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KBS.(사진=KBS, 편집=펜앤드마이크)
디지털 KBS.(사진=KBS, 편집=펜앤드마이크)

최근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된 법원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KBS와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해임과 관련된 법원의 엇갈린 판결은 사람들을 도리어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도 더 커지는 분위기다. 이러한 일관성 없는 법원 판결이 나오는 이유는 방송이 절대적 가치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회적 기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 판단들은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 

이론적으로 방송의 규제 근거에는 ‘한정된 주파수의 희소성’ ‘공공재(common carrier)인 주파수 사용’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 같은 것들이 있다. 기술적 또는 물리적 속성인 앞의 두 근거와 달리, ‘사회적 영향력’은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사회적 판단 즉, 상대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나라들이 자신들이 처한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사회적 특성에 따라 방송이념과 제도가 다르고, 방송의 책임과 규제 수준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법·제도 역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하지만 언론은 수용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진·위가 결정되는 상대성을 인정하지만, 법적 판단은 엄격한 기준에 의해 선·악을 판단하는 절대성을 속성으로 한다. 따라서 법 영역이 언론영역에 과도하게 깊이 개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할 수 없다. 방송에 대한 법적 규제가 언론 행위에 대한 합법적 기준을 정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송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위험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재심 절차라는 것이 있지만 법적 판단은 결국 불가역적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은 자칫 언론 행위 자체를 위축 또는 경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포함한 언론 행위는 마치 무 자르듯 진위나 선악을 선명하게 구분하기 힘든 사회적 행위인 것이다.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경제적 외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중시하는 공영방송에 대한 법적 판단은 더욱 신중해야만 한다. 

이처럼 법적 규제와 법원 판단이 방송을 비롯한 언론영역에 깊이 개입하게 만든 근본 원인은 언론사 스스로 자율규제 능력이 상실된 것에 있다. 역사적으로도 언론사들의 자정능력이 약화되었을 때 법적 규제가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법 제도는 통치권력의 언론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런 잘못된 행태가 비단 언론영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사법부를 비롯해 민주주의를 지탱해 왔던 제도들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들어 민주주의의 붕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각종 민주적 절차와 제도들의 정치 도구화를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기구가 바로 언론과 사법제도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정권에서 언론과 사법부는 철저히 정권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실제 많은 국민들이 이 두 영역에 대한 불신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최근 공영방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기울어진 언론을 역시 기울어진 사법부가 판단’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구들간의 상호 인증 형태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개입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법적 판단은 불가역적최종 판단이라는 점에서 그런 편향되거나 잘못된 판단은 심각한 후유증과 폐해를 낳게 마련이다. 민주화 정도나 언론 자유 지수가 높은 나라들 대부분이 언론에 대한 법적 규제나 개입에 신중한 이유가 바로 그런 ‘위축효과(chilling effect)’ 때문이다.

결국 방송 행위의 잘·잘못을 법적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훼손된 방송의 자율성과 자정능력을 더욱 악화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사법부 역시 국민의 신뢰를 담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는 점도 우려를 더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방송 정상화가 시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크게 뒤틀린 공영방송 체제를 정상화하는 가장 시급한 과제가 바로 자정능력 회복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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