. 따라서 문화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진화의 과정이 작용하는 문화의 기본적 단위에, 즉 생명체들의 DNA유전자에 상응하는 존재에, 관해 알아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러한 단위를 상정하고 이름을 붙였는데, 도킨스가 지은 ‘밈(meme)’이란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보편적 다윈주의는 진화의 과정이 늘 같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문화적 복제자로서의 밈은 유전적 복제자로서의 유전자와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전파한다. 즉 환경에 잘 적응한 것들이 오래 생존해서 더 많은 복제에 성공한다.

다른 점은 밈의 환경은 동물들의 뇌로 국한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비롯한 사회적 동물들은 다른 개체들의 행태로부터 배운다. 바로 ‘정보의 비유전적 전달’이다. 그리고 이런 비유전적 정보의 전달은 뇌에서 뇌로 행해지므로, 유전적 정보의 전달처럼 어렵고 더디지 않다. 유전적 정보의 전달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단 한 번 이루어 지지만, 비유전적 정보는 그런 제약이 없으니,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수평적으로 전달되고, 자식에게서 부모로 거꾸로 전달되기도 한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유전자들은 아주 정확하게 복제되지만, 밈은 흔히 복제 과정에서 다소간 변형된다는 것이다. 밈이 아주 정확하게 복제되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유전적 정보는 다른 종들 사이에선 전달될 수 없다. 유전적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개체들의 집단을 우리는 종이라 부른다. 그러나 비유전적 정보들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전달된다. 우리가 개와 같은 가축들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덕분이다.

물론 사람과 가축들 사이의 정보 전달은 일방적이다. 다른 동물들로부터 우리가 밈을 얻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래들은 서로 긴 노래를 들려준다고 믿어진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노래를 풀어낼 수 있다면, 사람은 처음으로 다른 종의 밈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쉽게 확인하고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밈의 정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밈의 바탕이 뇌의 구조이리라는 점이다. 모든 정보들은 물질적 바탕을 지닌다.

밈은 뇌에 자리잡은 정보의 단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것은 뇌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 쓰는 물질적 매체로 구체화된, 확정적 구조를 가진다. 만일 뇌가 정보를 시냅스 연결들의 구도로 저장한다면, 밈은 원리적으로 현미경 아래에서 시냅스 구조의 확정적 구도로 보여야 한다. 만일 뇌가 정보를 ‘분산된 형태’로 저장한다면, 밈은 현미경 슬라이드 위에서 국지화할 수 없을 터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이 물질적으로 뇌에 자리잡았다고 간주하고 싶다. 이것은 그것을 외부 세계에 대한 그것의 결과들인 그것의 표현형적 효과들과 구별하기 위해서다.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유전자의 긴 팔길이(The Extended Phenotype: The Long Reach of the Gene)>]

도킨스는 밈의 구체적 모습으로 ‘낱말들, 음악, 시각적 심상들, 의복의 스타일들, 얼굴이나 손으로 하는 몸짓들, 박새들이 우유병을 열거나 일본 마카크 원숭이들이 밀을 [물에] 이는 것과 같은 기술들’을 예로 들었다.

유전자들이 유기체들을 통해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처럼, 밈들도 유기체들을 통해 생존하고 번식한다. 자연히,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밈들이 번창한다.

어떤 밈이 그것을 지닌 몸의 행태에 대해서 지닌 영향은 그 밈의 생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것의 몸들을 절벽 너머로 달려가도록 만든 밈은 그것의 몸을 절벽 너머로 달려가도록 만드는 유전자의 운명과 같은 운명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밈 저수(meme pool)’에서 제거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도킨스, 같은 책]

따라서 문화를 지닌 종들에선 진화가 유전적 요인들만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 또는 ‘유전자-밈 공진화 (gene-meme coevolution)’라 불리는 이런 현상은 물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다.

밈은 본질적으로 기억의 한 종류다. 지금 우리는 기억이 어떻게 저장되고 검색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기억에 관한 지식이 많이 늘어나야, 밈에 대한 이해도 늘어날 수 있다. 밈의 정체가 확인되기까지는 문화의 진화라는 주제는 원초적 과학(protoscience)의 지위에 머물 수 밖에 없다.

복거일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