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공천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정파 간의 권력투쟁이다.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명계와 ‘가차없이 축출된다’는 점에서 공동운명체인 비명계 간의 다툼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중·성동갑에서 공천 배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선거운동을 재개, 홍영표 의원 등 친문계 인사들과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서울 중·성동갑에서 공천 배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선거운동을 재개, 홍영표 의원 등 친문계 인사들과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진보 레거시 미디어 ‘위선적 객관성’ 추구 VS. ‘극단적 이념 편향성’은 개딸 세력의 훈장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더 거대하고 본질적인 관전 포인트가 발견된다. 문명사적인 전쟁이다. 진보성향 레거시 미디어와 SNS를 기반으로 한 ‘개딸 세력’이라는 팬덤정치 세력 간의 가치관 충돌이 그것이다. 신문, 잡지, 방송 등과 같은 레거시 미디어는 소수의 정치전문가들이 그 논점을 결정하는 구조이다. 전문가 필진과 정치부 기자들이 그들이다.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보다는 논평 기능을 수행하는 지식인들이다. 이념적 편향성을 갖고 있지만 ‘위선적 객관성’이라도 추구하는 편이다.

이에 비해 ‘개딸 세력’은 레거시 미디어를 장악한 지식인들에 비해서 숫적으로 다수이다. 각종 집회 참여, 적극적인 정치 후원, SNS를 통한 의견표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참여자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극단적인 이념적 편향성을 갖고 있고, 그러한 편향성을 당당하게 여긴다. 고쳐야 할 문제점이 아니라 자랑할 만한 훈장이다.

진보 레거시 미디어, 이재명의 ‘민주당 사당화’ 비판하면서 비명계 편 들어...민주당 총선 승리에 목매

진보 레거시 미디어는 비명계 편을 들고 있다. 이재명과 친명계가 공천의 공정성을 상실한 채 당파적 공천에 치중함으로써 민주당 내분사태를 초래했고, 4.10총선에서 민주당에게 유리했던 어젠다인 ‘정권심판론’을 스스로 희석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 신문뿐만 아니라 한겨레, 경향신문 등과 같은 친민주당 성향 미디어도 마찬가지이다.레거시 미디어들은 이번 민주당 내분사태에서 비명계 편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한겨레 캡처]​
​[사진=한겨레 캡처]​

한겨레 강희철 논설위원은 지난달 27일 “윤석열의 ‘메소드 연기’, 이재명의 자해극”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정치신인이라면서 얕잡아봤던 야권의 오판, 이재명 대표의 자충수 등으로 인해 4.10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강 위원은 “민주당은 여전히 상대편 전략 변화에 무신경하다. 객관적 표심 이동에도 관심이 없다. 자나 깨나 윤만 때리면 총선에서 이긴다고 굳게 믿고 있다”면서 “그 와중에 자기 진영은 사분오열 상태에 빠졌다. 생존 욕망에 사로잡힌 이재명의 자기 당 만들기가 위기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에선 ‘어게인 2012’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압승 장담으로 시작해 뼈저린 패배로 끝난 12년 전 총선이다. 일찌감치 이재명의 대표직 사퇴를 권고한 정세균의 선견지명이 틀리지 않았다”고 민주당의 총선 참패를 전망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민주당의 사당화’에 몰두하느라 총선 패배를 자초하고 있다고 맹비난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다급하게 이재명 대표 사퇴 요구, 이재명의 인격까지 비난해

[사진=경향신문 캡처]
[사진=경향신문 캡처]

경향신문은 더 강하게 이 대표를 압박했다. 지난달 27일 이대근 우석대 교수의 칼럼 ‘이재명 사퇴를 권함’을 게재했다. 야권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이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이 교수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냈다.

이 교수는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당 지도자로서 부적격”이라면서 “선거제를 약속하고, 그걸 뒤집고, 뒤집은 걸 다시 뒤집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하고는 포기를 포기했다가 이런 변심을 지지하지 않은 동료 의원을 공천 과정에서 보복했다. 전당대회 연설에서 ‘당대표 경쟁 후보가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는 ‘공천 때 복수하는 당’으로 만들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보수신문보다 더 노골적으로 이 대표가 ‘보복공천’을 단행하고 있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또 “이재명은 자기 외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제1당을 이끌면서 주요 현안을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홀로 결정한다”면서 “자기애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자기 아닌 거의 모든 것과의 불화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한다. 그게 바로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것들이다. 공천 파동은 자기애의 표출이다”고 단언했다. 비명계를 공천에서 제외하는 이 대표의 행태를 단순히 권력투쟁의 산물이라고 보는 수준을 넘어서 ‘인격적 문제’라고 지적하는 셈이다. 이 교수는 ‘이재명이 사퇴하고 선거에 승리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아주 다급한 분위기이다. 노골적으로 민주당의 살 길을 제안하고 있다. 형식적인 중립마저도 포기한 채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가 총선 패배를 자초하고 있는 만큼 이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익을 걱정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신문의 정치적 편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개딸’이라는 팬덤정치 세력, 총선승리보다 윤석열 정권 투쟁경력을 제1의 미덕으로 제시

그러나 ‘개딸’이라는 팬덤정치 세력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지금은 총선 득표율 계산을 할 때가 아니고 윤석열 정권 타도에 기여한 인물을 중심으로 총선 공천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와 친명계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포함한 친문계 인사를 사실상 숙청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본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서 윤석열 정권에 대한 투쟁경력을 제1의 미덕으로 제시한 것이다.

개딸 세력의 이념적 편향성은 레거시 미디어의 전문가들보다 훨씬 협소하다. 이는 정치적 실리를 추구하지만 이념적 원칙을 더 맹목적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훨씬 위험하다는 뜻이다. 총선에 패배하는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윤석열 정권 타도를 외치는 친명세력이 민주당을 장악하는 게 더 중요한 목표라는 인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 대표의 공천방식을 비판하는 진보신문들도 정부여당이나 보수신문과 마찬가지로 ‘적군’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재명이네마을’은 지난해부터 문 걸어 닫고 ‘이념적 폐쇄성’ 강화...딴 목소리 내는 친명계 홍영표 겨냥해 ‘자중하라’ 요구

[사진=재명이네마을 캡처]
[사진=재명이네마을 캡처]

이 같은 편파적 사고방식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배척하고 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이 모인 ‘재명이네 마을’은 회원 수 20만 6천명인 네이버의 카페이다. 그런데 지난해 4월 29일부터 올해 5월 24일까지 신규회원 가입을 받지 않고 있다. 기존 회원 이외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경우 기존의 도그마를 비판할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재명이네마을 상단에는 카페매니저가 지난달 25일 작성한 ‘홍익표 원내대표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자중하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이 글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에 대한 모든 권한은 공천관리위원회에 있다. 최근 홍익표 원내대표는 시스템 공천 결과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민주당 공천의 신뢰를 무너뜨릴 부적절한 개입이자 월권이다”면서 “홍익표 원내대표의 이런 행동이 특정 인물을 공천하기 위한 모습처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에 대해 비판을 거듭하고 있어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지도부 회의에서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 성남시 여론조사를 대행한 여론조사 업체 '리서치디엔에이'가 당 공천 관련 여론조사 업체로 참여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또 김우영 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전 은평구청장)이 아직 위원장직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 은평을 지역 경선에 참여하는 건 '해당행위'라고 비판했다. 은평을은 비명계인 강병원 의원 지역구이다. 김우영 위원장은 원외 친명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좌장 출신이다.

홍 원내대표는 또 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친문계인 홍영표 의원이 4·10 총선 공천에서 배제(컷오프)된 것을 두고도 "전략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이 매우 부적절했다"면서 "도대체 어떤 정무적 판단인지 모르겠다"며 말했다.

재명이네마을은 이같은 홍 원내대표의 발언이 ‘해당행위’라는 식으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사상검증 역할을 재명이네마을이라는 개딸 그룹이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봉변당한 임종석, ‘윤석열 정권과 싸움도 안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서울 중구성동갑에서 공천 배제된 임종석 전 실장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퇴근길 인사를 했다. 민주당 공관위에 자신에 대한 공천 배제를 재심의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난 직후라는 점에서 상징적 행위였다. 홍영표·윤영찬·송갑석 의원 등 공천 배체된 비명계 의원들이 함께 나와 분위기를 띄워줬고, 지지자들도 “임종석 파이팅‘을 외치면서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사진=조선일보 동영상 캡처]
[사진=조선일보 동영상 캡처]

임 전 실장은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한결같이 민주당이 하나로 통합해서 총선에서 이겨달라는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면서 “이 간절한 마음을 당 지도부에서 받아줬으면 한다”라고 통합을 강조했다.

그런데 개딸로 추정되는 몇 사람이 나타나 분위기를 흐렸다. 흰 머리의 남성이 돌연 임 전 실장을 향해 “아니 근데 실장님, 성동에 말뚝 박았습니까? 성동에 말뚝 박았어요?”라고 외쳤다. 임 전 실장은 입에 손가락을 갖다대는 제스처를 했지만 또 다른 남성이 “당신들 말야. 윤석열 정권에 싸움 한 번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다 나와 가지고 민주당 얘기하고 있어”라며 “당신이, 전대협 의장을 했던 사람이 그러면 돼?”라고 윽박질렀다. 윤석열 정권과의 투쟁에 나서지 않고 침묵하다가 공천배제되니 이제와서 민주당 통합 운운한다는 비난인 셈이다.

윤영찬 의원이 그들의 발언을 막으려고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당신들이 지금까지 싸움을 제대로 한 적이 있냐고. 윤석열한테 싸움을 제대로 했냐고”라고 외쳤다.

SNS 기반의 개딸 세력, 진보 레거시 미디어도 퇴장해야 할 구 정치세력의 일부로 인식?

진보 레거시 미디어는 임 전 실장과 같은 경쟁력 있는 비명계 후보를 공천하는 게 민주당의 총선승리 전략이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개딸 그룹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는 게 ‘임종석의 왕십리 봉변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라는 ‘적군’과 싸우지 않은 민주당 인사들(비명계)은 역시 ‘적군’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인 셈이다.

따라서 SNS를 기반으로 하는 개딸 팬덤정치에서 볼 때, 이재명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한겨레나 경향신문과 같은 진보 레거시 미디어도 퇴장해야 할 구 정치세력이라는 사실이 이번 민주당 분당사태에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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