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정책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가 ‘매연저감장치(DPF) 게이트’에 휩쓸릴 조짐이다. 1대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DPF를 장착하지 않으면 5등급 경유차량은 수도권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폐차 처분하도록 조치한 환경부의 DPF사업이 복마전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는 별도 예산을 편성, 고가의 DPF 장착을 원하는 차량 소유자에게는 구매금액의 90%까지 지원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같은 의혹을 공식 제기했으나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일단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정부 부처 안팎에서도 환경부의 DPF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기류가 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위반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5등급 차량의 도심 진입을 단속하는 장치. 위반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사진=양준서 기자>

DPF 장착 안한 5등급 차량은 수도권 진입 못해, 1대당 1000만원 선인데 예산지원 90%

화근은 올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시행되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이다. 핵심은 ‘5등급 차량의 운행제한’이다. 원칙적으로 5등급 차량은 수도권으로 진입이 불가능하다. 단, 미세먼지 저감장치라고 불리는 DPF를 장착한 차량은 진입이 가능하다. DPF를 장착하지 않은 차가 수도권으로 진입할 경우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수도권으로 진입하거나 과태료를 내지 않으려면 'DPF를 달면 된다‘고 강제한다. 심지어 내년 11월까지 DPF를 신청하기만 해도 이미 납부한 과태료를 되돌려준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선심정책이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는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요구로 시작되었다. 작년 12월에 1차로 시행되었고 이번에 2차가 시행되고 있다. 문제는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경유차의 배출가스를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 5등급 경유차량을 희생양으로 삼아, 5등급 경유차 소유주로 하여금 DPF 장착이나 조기폐차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자동차 등급제는 현재 5등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동차 등급은 제작 당시의 배출 허용기준에 따라 산정되었기 때문에 변경되지 않는다. 자신의 차가 몇 등급에 속하는지 알고 싶으면 환경부 홈페이지에서 ’자동차등급조회‘를 검색하면 된다.

문제는 5등급차를 무조건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매도한다는 점이다. 등급별로 미세먼지 배출기준이 일괄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차량마다 배출기준은 다 다르다. 5등급 경유차는 주로 2005년 이전에 제작된 차량이기 때문에, 대부분 노후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차량 소유주에 따라서 5등급 차량이지만, 배출허용기준보다 더 낮은 미세먼저를 배출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배출허용기준은 15%이지만, 관리를 잘 해서 8%로 내뿜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환경부 담당 공무원조차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5등급 차량이라도 관리가 잘 된 차량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배출허용기준으로 단속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편의상) 일괄 등급제로 단속하고 있다”며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 단속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봉고 트럭 소유자 A씨, “DPF 강요하는 정부 정책 이해할 수 없어”

봉고 1톤 트럭 소유자인 A씨는 “2005년식 차량이지만 관리를 잘 해서 미세먼지를 10% 수준으로 배출하고 있다. 그런데 무조건 조기폐차를 하라니 너무 화가 난다. 심각한 사유재산 침해다”라며 항변한다. 동네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용도로 트럭을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지원금이 있더라도 당장 조기폐차하고 새 차를 구매할 여력은 없는 실정이다.

A씨는 “조기폐차 아니면 DPF를 달라고 하는데, DPF를 달고 나면 출력이 떨어지고 연비도 떨어져서 DPF를 달고 나서 불만인 사람들이 더 많다”면서 DPF를 강요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토로했다.

A씨처럼 생계형으로 경유차량을 운행하는 입장에서는 DPF를 장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80~90% 보조를 한다고 하지만, DPF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소 500만원에서 1000만원을 넘는 제품도 있다. 500만원에서 20%를 자부담한다고 해도, 100만원 정도 자기부담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경찰청에 수사의뢰, “DPF 제조 업체가 원가 2배 부풀려 꿀꺽”

환경부는 왜 DPF 장착을 의무화했을까. 혹시 DPF 사업자와 환경부 간의 유착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DPF 지원사업을 둘러싼 이 같은 세간의 의혹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8일 'DPF 제작사가 정부보조금을 꿀꺽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노후 경유차에 부착되는 DPF 제조 업체가 원가를 2배 이상 부풀려 정부 보조금 수백억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너난 것이다.

권익위는 이날 오전 브리핑을 통해 A사가 1종 DPF 제품의 제조 원가를 실제(405만원)보다 높은 870만원으로 써냈고, 환경부는 여기에 운영 비용 등을 붙여 대당 97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A사는 보조금 규모가 자신들이 제출하는 원가 자료를 기초로 한다는 점을 악용해 이런 수법으로 작년에만 300억 원가량의 보조금을 타냈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경찰청에 A업체를 수사 의뢰하고,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규모로 제조 원가를 책정하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의혹이 있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권익위가 의혹을 제기한 사항에 대해선 현재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으나, 권익위로부터 관련 자료를 협조받아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권익위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단 부인부터 한 뒤 ‘추후 조사’ 카드로 궁지를 모면하려는 듯한 태도이다.

권익위는 환경부 출신 포진한 협회와 제조 업체간 유착 의혹 제기해

그러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권익위는 장치 설치 신청 창구인 부착지원센터와 제조 업체 간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환경부와 한국자동차환경협회, 제작사간 협의로 설립된 부착지원센터의 실질적 대표가 협회 출신이다. 그리고 협회엔 환경부 출신 공무원들이 간부로 있기 때문에, 권익위는 ‘센터에 대한 적절한 관리·감독이 어려운 구조’라고 주장한 것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제작사들은 장치 부착 건수에 따라 협회에 매년 수억 원의 회비를 내고 있었다”며 “센터에도 소개 수수료 명목으로 대당 25만~85만원씩 수십억원을 납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덧붙여 "환경부가 센터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고 소개 수수료를 받도록 한 것은 환경부의 관련 업무지침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권익위가 제기한 유착 관계 의혹에 대해 "적법한 절차로 납부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향후 감사 등을 통해 보조금 집행을 더욱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라며 "권익위의 의혹제기 사항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수사결과에 따라 만약 위법사항 적발시 부당이득 보조금을 환수하는 등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익위가 제기한 ‘제작사와 부착지원센터 간의 유착의혹’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경유차 소유자들은 다양한 커뮤니티와 SNS등에서 “언젠가 DPF 비리가 드러날 줄 알았다. 소용도 없는 제품을 로비로 납품하고, 또 거기다가 제조 원가까지 부풀려서 돈을 받았으면, 다시 어딘가로 토해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장착을 의무화하라고 나팔을 불어댄 것 같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환경부 출신 공무원들이 관련된 한국자동차환경협회의 비리는 결국 환경부와도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환경부 게이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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