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Notre Dame) 사원의 끔직한 화재는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문화자본”이 한 순간에 파괴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12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붕과 첨탑의 오크나무 목재는 영원히 사라졌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 일부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흔히 말해지듯이, 프랑스는 서구의 심장이고, 파리는 프랑스의 심장이며, 노트르담은 파리의 심장이다. 이처럼 상징적인 교회가 불길에 휩싸인 광경은 그 자체로서 서구의 쇠퇴를 보여주는 표징이 아닌지 불안하게 한다.여기에서의 “문화자본”은 금융자산이나 생산요소
리버테리언 전략은 항상 성가신 주제였다. 국가주의 선거 운동 수사(修辭)로 채워진 대통령 선거 해들은 존재론적 고통을 야기하고, 국가의 규모와 범위를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우리 앞에 놓인 근본적인 질문의 재검토를 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주어져 있고 전술적 선택지들의 범위가 주어져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더욱 리버테리언한(libertarian) 사회를 지금 여기에서 현실적으로 창설할 수 있는가? 우리의 주된 과제는 대학, 금융, 그리고 정치 엘리트들을 우리의 관점으로 개종시키는 목적을
이른바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즉 좌익, 미국식 리버럴, 사회주의자들)이 벌이는 활동의 주요한 목표 중의 하나가 소득과 부의 평등화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은 많이 갖고 어떤 사람들은 적게 갖는 것은 불공정하며 부도덕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들은 억만장자들을 비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백만장자까지도 싸잡아 비난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졌다는 모든 사람을 비난한다. 그들은 정부가 가진 자들로부터 돈을 빼앗아서 그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거나 아니면 그저 정부의 일반행정 지출로 사용할 수
이 글의 주제는 빈곤의 “제거”가 아니라 빈곤의 정복이다. 빈곤은 완화되거나 축소될 수 있으며, 지난 2세기 동안 서구 세계에서는 거의 기적적으로 빈곤의 완화 및 축소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빈곤이란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며, 개인적 빈곤은 질병이나 죽음을 제거하는 것 이상으로 “제거”하기 어렵다.개인 혹은 한 가정의 빈곤은 “생계부양자”(breadwinner)가 돈을 벌 수 없으면 발생한다. 생계부양자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가정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없거나 벌지 못하면 빈곤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는 일시적이
리처드 캉티용(Richard Cantillon)은 당신이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다.1600년대 중기에서 후기 언젠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리처드 캉티용이 경제학에 한 공헌들은 그의 주요 작품 ≪일반 상업 본질 소론(Essai sur la Nature du Commerce en General(Essay on the Nature of Commerce in General))≫에서 찾아볼 수 있다.1734년, 캉티용은 불만을 품은 전(前) 고용인에 의해 원인 불명으로 살해되었고, 그의 집은 화염에 휩싸였다. 화재를 면한
경제성장의 의미에 관해 엄청난 혼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은 GDP 또는 산출물과 관련되어 있다고 잘못 알고 있다. 경제성장은 그렇지 않다. 경제성장은 사람들의 욕구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즉 복지(wellbeing)를 생산해낼 수 있는 경제 능력이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반면에 GDP는 [공개된] 통계를 사용하여 경제성장을 추정하는 끔직한 방법이다. 따라서 이 숫자를 조작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 의해 GDP는 크게 왜곡될 수 있다. GDP는 성장이 아니다.그러므로 상점에 물건이 더 많이 쌓여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그의 저서 『인간행동』(Human Action)에서 사회주의가 수립되는 두 가지 패턴을 구분했다. 첫째는 그가 “레닌 패턴 혹은 러시아식 패턴”이라 부르는 “순수한 관료적 형태다. 모든 공장, 상점, 그리고 모든 농장을 공식적으로 국유화한다.” 미제스에 따르면 두 번째 패턴은 “힌덴부르크 패턴 혹은 독일식 패턴”인데, 미제스는 이것은 나치가 독일에 사회주의를 수립했던 바로 그 방법이었다고 말했다.이러한 패턴의 사회주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미제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두 번째
베네수엘라, 초인플레이션 국가 명단에 들어가다경제학자 스티브 행케(Steve Hanke)는 세계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통화들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는 일을 수년 간 해오고 있으며, 베네수엘라 통화인 볼리바르(Bolivar)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행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은 60,324퍼센트로서 볼리바르는 사실상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게 되었다.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베네수엘라 경제가 한창 좋을 때 볼리바르가 남미(Latin America)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 중 하나였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고대 로마 시민들은 지폐를 불신하였고 금화나 은화가 아닌 종이로 된 화폐를 돈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도 지폐를 더 찍어내는 방식으로 화폐공급을 늘리는 것이 차단되어 있었다.그러나 로마 황제들은 곧 기발한 수단을 찾아내었다. 그들은 영토 안에 주화들을 회수했는데 주화를 보수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리고는 주화의 일부를 깎아내거나 값이 떨어지는 다른 합금을 섞는 등의 여러 방법으로 원래의 액면가를 변경하지 않고도 주화의 은 함량을 줄였다. 그들은 이렇게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로마의 통화
자기들이 약속하는 것을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전달하지 못할 때―이러한 일은 많이 일어난다―우리가 대신 올바른(right) 사람들에게 정부를 운영하게 하기만 한다면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우리는 종종 이야기 듣는다. 우리는 정부 대리인들의 옛날 무리가 충분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고 이야기 듣는다. 혹은 그들이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이야기 듣는다. 정부에 무능하고 의도가 나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언제나 관련된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종종, 실패의 가능성은 그저 정부의 제도 그 자체에
민간 기업들에 의한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역사적인 장면이라면 아마도 19세기에 있었던 시카고 강(江)의 모습일 것이다. 남북전쟁이 끝나갈 즈음 시카고에는 유니온 도축장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도축장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돼지와 소를 도축한 후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고기 조각으로 만들어 포장해서 전국으로 운송했다. 그런데 도축된 가축의 많은 부위들이 쓸모가 없는 부산물 쓰레기들로 남았고, 기업들은 이것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처음에 기업들은 이 부산물들을
나는 공산주의의 참상도 사회주의의 실패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강성 좌파 출판물인 『더 네이션』(The Nation)으로부터 거의 날마다 이메일을 받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그 편집자들은 완전히 들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떠오르는 중이며 나이 많은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한 쪽 끝에 그리고 사진발 잘 받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역주: 지난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미국 역사상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가 다른 끝에 있고, 이 둘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 이슈가 최근 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중요한 경제적 문제가 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주제와 관련된 논쟁의 수준은 아주 낮다. 이 글에서 나는 종종 발견되는 세 가지 주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첫째로, 사람들은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나쁜 불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평등이란 결국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얻는 서로 다른 소득처럼 어떤 가치들의 관련성을 형식적으로 특징지어 나타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
『Reason』 지 기사에서 편집부장인 브라이언 도허티(Brian Doherty)는 최근 독자들에게 “문화 마르크스주의”(cultural Marxism)는 “음모를 꾸미는 우파”(conspiratorial right)가 “다문화주의 및 동성애자의 권리 및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가리기 위해 불러 낸 편집증일 뿐이라고 믿게 하고 있다.1그는 최근 수 십 년간 분명히 심화되어 온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사악한 음모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공개적
서구 국가들에 사는 개개의 시민들이 지속적이고도 무제한적인 정부의 팽창으로부터 어느 정도나마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미국의 경우 우리 시민들에 대한 권력 행사의 적절한 지표로 볼 수 있는 정부 지출은, 불과 잠깐 몇 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시민들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가 우리를 얽어매는 사회적 규칙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부담하는 세금, 건강보험, 에너지 및 생활용수 공급과 그 비용에 대해 우리 시민들은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자신의 저서 『인간행동』(Human Action)에서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언제나 반(反)자본주의 선동의 주요한 원천이었다고 했다. 나는 최근 노조의 주요 주장 중의 하나인 “노조 활동이 당신에게 주말을 안겨 주었다”고 적힌 자동차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를 보고는 미제스의 이 말이 떠올랐다.노조가 휴식 있는 삶을 주었다고? 그렇지 않다. 미국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1870년 61시간에서 현재는 34시간으로 줄었다. 미국 근로자들의 휴식 시간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는 말인데, 이렇게 된 것은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은 예일대학교의 William D. Nordhaus과 뉴욕대학교의 Paul M. Romer에게 50번째로 수여되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에서의 “수학의 오용”(mathiness)에 대한 Romer의 비판1과 같이 Nordhaus와 Romer의 연구들의 일부 측면에서는 공통기반을 찾을 수 있겠지만,2 올해의 수상 소식에서 오스트리아 학파가 자축할 것은 별로 없다.두 경제학자는 모두 국가의 더 확장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Romer는 정부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특허법을
소비자 선택의 가치에 대해 교황 프란시스와 미제스의 의견은 서로 다르다. 교황은 소비자 선택의 가치를 규탄하는 반면, 미제스는 그것을 변호한다. 그들의 차이점은 너무나도 현격하다.우리가 다 알다시피, 교황은 그가 “컨슈머리즘”이라 부르는 것을 규탄한다. 예를 들자면, 2015년에 행한 한 연설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에는 컨슈머리즘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결정한다. (사람 간의) 관계를 소비하고, 우정을 소비하고, 종교를 소비하고, 소비하고, 소비하고 ....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혹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신경 쓰지
9월 29일은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탄생일이다. 귀도 휠스만(Guido Hülsmann)은 그의 전기(傳記) 『미제스: 자유주의의 마지막 기사 (Mises: The Last Knight of Liberalism)』에서 미제스를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 했다. 마리오 리조(Mario Rizzo)는 그를 “합리적 경제계산은 사회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며 사회주의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는 단지 시민들을 궁핍화시킬 뿐이라고 설파한 미제스는 아마도 지난 세기 가장 중요한 경제사상을 독보적으로 펼친 분이라고”
베네수엘라 정부의 사회주의 정책이 그 국민들에게 생지옥을 안겨주고 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베네수엘라 화폐는 문자 그대로 쓰레기에 불과하게 되었다. 병원들이 문을 닫고 치료약들이 희소해지면서, 유아, 임산부, 노인들의 치사율은 하늘로 치솟고 있다.음식료품들이 가게 선반에서 사라져버려서 이제 사람들이 심지어 애완용 동물들과 동물원의 동물들까지 잡아먹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 가운데 78%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물론 이런 사정이 베네수엘라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