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체제 본격 개막...모친 이명희 회장은 총괄회장으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8일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이후 28년 만에 회장직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 9월 '정용진의 남자'라고 불린 임원을 전격 해임하며 창사 이래 역대급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이명희 회장은 그룹 총괄회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신세계그룹은 이날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유통 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위기 요인이 쏟아지고 있어 그만큼 강력한 리더십이 더욱 필요해졌다"며 "정용진 회장 승진을 통해 시장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혁신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최고의 고객 만족을 선사하는 '1등 기업'으로 다시 한번 퀀텀 점프하기 위해 이번 인사를 단행했다"고 부연했다.

정 부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그룹 총괄회장으로 역할을 계속 한다. 

정 부회장은 1968년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이명희 회장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성가(家) 3세 경영인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동갑내기 사촌지간이다. 똑같이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정 부회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이 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 정 부회장은 재학 중 도미해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 회장은 졸업 이후 일본 게이오대 경영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수료) 코스를 밟았다. 정 부회장은 1995년 27세의 나이에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해 1997년 기획조정실 상무, 2000년 경영지원실 부사장, 200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회장을 거쳐 신세계와 이마트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차례로 맡았다.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그룹 사장은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1943년생으로 이미 80세를 넘긴 이 회장이 뒤로 물러나고 50대 중반인 정 부회장이 그룹회장으로서 신세계그룹의 작금의 위기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그룹의 핵심인 이마트는 쿠팡과 알리익스프레스 등의 공세 속에서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46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마트 자회사인 신세계건설의 대규모 적자(1878억원,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 900% 돌파)도 악재였지만, 이마트 자체 이익만 따져봐도 2018년 4893억원에서 지난해 1880억원으로 5년 새 60% 이상 급감한 게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다. 이마트 매출이 줄어 사상 처음으로 전체 매출(약 29조4천억원)에서 쿠팡(약 31조8천억원)에 밀렸고, 전자상거래 계열사인 SSG닷컴과 G마켓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거듭되는 실적 악화에 칼을 빼들어 최고경영자(CEO) 40%를 물갈이했다. '정용진의 남자'로 불린 강희석 이마트 대표 겸 쓱닷컴(SSG.COM) 대표, 손영식 신세계백화점 대표 등을 해임하고 다른 핵심 계열사의 대표이사들도 해임, 또는 재배치를 단행했다. 

동시에 정 부회장의 향후 경영 활동을 보좌할 경영전략실 인사를 통해 강력한 친정 체제 구축에도 나섰다. 당시 정 부회장이 경영전략실 인사를 직접 관장하기도 해 이 회장이 아들에게 더 큰 책무를 맡기려는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처럼 정 부회장도 그룹 회장으로서 경영 전면에 나설 때가 왔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인사 후 첫 회의에서 "조직, 시스템, 업무처리 방식까지 다 바꿔라"라고 지시하며 강도 높은 쇄신을 요구했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는 "조직은 성과를 내기 위해 존재하고 기업은 수익을 내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세계그룹은 이달 21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이마트도 오는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연다. 정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어도 지분 구조에 변동은 없다. 이명희 총괄회장이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10.00%씩 갖고 있고, 정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은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18.56% 갖고 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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