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1950년 애치슨 라인 발표 5개월 뒤 북한이 한국 침략"

재집권 가능성이 커진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유세 도중 발언이 상당한 후폭풍을 불렀다.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도록 러시아를 격려하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나토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과 서방 언론 등의 즉각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그들(나토)이 '돈(방위비)을 안 내도 미국이 우리를 보호할 건가'라고 물어 '절대 아니다'라고 답했더니 믿지 않더라"라며 "그때 큰 나라의 대통령 중 한 명이 '러시아가 나토를 침략하면 우리가 돈을 내지 않더라도 미국이 우리나라를 방어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난 '그렇게 하지 않겠다. 실은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걸 하도록 부추기겠다. 돈을 내야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회원국 중 한 곳이라도 공격받으면 전체 회원국이 이에 대응한다는 나토의 집단안보 체제를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발언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간) 서면 성명을 통해 "동맹이 서로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는 미국을 포함해 우리 모두의 안보를 훼손하고 미국과 유럽의 군인을 위험하게 한다"며 "나토를 향한 모든 공격엔 단결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나토의 안보에 관한 무모한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며 "유럽연합(EU)이 시급히 전략적 자율성을 더 발전시키고 국방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 그의 발언으로 다시 한번 부각됐다"고 했다.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은 프랑스 LCI TV 인터뷰에서 "전에 들었던 얘기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라며 "그는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큰 나라의 대통령 중 한 명'이라고 언급했지만 실제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2020년에 나눈 대화였다는 주장이다.

독일 외무부는 이날 엑스에 해시태그 '함께하면 더 강해진다'(#StrongerTogether)를 달면서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이 나토의 신념은 앵커리지(미국 알래스카 도시)부터 에르주름(튀르키예 도시)까지 인구 9억 5천만 명 이상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라고 했다.

블라디슬라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은 엑스에 "동맹국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은 나토 전체를 약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어떤 선거 운동도 동맹의 안보를 갖고 장난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원래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의 집단방위 개념을 믿지 않았고 동맹국들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압박해왔지만, 동맹국을 공격하라고 적국을 선동하겠다는 발언은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NYT는 "역사는 (이런 상황이) 전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극동) '방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고 강조했다.

영국 BBC방송은 "자극적인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비평가들을 화나게 하며 지지자들을 흥분시키는 전형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식"이라면서도 "푸틴이나 시진핑이 동맹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오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사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면 그러한 발언은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확대할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다. 상황의 심각성에 맞춰 군사 안보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에게 더 많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청신호를 주려고 한다"며 "끔찍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미국 백악관도 성명에서 "사람을 죽이려 드는 정권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침략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끔찍하고 정신 나간 일"이라며 "미국의 안보, 세계 안정, 미국의 국내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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