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확대 적용됨에 따라, 중소기업인들의 반발이 심상찮다. 특히 동네 음식점이나 제과점 같은 자영업자들도 이 법의 대상이 되는데, ‘직원을 4명으로 낮추겠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1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 후 회의장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촉구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2024.2.1. [사진=연합뉴스]
1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 후 회의장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촉구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2024.2.1. [사진=연합뉴스]

중처법 적용 대상은 기존 7만 1000곳에서 83만 곳이 늘어나게 된다. 83만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8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정부여당은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중처법을 적용할 만큼 준비가 불충분하므로 ‘유예’하자는 입장이었으나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강행’을 선택했다. 정부여당은 산업과 일자리 보호 차원에서 유예를 추진한 반면, 민주당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안전을 주장하면서 강행했다.

따라서 5인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800만명의 근로자가 4월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된다. 이번 강행조치가 영세사업장 근로자를 위한 조치였는지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중소기업인 3500명 중처법 2년 유예 시위...민주당 돌연 정부 여당 협상안 거부

중소기업인 3500명은 지난달 31일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을 2년만 유예해달라,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호소하면서 시위를 했지만, 끝내 불발됐다. 정부 여당은 민주당이 당초 유예 조건으로 제시한 ‘산업안전보건청 신설’과 ‘산업재해 예방 예산 2조원 확보’를 수용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일 "어제 오후에 민주당 대표하고 회동에서 민주당 요구안(에 대한) 절충안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중처법 확대 유예를 위한 핵심 조건으로 요구해 온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신설을 ‘2년 뒤’라는 조건부로 수용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1일 "국민의힘에서 성의 있게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한다면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해, 1일 오후 본회의에서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돌연 민주당은 1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유예 불가’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달 30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산업안전보건청을 가져오면 협상을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난색을 보이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1일 오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지난달 31일 부산에 있는 폐알루미늄 처리업체에서 첫 적용 사례가 발생했는데, 아직 영세 사업장이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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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정부 여당의 협상안을 끝내 거부한 이유에 대해 홍 원내대표는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생명, 안전이 더 우선한다는 기본 가치에 충실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안청 설치를 전제로 한 2년 유예 중재안을 거부했다. 결국 중처법 적용 대상을 5인 이상 50인 미만 작업장에 확대 적용하는 시점은 지난 27일부터 적용된 채 이어지게 됐다.

윤 대통령, “민주당이 민생보다 지지층 표심을 선택” 비판

민주당의 이같은 돌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끝내 민생을 외면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여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거부한 것은 결국 민생보다 정략적으로 지지층 표심을 선택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고 김수경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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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83만 영세사업자들의 절박한 호소와 수백만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이토록 외면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과 산업현장에서의 혼란을 막고, 영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을 즉각 강구해 실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민주당의 돌변에 대해 국민의힘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의 눈치를 본다고 민생 현장을 외면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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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접는 중소기업 속출, 현대차도 긴급 점검에 나서...자동차 뿌리기업, 경영환경 악화돼

지난달 31일 현대차는 부품 협력사의 지분구조와 승계 상황에 대한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과도한 상속세부터 중처법, 노란봉투법까지 경영 환경을 옥죄는 규제가 매해 늘어나는 상황에서 협력업체들이 매물로 쏟아지면서 현대차 공급망 관리에 비상이 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경영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실적이 좋을 때 더 비싼 값에 경영권을 매각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결과라는 것이다.

현대차가 이같이 긴급 점검에 나선 데는 자동차 기업의 특성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동차 기업은 단 하나의 부품이라도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생산 라인을 아예 멈춰세워야 해, 다른 산업보다 공급망 관리가 핵심이다. 현대차만 해도 수백 개의 협력사에서 수만 개의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한 자동차 부품사 대표는 "이원화가 불가능한 핵심 부품일 경우 외국계 사모펀드로 대주주가 바뀌며 단가를 높이려는 경우도 있다"면서 "자동차 뿌리기업 역할을 하는 중소·중견업계에서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며 대기업 입장에선 공급망 관리에 더 예민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중소·중견기업이 주류인 자동차 부품 협력업계에서 막대한 상속세와 중처법 적용 등 기업 규제에 큰 부담을 느끼고 가업 승계를 포기하거나 외국계 사모펀드에 아예 회사를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세기업과 소상공인, “4인 이하로 줄여서 경영하겠다”

특히 중처법 확대 적용이 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근로자가 사망하면 사업주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중처법의 확대 시행으로 사업을 접겠다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막자는 데 반대할 사업주는 없다. 어느 사업주라도 자기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서 근로자가 다치거나 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영세 기업과 소상공인은 고금리와 경기 침체에 따른 영업 부진 앞에서 근근히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경총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7%가 중처법에 준비돼 있지 않았고, 두 곳 중 한 곳은 안전 인력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한 금속제조업체 대표는 “교통사고 안 나려면 차량 운행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 현장 책임자로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서 한 명 다쳐서 내가 구속돼 봐. 공장이 서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처법 유예가 끝내 무산됐다는 기사에는 “나는 더불어민주당 무서워서 사업 접는다. 더불어민주당 찍은 손가락을 잘라내고 싶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라, 중대재해예방법을 만들어라”라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 경영인들 중에는 “5인 이상은 뽑지 않고, 4인 이하로 업장을 경영하겠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근로자도 존재한다. 일자리가 없어지면 근로자 생계도 없어지는데, 그 상황에서 근로자 생명과 안전이 존재할 여지는 없어지고 만다.

중처법 강행으로 부작용 속출한다면, 민주당 지지층 균열로 이어질 수 있어

서정욱 변호사는 중처법 적용이 결정된 지난달 채널A에서 “(중처법은) 정말 잘못된 법”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중처법이 없어도 중대 사망사고가 나면 검경이 수사하고 노동청이 수사하고, 지금도 처벌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규제를 더 강화한 중처법을 두고 서 변호사는 “모든 우리 자영업자를 전부 교도소 담장 위에 걷도록 할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그마한 잘못이 있으면 다 교도소로 보내겠다는 이 법은 ‘악법 중에서도 악법’”이라고 지적했다.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따라서 서 변호사는 “이 법의 유예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법의 개정까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법으로도 충분히 우리 근로자들의 산재를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굳이 이런 법을 또 만들어서 자영업자를 옥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서 변호사의 주장이다.

영세 사업장 특성상 사업주가 구속되면 사업장이 문을 닫아야 한다. 결국 일자리가 없어지고 그 피해는 근로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전국 83만여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800만명이 민주당의 중처법 강행으로 이득을 볼지 아니면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지 여부는 어렵지 않게 확인될 전망이다. 현실을 자각한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이 4.10 총선에서 투표를 통해 중처법 강행을 심판한다면, 민주당 지지층의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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