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송재윤] "문혁춘추" 중국 인명 및 지명 표기와 관련해서
[특별기고/송재윤] "문혁춘추" 중국 인명 및 지명 표기와 관련해서
  • 송재윤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송재윤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18.03.01 12:48:34
  • 최종수정 2018.03.30 11:58
  • 댓글 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송재윤 (宋在倫, 하버드 대학 박사)

-맥매스터 대학(McMaster University) 교수(중국역사/철학), 작가
-주요저서: 학술서적 Traces of Grand Peace (Harvard University) 및 영어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등. 

 
 

 

중국인명 및 지명 표기와 관련해서 독자분의 문의가 있어 간단히 제 생각을 밝혀야 함을 느낍니다. 현재 펜앤드마이크에 연재 중인 [문혁춘추: 현대 중국의 슬픈 역사]에서는 중국 인명 및 지명을 우리말 한자발음으로 표기합니다. 시진핑을 "습근평"으로, "보시라이"를 "박희래"로 표기하는 이유는 아래 칼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동의하시진 않겠지만, 저로선 의미 있는 시도라 생각됩니다. 현재 학계에선 신해혁명(1911) 이전의 인물은 우리말 한자발음으로, 이후의 인물은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하곤 합니다. 신해혁명을 근대의 분기점으로 보는 관점도 많은 문제가 있는데다 기술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야기됩니다. 예컨대 모택동은 1893년 태어나서 신해혁명 발발 당시 만 18세 정도였습니다. 신해혁명 이전의 모택동은 모택동으로, 이후의 모택동은 마오쩌뚱으로 써야 한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한자의 소멸과 한국어의 퇴보

최근 신문지상엔 생경한 중국어 고유명사가 쇄도하고 있다. 후진타오, 시진핑, 윈난, 꾀이쩌우 등등 인명과 지명 모두 원어 발음대로 표기하는 원칙 때문이다. 이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자면 “중국” 역시도 “중국”이 아니라 “쭝구어”로 써야 한다. 3천 개에 달하는 인구 40-50만의 현(縣) 규모 중국 지명들 역시 죄다 새로 음역해야 할 판이다. 일본처럼 한자 그대로 표기하거나 우리식 한자발음대로 읽으면 너무나 간단하지만, 원어를 중국어 표기법에 맞춰 음역하자면 일대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Munich,” “Vienna,” “Moscow,” “Aristotle" 등은 이미 정착된 영어식 고유명사의 표기법이다. 저명한 사회학자 베버 (Weber)는 영어권에서 통상적으로 "웨버"라 불린다. 우리가 “北京”을 북경이라 읽고, 당나라 시인 "李太白"을 이태백이라 불러 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어 발음이 장시간을 거쳐 현지의 발음으로 토착화된 사례인 것이다. 절강, 산동, 사천 등 오랜 세월을 거쳐 이미 우리말로 굳어진 지명을 뭣 하러 이제 와서 쯔어쟝, 싼뚱, 쓰촨으로 고쳐 부르려 하는가. 번거롭고 힘들며 비효율적이다. 낯선 이국의 고유명사를 마구 생산해 언중의 일상생활을 교란시키는 나라는 아마도 전 세계에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주체사상”을 절대화한 희한한 독재국가 북한을 제외한다면.

재미난 것은 중국인들의 태도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의 성명은 물론, 지명 거의 대부분을 중국어 발음 그대로 읽는다. 외교적 공식석상에서도 그들은 제주도는 “찌쭤우다오”로, 박근혜는 “피아오 찐회이”로 발음한다. 당연히 한자 표기에 맞춰 중국식으로 읽겠다는 것이다. 13억의 중국인들은 우리의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발음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데, 우리는 왜 그 어색한 원어발음의 음역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한자를 동아시아 공동표기 수단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우리는 한자를 단지 "중국 것"이라 여겨 거부한 것이다.

식민지배의 상처 때문일까. 한반도에서 민족언어의 재발견과 재건과정은 범국가적 ‘문화혁명’으로 진행되었다. 북한은 국가적 캠페인을 통해 아예 한자를 없애 버렸다. 남한의 경우, 한글전용이 큰 추세가 되면서 80년대 이후 한자는 거의 소멸되어 버린 듯하다. 순우리말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한자를 흡사 암처럼 도려내 폐기한 것이다. 오늘날 한자는 최소한 15억의 인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문자다. 그런 효율적인 소통의 채널을 닫아버린 후 우리의 모국어는 고립된 섬의 언어가 되어 버린 셈이다.

한자를 폐기한 결과 한국어는 창의성을 잃고 퇴보한 것만 같다.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문서 해독능력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란 보고가 있다. 한글전용의 교육이 한국인의 개념적 사유능력을 약화시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선 야쿠자들도 한자를 읽고 쓰는데, 한국에선 대학교수 및 문필가들도 한자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무식"해져 버린 것이다.

또한 한자의 소멸은 한국어의 "왕따"를 자초했다. 한국인들은 이제 일본어와 중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는 한, 15억에 달하는 세계의 시민과 필담조차 나눌 수 없게 되었다. 언어적 고립은 한국어 전체의 위기를 보여준다. 더 이상 한국어는 학술어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계열에서도 한글논문은 대접 받지 못한다. 이런 추세라면 불과 수십 년 내에 학술어로서의 한국어는 소멸될 것이 확실하다. 병적인 순문화주의가 낳은 언어 고립화의 필연적 결과이다.

이미 동아시아는 새로운 문명의 중심으로 통합되고 있다. 모국어를 살리기 위해 한자를 박멸하고 외래어를 추방하는 것은 낡은 방식이다. 혼융과 통합만이 모국어를 살린다. 한자는 "중국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것"이다. “태산이 무릎아래 지란(芝蘭)을 키우듯”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칠 때가 되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긴 세월 늘상 사용해 온 바로 우리의 것을 남의 것이라 우겨대는가.

송재윤 (객원 칼럼니스트·맥매스터 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