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사진= 연합뉴스)
KBS(사진= 연합뉴스)

지난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2항 개정이 최종 의결되면서, 1994년부터 지속되어 왔던 KBS 수신료 전기요금 통합 징수가 바로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KBS는 심각한 재정압박을 받게 될 것이고, 한국전력 역시 새로운 징수 방법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다. 2024년 말까지로 되어 있는 KBS와 한국전력 간 징수위탁 계약 기간, 분리 징수에 따른 추가 비용,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들의 징수 분리 고지 같은 문제들도 신속히 해결되어야 할 상황이다.

어찌되었든 지난 30년 가까이 KBS는 ‘대가리가 깨져도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되어왔던 연간 6천억 원 규모의 조건 없는 후원금’이 졸지에 날아가게 생겼다. 이 후원금은 비대한 조직과 방만한 경영에도 불구하고 KBS를 굳건히 유지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연이은 경쟁 매체들의 등장으로 광고수입이 급감해도, 대놓고 편파보도를 해도 KBS를 버티게 해준 수호천사였던 것이다.

대형 산불이 나도 ‘나 몰라라’하고, 정권과 유착해 어용방송을 쏟아내도, 보든 안보든 모든 국민이 매달 2,500원씩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꼬박꼬박 지원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KBS에게 수신료는 그야말로 ‘변함없이 놓여있던 포근한 안락의자’였던 셈이다. 이것은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국민이 지원하고, 그 목적에 맞게 사용되었는가를 투명하게 감독한다는 수신료 정신과 전혀 부합할 수 없다.

아마도 처음 몇 달간 시행착오와 과도기를 거치고 나면, KBS 수신료 징수율은 확연히 낮아질 것이다. 특히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들에 대한 현실적인 분리 징수 방안이 나오게 되는 올 하반기나 내년 초부터는 수신료 수입이 본격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물론 방송법에 납부 지체나 거부에 따른 제재조치가 명시되어 있지만, 징수 주체가 KBS라는 점에서 그 현실성은 지극히 낮을 수 밖에 없다.

분리 징수 이후 수신료 수입이 얼마나 줄어들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통합 징수 이전에 징수율이 50%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 이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당시에는 동사무소 같은 행정기관들의 직·간접적인 도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방송법 제64조에 징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TV 수상기 소유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최악이다. 인터넷·모바일 기기 확산으로 이른바 ‘Zero TV’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자연스럽게 수신료 인상 효과를 누려왔던 1인 가구 증가가 역설적으로 도리어 독이 되게 된 것이다.

수신료 감소는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구성원들 간에 심각한 내홍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 정권시절 마치 점령군처럼 KBS를 장악하고 정권 호위에 앞장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만든 언론노조에 대한 퇴진 압박이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KBS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수신료 분리 징수를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로 규정하고, 법적·정치적 저항 의지를 다지고 있다. 위헌소송이나 공론조사 같은 정치적 대응방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영진이 내놓은 ‘비상경영추진(안)’을 보면,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대응 방향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다. 대책은 크게 ‘인력 운영 효율화’ ‘채널 및 프로그램 축소’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인력 운영 효율화는 대대적 구조개혁이 아니라 기존 인력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오래전부터 말로만 이야기해왔던 것들의 재탕이다. 반면 구상수준이라고 하지만 1TV 광고 재개, 라디오 채널(1라디오, 1FM)의 반납추진, 월화/수목 미니시리즈와 1TV 일일연속극 폐지 같은 방안들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분리 징수로 예상되는 재정압박을 근본적인 조직과 인력 개편이 아닌 채널과 프로그램 투자 축소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KBS는 전형적인 ‘침체의 소용돌이(Spiral of Downward)’에 돌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점유율 저하 -> 경영압박 -> 콘텐츠 투자 감소 -> 콘텐츠 질적 하락 -> 시장점유율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현 KBS 집행부는 공영방송으로서 KBS 정성화가 아니라 조직과 경영권 유지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KBS는 언론노조라는 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인력과 조직을 정비하는 개혁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정치적 압박을 참고 견디어내, 자신들을 지지해 줄 정파가 다시 집권하기를 기다리는 ‘고난의 행군’이라 생각하고 있을수도 있다. 이런 인식은 공영방송을 더욱 정치 패권주의에 매몰되게 만들 것이다.

지금 KBS가 해야 할 일은 공영방송에서 일탈한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솔직히 KBS가 지금도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영방송이라면 분리 징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한마디 자기반성조차 없는 자구책은 ‘KBS는 KBS조직을 위한 KBS구성원들에 의한 방송’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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