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스 에세이31편] 불평등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세 가지 문제점
[미제스 에세이31편] 불평등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세 가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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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과 부의 불평등 이슈가 최근 들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중요한 경제적 문제가 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주제와 관련된 논쟁의 수준은 아주 낮다. 이 글에서 나는 종종 발견되는 세 가지 주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

첫째로, 사람들은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나쁜 불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평등이란 결국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얻는 서로 다른 소득처럼 어떤 가치들의 관련성을 형식적으로 특징지어 나타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불평등의 원인이다. “지대 추구”(rent seeking)라든가 부유한 영향력 있는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을 위한 규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부에 대해 로비(“대마불사” 은행들, 보조금을 요구하는 농민들, 혹은 수입관세를 지지하는 국내 산업 분야들을 보라)를 함으로써 초래되는 불평등은 당연히 나쁜 불평등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부유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financial assets)의 가격을 올려주는 양적 완화 정책에 의한 불평등도 좋은 불평등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적 진보의 결과 나타나는 불평등이 비난받을 이유가 있을까? 산업혁명 기간 동안에 근로자들은 농촌을 떠나 공장으로 몰려들었고, 그 결과 초기에는 불평등이 확대됐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가 발생하면 일어나는 일로서, 그 과정이 결코 부드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새로운 시장의 기회를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 또한 기술 진보,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의) 노동의 부문 간 재배분 및 세계화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에 반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진보 그 자체에 반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도 같다. 불평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불평등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나쁜 불평등이 반드시 -세상의 모든 비참한 사태의 원인 제공자로 종종 일컬어지는-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의해 추동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으리라고 본다. 그 대신 최근 몇몇 서구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불평등의 확대는 여러 가지 요인들의 결과이며, 그 요인들 중 하나는 전 세계에 걸쳐 사람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킨 글로벌 경제 성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저개발국 근로자들에 대한 공포?

이러한 사실은 불평등에 대한 대부분의 논쟁이 드러내는 두 번째 문제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좁은 시각, 즉 서구적 시각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다음 그림을 한 번 보자.

그림 1: 세계 소득 분배 백분위에서의 실질소득의 변화, 1988-2008
그림 1: 세계 소득 분배 백분위에서의 실질소득의 변화, 1988-2008
Source: B. Milanovic, 2013, Global Income Inequality by the Numbers: In History and Now – An Overview , downloaded from Wikipedia .

이 그림에서도 금방 알 수 있듯이, 1988년부터 2008년 사이에 소득 하위 75퍼센트에 속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증가했다. 몇몇 분위에서는 엄청난 증가를 보였다. 이처럼 세계화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과 미디어는 실질소득이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서구의 근로계층에만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이런 사실이 달갑지 않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전 세계 소득 분배 백분위에서 상위 75~9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이는 이들이 전 세계에서 중상류 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평등 증가에 대한 현재의 비판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발도상국의 저숙련 노동자들의 공급 증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구 선진국 노동: 역자) 엘리트들의 소득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나온 것이다. 물론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확대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중국인이나 인도인의 절대적인 실질소득 증가보다는 선진국 노동계층의 상대적인 경제 형편이 더 중요하다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옥스팜(Oxfam)의 보고서 작성자들을 위시하여 인간의 고통과 빈곤에 대해 염려한다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훨씬 잘 사는 선진국 노동자들의 지위와 소득에 대해 염려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불평등인가 빈곤인가?

이것은 소득 불평등과 관련되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 중 세 번째 문제점과 관련된 것으로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결함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과 빈곤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종종 불평등과 빈곤을 혼동한다. 불평등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수준의 소득을 얻고 있음을 의미하며, 빈곤은 사람들이 충분한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에 대해 비판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소득이 (상대적으로: 역자) 낮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사람들의 소득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여기서 자본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지난 수십 년 간 전 세계에서 극심한 빈곤이 극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2: 극빈층이 전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 1820~2015
그림 2: 극빈층이 전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 1820~2015

보다시피, 1820년에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 1.90 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극빈층이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후에도 세계 인구의 약 60퍼센트는 여전히 극빈층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이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9.6퍼센트가 되었다. 수십억 명이 극빈층에서 탈출했다는 말이다. 자유시장이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아는 경제학자들에게는 이러한 진보가 당연해 보이겠지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불평등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인류는 기나긴 세월 동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재산권 보호, 시장의 자유화, 그리고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하게 됨으로써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교환, 그리고 노동 생산성을 높여주는 자본의 축적을 통해 부를 창출한다. 따라서 더 많은 경제적 평등이라는 요구는 우리의 관심을 진짜 문제로 삼아야 하는 빈곤의 문제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빈곤을 퇴치하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해법인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글쓴이) Arkadiusz Sieroń

아르카디우스 시에론(sieron.arkadiusz@gmail.com)은 폴란드 브레슬라우(Wrocław) 대학 박사과정에 있다. 2018년 미제스연구소의 연구원이며, 2018년 페르티그(Lawrence W. Fertig)상 수상자이다.

옮긴이) 권혁철(한독경제연구소장)

▶원문) https://mises.org/wire/3-problems-how-media-looks-inequality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더 많은 글을 「미제스와이어」(www.mises.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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