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아니었다"...하버드대 교수, 통설 뒤엎는 연구 성과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아니었다"...하버드대 교수, 통설 뒤엎는 연구 성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美 하버드대학 로스쿨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 "여성들 속여 데려간 악덕 포주들이 문제"
태평양전쟁시 일본과 조선의 사료들 분석하고 '위안부=성노예' 주장 낱낱이 반박
이용수 "빨간 원피스와 가죽 구두에 마음이 혹했다" 故 김학순 "어머니가 40원에 나를 팔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 주장한 이들의 초기 증언에도 비슷한 해석 가능한 대목 나와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사진=하버드대학)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사진=하버드대학)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는 성매매를 강제당한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는 오는 3월 간행될 예정인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제65권에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산케이신문은 램자이어 교수의 동의를 얻어 논문의 요약본을 소개했다.

이 논문의 핵심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는 당시 제국주의 일본에서 합법이었던 공창제가 전장으로 옮겨간 것이며 ‘일본군 위안부’로 종사했던 이들은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자기 이익을 충실히 추구했다는 것이다.

논문에서 램자이어 교수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종사한 여성들이 모두 납치돼 성매매를 강요당한 ‘성노예’가 아니었으며 모집 업자의 꾐에 넘어간 일부 피해자들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램자이어 교수는 당시 일본 내무성이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할 때 기존에 매춘부로 일하던 여성만을 고용하도록 했으며, 소관 경찰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지로 ‘일본군 위안부’에 응모한 것인지 본인의 의사를 직접 묻고, 계약이 끝나면 즉시 귀국해야 한다고 말해 주도록 지시했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램자이어 교수는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강제하거나 일본군이 부정한 모집 업자들에게 협력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여성들을 꾀어 위안부로 만든 업자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램자이어 교수는 또 당시 제국주의 일본에서 딸을 매춘 업자에게 팔아넘기는 부모들을 향한 비판 여론이 있었다며, 일본 정부는 젊은 여성이 악덕 업자에 게속아 성매매를 강제당하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은 오는 3월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제65권에 실릴 예정이다.(출처=사이언스다이렉트)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은 오는 3월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제65권에 실릴 예정이다.(출처=사이언스다이렉트)

램자이어 교수가 지적한 사실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호소해 온 이들의 초기 증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대만에 위치한 ‘가미카제 특공대’ 부대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일했다는 이용수(93) 씨의 경우 지난 1993년 발행된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1)》(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정신대연구소 편)에서 “국민복에 전투모를 쓴 일본 남성이 보퉁이를 풀어 보이니 그 안에 빨간 원피스와 가죽 구두가 보였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다른 생각도 못하고 (남성을) 선뜻 따라나서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용수 씨의 증언 내용을 분석해 온 이들은 이 씨의 증언에 등장하는 ‘국민복에 전투모를 쓴 일본 남성’이 당시 전형적인 매춘 업자(포주)였다고 지적한다.

지난 1991년 8월1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나선 고(故) 김학순 씨도 열다섯 나이가 되던 해 어머니가 양아버지에게 40원에 팔아 권번(기생 교육 전문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양아버지 손에 이끌려 기생 영업을 위해 북중국으로 향하게 됐다고 증언했는데, 이 증언에 등장하는 ‘양아버지’ 역시 ‘포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