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잔류를 선언했다. 서울 중성동갑 공천 배제가 결정된 지난달 28일 왕십리역에서 퇴근길 인사를 강행하던 결기와 달리, 당의 컷오프를 수용한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4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잔류를 선언했다. 사진은 4일 MBN 방송 화면 캡처. [사진=MBN 캡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4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잔류를 선언했다. 사진은 4일 MBN 방송 화면 캡처. [사진=MBN 캡처]

지난 2일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에게 직접 연락해 회동을 가졌던 임 전 실장은 당시만 해도 민주당 탈당이 유력시됐다. 하지만 4일 새벽 페이스북에서 “당의 결정을 수용합니다”라는 단 한마디의 입장으로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임 전 실장의 당 잔류는 3가지 잘못된 판단의 산물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개딸 전체주의’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민주당 내 다양한 대항세력의 존립 근거를 깔끔하게 소멸시켰다는 것이다.

① 잘못된 판단 1= 당선 가능성 희박하다고 보고 고향 장흥 출마도 포기...‘전현희 선대위원장 카드’만 남아

임 전 실장은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를 만난 직후인 3일 광주를 방문했다. 새로운미래로부터 광주 혹은 고향인 장흥의 출마를 권유받은 것으로 알려진 임 전 실장이 광주를 직접 방문해 그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관측된다.

임 전 실장은 광주에서 강기정 광주시장과 송갑석 민주당 의원 등 친문인사를 만났다. 민주당 공천 갈등을 바라보는 광주의 민심과 본인의 광주 출마에 대한 광주 여론을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이낙연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가 광주의 민심을 얻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임 전 실장이 광주에서 만난 강기정 시장은 4일 페이스북에 “민주당 분열이 커져서, 광주시민들의 걱정이 더 커져갑니다. 임종석 실장의 백의종군을 계기로, 민심을 헤아리는 정치가 절실한 아침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통해, 강 시장이 임 전 실장에게 ‘민주당 잔류’를 권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강기정 광주시장 페이스북 캡처]
[사진=강기정 광주시장 페이스북 캡처]

게다가 임 전 실장은 새로운미래 간판을 달고 장흥에서 출마를 해도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장흥, 보성, 고흥, 강진 등 4개 지역구가 합쳐져 있는 선거구에서 현직은 재선인 김승남 민주당 의원이다. 여기에 문금주 전 전남도 행정부지사가 뜨겁게 맞붙고 있기 때문에, 뒤늦게 임 전 실장이 뛰어들어 승산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임 전 실장이 3일 광주에서 민심을 파악한 결과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뒤 당 잔류를 결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임 실장이 이같은 이유로 당에 잔류한 상황에 대해 “정무적 판단이 틀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4일 MBN에 출연한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는 “임 전 실장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었다. 당을 나가서 ‘광주의 아들’을 자처하고 호남 대망론을 띄웠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임 전 실장이 당에 잔류함으로써 “이재명의 사천을 수수방관하고 묵인하는 꼴이 됐다”며 “아주 비겁하고 소심한 선택을 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임 전 실장에게는 ‘전현희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 카드만 남게 됐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② 4‧10 총선 패배 후 당권 장악하려고 당 잔류?...총선에서 져도 ‘이재명의 민주당’은 요지부동

대부분의 언론들은 임 전 실장이 탈당을 접고 당에 남은 이유로 ‘8월 전당대회’를 노리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패할 경우,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게 되고 8월에 있을 당대표 경선에서 임 전 실장이 도전해 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이재명 지도부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임 전 실장이 당권에 도전할 명분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사진=MBN 캡처]
[사진=MBN 캡처]

실제로 임 전 실장의 잔류에는 친문계 원로들의 만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원칙과상식’ 윤영찬 의원의 탈당을 만류했던 임 전 실장이 이번에는 윤 의원을 비롯한 친문계 원로들로부터 ‘후일을 도모하자’는 권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4일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당의 원로들은 임 전 실장이 탈당해서 이낙연 대표와 손을 잡게 되면 민주당 내 명문 충돌의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한 것’으로 알려진다. 친문 구심점으로 당내 입지를 키워가다가 총선 이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 경쟁에 나설 것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임 전 실장을 포함한 친문에게 당권을 잡을 기회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4일 채널A에 출연한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선거에서 민주당이 지더라도 친문에게 다시 기회가 오기는 어렵다”면서 “대의원의 영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권리당원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기 이미 당협위원장들이 대부분 친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친문이 당권에 도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완전히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위원은 “총선을 지든 이기는 (이런)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친명계의 또 다른 당대표가 나오기 때문에 친문계에게는 다시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위원은 임 전 실장을 포함한 친문계가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③ 향후 민주당 내 친문 구심점 역할 기대...홍영표가 친문 구심점 부상, 임종석 존재감은 소멸 중?

이재명 대표는 지난 4일 임 전 실장의 잔류 결정에 ‘고맙다’고 추켜세웠다. 임 전 실장의 잔류로 반명 연대 기세가 일단은 한풀 꺾였기 때문에 이 대표로서는 한숨 돌린 셈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임 전 실장의 총선 역할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역할을 맡길 뜻은 없는 것으로 풀이됐다.

임 전 실장도 명확하게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관측된다.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서 ‘역할은 고민할 것’이라는 정도의 반응만 확인되고 있다. 다만 페이스북의 커버 사진을 ‘4월 10일 윤석열 정권 심판의 날!’로 바꾼 것을 통해, ‘전현희 중성동갑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오는 정도이다. 

[사진=임종석 페이스북 캡처]
[사진=임종석 페이스북 캡처]

전현희 후보의 당선을 위해 일정 부분 역할을 함으로써, 이후 당내에서의 입지를 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임 전 실장의 정치적 미래는 없어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친문계 구심점으로서의 역할도 홍영표(4선·인천 부평을) 의원이 독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 의원은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을 방문해 문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말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의 불만을 홍 의원이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 

홍 의원은 5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백척간두에 선 심정으로 내일은 입장을 밝히려 한다"며 탈당 의사를 거듭 내비쳤다. 이재명 대표를 향해 "저질 리더", "공천 장난질", "독한 리더십"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따라서 민주당 탈당 사태의 기로는 홍 의원에게 달린 것으로 관측된다. 당에 잔류한 임 전 실장과 대비되는 홍 의원의 선택에 따라 최근 ‘친문의 구심점’으로 거론되던 임 전 실장의 존재감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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