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모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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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지난 8월 말 새로운 공식 ‘표준지도’를 발표하여, 남중국해에 10개의 선(10단선)을 그었다. 10단선에 따라 남중국해의 약 90%가 중국의 영해로 명시됐다. 이에 따라, 관련국가들인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은 곧바로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11월 말에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중국에게 자국의 영해를 1인치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중국과 정면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남중국해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중국이 남중국해문제에 공세적으로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관련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자제했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영유권문제는 중국의 주장에서 기인한다. 당초 중국은 남중국해에 9개의 선(9단선)을 긋고 그 선내의 수역에 대하여 ‘역사적 권리’에 기초하여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여 왔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발표한 ‘10단선’은 기존 ‘9단선’보다 더 나아가 대만 동부해역에 바짝 붙인 새로운 선을 추가한 것이다. 1974년에는 당시 남베트남이 영유하고 있던 남중국해의 서사군도를 군사력을 동원하여 완전히 지배했다. 그 후 베트남 및 필리핀 해군과 무력 충돌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중국은 주로 무력으로 영유권 분쟁에 대응했다.

중국은 2000년대 초 남중국해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남중국해문제에 더욱 공세적으로 나갔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를 추진했고 2009년부터 핵심이익에 남중국해를 포함시키려고 하면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2010년 동 수역의 베트남 어선을 나포하여 선장을 재판에 회부했고, 2012년 필리핀과 분쟁 중인 Scarborough Shoal에서 필리핀과 대치하던 끝에 정기적인 법집행순찰을 확립하고 필리핀 어선을 축출했다. 

2012년에 시작된 시진핑 시대에 중국의 공세적 자세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우선 분쟁을 내려놓고, 공동협력하여 개발하자”는 수사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이러한 수사는 사라지고 자신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영토주권의 수호에만 집중하고 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판결을 통해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의 근거로 내세운 소위 ‘9단선’의 존재를 부정하여 중국에 완패를 안겨줬으나, 중국 정부는 판결을 무시하고 자기의 길로만 나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국가들이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오랫동안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아세안은 1992년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남중국해 분쟁을 두고 중국에 공동대응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아세안에 대해 미소외교를 전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이 고압적 자세를 계속 보임에 따라 2013년 필리핀은 남중국해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했고, 재판소는 2016년 필리핀의 핵심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여 중국에 완패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아세안의 반응은 의외였다. 동 판결이 있은 직후에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 외교장관회의에서, 아세안은 의장성명에서 중국에게 재판소 판결을 준수하라는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이 판결의 당사자인 필리핀은 재판소 판결에 대한 일체의 환영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당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친중국 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의 공세적 자세에 대해 당사국들은 강력한 반발을 보이지 않아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지지하는 아세안 입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두테르테 대통령 자신이 2020년 유엔 연설에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은 국제법의 일부’라고 언급했다. 아세안의 다른 나라들도 국제재판소의 판결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정부는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군사기지 4곳을 2023년 1월에 추가로 제공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새로운 공식 ‘표준지도’를 발표함에 따라,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당사국들은 이례적으로 중국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9월 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에서 주권에 대한 도전에 우리는 맞설 것”이라며 강경한 자세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필리핀 해양경비대는 9월 말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에 설치한 부유식 장벽을 절단했다. 이는 역대 중국의 영토 도발에 대한 필리핀의 가장 강력한 맞대응으로 꼽힌다. 베트남은 9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양국관계를 가장 높은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했다. 9월에 개최된 아세안·중국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리창 중국 총리에게, “국제법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관련국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이 1992년 “영해와 인근지역에 관한 법”을 발표하여 남중국해를 중국의 영해로 포함한 이래,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여 왔다. 미국 정부는 1995년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에 어긋나는 해양 관련 주장이나 해양활동에 대한 제한은 그 어떤 것도 심각한 우려를 갖고 바라볼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남중국해에서 관련국가들을 지원하여 왔다. 

그러면 최근 남중국해문제에 미국이 적극 개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미·중 간 ‘신냉전’의 중심에 남중국해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갖고 있는 동아시아의 단극패권은 동아시아에서의 해상패권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부상하는 중국이 ‘해양대국’을 추진하고 있음에 따라,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기존의 해양패권을 지키기 위해 동아시아에서의 해상요충지 중의 하나인 남중국해를 군사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문제에서 공세적 자세를 계속 강화하고 있고, 관련국가들이 강력히 반발함에 따라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국가들이 금번에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미국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관련국가들이 최근 중국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은, 남중국해문제와 관련한 중국과의 협상에 대한 무력감에 기인한다. 이는 필리핀의 경우에서 잘 나타난다. 2016년 취임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친중국 정책을 통해 남중국해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중국과 남중국해 천연자원 공동탐사 계획을 세우고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도 적극 참여해 필리핀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국은 오히려 필리핀 EEZ 내에 인공섬을 확장하는 등 공세적 자세를 보였고, 중국과의 각종 사업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중국에 실망한 그는 2021년부터 친중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공세적 자세를 강화할 경우, 당사국들과의 관계가 손상되고 이들 분쟁국가들로 하여금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에게 더욱 가게 만들 수 있다. 여러 동남아국가들은 중국의 지도상 침략과 국경 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자간 전략적 동맹을 구축해 외교적으로 대응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은 이들 국가들의 마음을 살 수 없으며,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미국 편을 들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고 있다. 

남중국해는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 등 여러 동남아국가들과 연해 있는 바다로서, 남중국해가 중국의 해안선과 만나는 부분은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중국의 영해라는 주장은 지나친 것으로서 관련 국가들이 모두 약소국이라는 측면도 있는데,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추구할 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중국과 아세안은 떨어질 수 없는 좋은 이웃이자 동반자로서, 양측의 운명공동체를 더욱 긴밀하게 구축하자”는 중국의 수사가 실제 행동과 일치할 지 여부는 중국에 달려 있다.

한편, 남중국해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남중국해는 세계 선박 통행량의 25%가 이 해역을 지나고 있는, 세계에서 중요한 해상교통로 중의 하나이다. 무역대국인 한국으로서는 이 해역의 안정과 통행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간 한국 정부는 남중국해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여 왔으나, 금년 8월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의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과 관련해,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한다.” 우리는 앞으로 국제법과 국제규범에 근거하여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남중국해에 규칙에 기반한 질서가 유지되도록 돕고 아세안과 해양안보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우리와 아세안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연상모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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