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친북화·방송장악·사회주의 개헌' 논란으로 야권의 집중 공세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여야 원내대표들과의 회동을 검토하라"고 청와대 참모들에게 '깜짝 지시'했다.

6·13 지방선거 동시 국민투표로 시한을 못박아 둔 헌법 개정은 물론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민생·경제 입법 논의 등을 명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기존 '일대 다' 방식에서 변화가 없다면 "들러리 회담"을 거부해 온 자유한국당을 표적으로 한 종전의 '협치(協治) 연출' 공세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로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 의원 17명을 초청한 오찬에서 이런 지시 사항을 내놨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원내대표 교체도 있었고 2월 국회를 앞둔 만큼 청와대와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을 진행했으면 한다"고 요청하자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여야 대표급 회담 타진은 사실상 '성사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협치-반(反)협치 프레임 공세의 반복이라는 분석이다. 대통령이 선(先) 제안한 회담에 여야 제정당이 호응하면 정권의 공로로 돌릴 수 있고, 불참하는 정당은 협치 거부세력으로 규정하면 된다는 계산이 깔렸을 수 있다.

이는 여권과 가장 대척점에 선 한국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참모진이 '특히 한국당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관측에 힘을 싣는다. 기계적 중립을 선호하던 제2·3야당인 국민의당·바른정당이 회담이 있을 때마다 '기계적 참여'를 해온 것도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낮 청와대 인왕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낮 청와대 인왕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가장 최근 청와대와 여야 대표급 회담은 지난해 9월에 있었다. 문 대통령은 여야 5당 대표들을 초청해 만찬 회동을 갖자고 했으나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진정성이 없으므로 참석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들러리 회담'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는 다수의 야당 대표 중 일원으로 참석하면 회담의 의전 등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정작 현안에 대해 깊이 대화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비교섭단체 정당 지도부까지 초청하는만큼 제1야당 대표의 위상이 살지 않는다는 의중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민주당과 나머지 야3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은 매번 참석해 회담을 가졌으나, 한국당을 반협치·민생외면 정당으로 규정하는 공세를 가할뿐 정국 해법과 같은 진전을 보여준 적이 없다.

한편으로는 한국당이 이번 원내대표 회동 제안에 응할 여지도 남아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였던 지난해 5월 원내대표 초청 회동 때는 유일하게 정우택 당시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최근 투쟁력과 유연성을 동시에 피력하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선출됨에 따라, 상견례 차원에서 참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김 원내대표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UAE 특사 몰래 파견'을 줄기차게 추궁하다가, 결국 국회로 직접 찾아온 임 실장과 해당 의혹으로 더 이상 공세를 주고 받지 않는 선에서 타협한 적도 있다. 다만 그는 전날(22일) 정부·여당 측의 KBS 고대영 사장 해임 강행을 계기로 여권과 각을 세워 참석 여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당내 회의에서 청와대-여당 원내지도부 오찬을 "축하연"으로 비유하며 "조촐한 잔치라도 베푸는 것 같다"고 직격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23일 여당 원내지도부와의 오찬에서 "당정청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면서 "민심 위로를 잘하고 역사적 과제 앞에서 함께 노력하자"고 독려했다.  우 원내대표는 "올해는 우리 정부에 중요한 시기이며 내 삶을 바꾸고 국민의 삶을 바꾸는 성과를 내야 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2월 민생국회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오찬에서는 가상화폐나 부동산 관련 대책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전·현직 대통령 갈등'으로 비화한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의혹 수사에 대한 언급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주로 여당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고 참석 의원들이 각자 간단히 발언하는 형식으로 행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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