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 (宋在倫, 하버드 대학 박사)-맥매스터 대학(McMaster University) 교수(중국역사/철학), 작가-주요저서: 학술서적 Traces of Grand Peace (Harvard University) 및 영어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등. 중국인명 및 지명 표기와 관련해서 독자분의 문의가 있어 간단히 제 생각을 밝혀야 함을 느낍니다. 현재 펜앤드마이크에 연재 중인 [문혁춘추: 현대 중국의 슬픈 역사]에서는 중국 인명 및 지명을 우리말 한자발음으로 표기합니다. 시진핑을 "습근평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8回. “人民民主獨裁의 悲劇" 1. 문혁(文革)의 기원 왜 우리는 “문혁”을 탐구하기 위해 부득이 1940년대 국공내전까지 거슬러 올라야만 했나?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공내전의 승리를 통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중국헌법에 따르면,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의 승리는 “모택동 영도 아래 중국의 인민들이 장시간의 무장 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무너뜨린” 위대한 “신민주주의혁명”이다. 헌법 전문(前文, 서언)은 “중국의 인민이 국가의 독립, 민족해방 및 민주자유를 위해 간단없이 영웅적
[文革春秋: 現代中國의 슬픈 歷史] 7회. “土地改革殘酷史!” 국공내전이 한창일 때 공산당이 점령한 “신(新)해방지”에선 급속하게 공산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핵심은 토지개혁이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당시 중국 전역의 농촌에서 대략 10프로의 농민이 지주(地主) 혹은 부농(富農)이라 단정했다. 토지개혁은 바로 그 지주와 부농 소유의 토지를 압류해 중농(中農)과 빈농(貧農)에 재분배하는 과정이었다. 중국정부의 선전에 의하면, 토지개혁은 지주, 한간(漢奸, 친일매국노), 국민당부역자, 토호 등등 소수의 적인(敵人)을 제거하고 다수의
[문혁춘추: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6회. “인민해방군과 인해전술” 1. 국공내전의 클라이막스, 회해전역(淮海戰役)! 1948년 10월 11일, 금주(錦州) 함락 나흘 전, 만주에서의 승리를 확신한 모택동은 남경 북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회수(淮水) 일대에 50만 대군의 투입을 결정한다. 중부 평원을 타고 장강(長江)으로 진격해 남경과 상해를 넘보는 작전이다. 만주에서 파견된 공군(共軍)은 북경 지역의 일부 세력과 합류해 놀라운 속력으로 중부 평원으로 몰려간다. 불과 1달이 못돼 공군은 강소(江蘇), 안휘(安徽), 하남(河南)성에
[文革春秋: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5. “해방, 인민을 삼켜버린” 1. “장춘홀로코스트” 최후의 작전1948년 2월 23일자 미국 타임지의 기사에 따르면, 만주 지역은 이미 99프로가 인민해방군에 점령된 상태다. 국민당군은 육로 보급이 다 끊긴 채로 장춘, 심양, 길림, 사평 등의 도시에 갇혀 있다. 붉은 공군(共軍)의 바다에 푸르스름한 국군(國軍)의 섬들 몇 조각이 둥둥 떠 있는 형국이다. 타임 특파원의 표현을 빌자면, 인민해방군에겐 이제 마지막 소탕(mop-up) 작전만이 남아 있다. 석달 후, 1948년 5월 말, 본격적으로
[文革春秋: 현대중국의 슬픈역사] 4회. “1948년 장춘 홀로코스트”(II) 1. 혁명의 성전(聖戰), 최후의 전술 1948년 5월 23일에서 10월 19일까지 5개월 간 지속된 장춘포위전에서 스러져간 난민은 최소 12만에서 최대 60만까지 헤아린다. 현재 대만과 홍콩에서 주목 받고 있는 대륙의 비판적 지식인 두빈(杜斌, 1972- )의 (2017년 작)에 따르면 1948년 그 현장에서 37만이 아사했다. 희생자의 정확한 숫자는 영원히 못 밝힐지 모르지만, 최근까지도 장춘의 공사현장에선 대량의 유골이
[문혁춘추: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3회. “1948 장춘 홀로코스트 (I)” 오늘날 중국헌법 전문에는 중국공산당의 지도 아래 모든 중국 인민들이 대단합하여 "제국주의, 봉건제도, 관료자본주의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신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 중국공산당의 자체 선전과는 별개로 "중화인민공화국"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성립되었는가? 어떤 정치적 결단, 군사적 전략을 통해서 그 참혹한 국공내전에서 군사적 열세를 극복하고 "위대한 승리"를 쟁취했던 것일까? 앞으로 3회에 걸쳐 중국인들은
1. 소동파의 간지(奸智) 11세기 후반 송(宋, 960-1279)나라에 파견됐던 고려 사신들은 수도 개봉(開封)의 국자감에서 다양한 서적을 마구 사 모았다. 당시 송나라 정부는 상서성 조령(條令)으로 서적의 국외반출을 엄격히 관리했다. 역대 제왕(帝王)의 통치술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 태학(太學)의 칙령(勅令)과 세칙(細則), 그리고 역대(歷代)의 역사서(歷史書)들은 고려 사신들에겐 금지된 서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려의 사신들은 국자감의 관리들과 개인적 친분을 터서 슬그머니 역사서를 사들였다. 적벽
송재윤 (宋在倫, 하버드 대학 박사)-맥매스터 대학(McMaster University) 교수(중국역사/철학), 작가-주요저서: 학술서적 Traces of Grand Peace (Harvard University) 및 영어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등. 1. 여전히 중국은 미지의 대륙2018년, 한반도를 둘러싸고 격심한 변화가 예견된다. 의 경구처럼, “매사 극단으로 가면 변하게 마련이고, 변화는 막힌 것을 뚫고, 막힌 것이 뚫리면 오래도록 새로운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