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10미터 앞 '수요시위' 장기간 방치해 온 경찰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10미터 앞 '공자학원 추방 촉구 집회'는 신고하는 족족 '금지'
관련 재판에서 "'수요시위'는 장기간 개최돼 왔기 때문에 특수하다" 궤변 늘어놓기도

경찰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지난 30여년간 개최돼 온 ‘수요시위’를 특수하게 취급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 논란이 예상된다.

14일 펜앤드마이크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서울특별시경찰청은 최근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앞 집회와 관련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에 이같은 주장을 펼쳤다.

지난 2011년 12월14일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개최된 제1000차 수요시위의 모습. 2011. 12. 14.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1년 12월14일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개최된 제1000차 수요시위의 모습. 2011. 12. 14. [사진=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에는 지난해 8월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경계 10미터(m) 지점에서 국내 중국어 교육기관인 ‘공자학원’의 영구적 철수를 촉구하는 집회에 대한 서울 남대문경찰서의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해당 사건 원고는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지난 1992년 1월 이래 매주 수요일 개최되고 있는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 측 ‘수요시위’와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찰이 ‘수요시위’에 대해서는 특별히 금지 조치를 하지 않아 왔음에도 자신의 집회를 금지한 것은 매우 불공평한 처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해당 사건 심리를 맡은 동(同) 법원 제3부(재판장 최수진)는 ‘수요시위’에 대해 경찰이 특별히 금지 조치를 하지 않아 온 까닭을 설명하라는 취지의 권고를 했다.

재판부 권고에 따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측은 지난 1월29일 참고서면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 문건에는 경찰이 ‘수요시위’를 특수하게 취급해 왔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원고가 언급한 ‘수요시위’는 1992년 1월8일 제1차 집회를 시작으로 2024년 1월17일 기준 1631차에 걸쳐 약 32년 동안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점심시간대에 개최되고 있다”며 “경찰은 ‘수요시위’가 이례적으로 장기간 개최되고 있는 점, 현재 경찰의 관리 하에 안정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점,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개최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외교기관 경계 지점 100미터 이내임에도 금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개최되고 있는 ‘수요시위’는 그 특수성을 고려해 매우 제한적으로 집회를 개최하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2024년 1월29일자 참고서면의 내용. 2024. 1. 29. [자료=제공]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2024년 1월29일자 참고서면의 내용. 2024. 1. 29. [자료=제공]

경찰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어느 유력 인사는 “말도 안 된다”며 “경찰이 불법 행위를 지속해 왔음을 자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단체가 장기간에 걸쳐 특정 목적의 집회를 반복적으로 개최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특수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의 최상급 기관인 경찰청 역시 특정 집회가 단순히 장기간에 걸쳐 개최돼 왔다는 점만으로 ‘특수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률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주한 중국대사관 앞 집회와 관련한 소송의 원고는 “‘수요시위’가 처음 개최된 1992년부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대사관 등 국내 주재 외교기관 인근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의 집회가 조건부 허용된 2003년 사이의 기간은 국내 주재 외교 기관 인근은 ‘집회 개최 절대 불가 지역’이었다”며 “적어도 10여년 동안 ‘수요시위’는 ‘불법집회’의 지위에 있었고 마땅히 경찰의 단속 대상이 돼야 했음에도, 경찰이 그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탓에, 정의기억연대와 그 전신(前身)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불법집회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만일 경찰이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수요시위’를 엄단했다면 경찰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문제의 집회가 반복적으로 개최되는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경찰은 자신들의 귀책으로 인해 벌어진 사실을 근거로 ‘수요시위’를 변호하고 있는데, 중립적이어야 할 국가기관이 특정 단체의 특정 집회를 변호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태도”라고 강조했다.

원고는 ‘수요시위’가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경계 10미터 앞에서 적어도 25년 이상 개최돼 온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경계 10미터 앞 장소 역시 집회가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펜앤드마이크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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