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4일 류석춘(69) 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대학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같은 소식에 류 전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한 졸업생은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교수와, 그것에 반대하는 학생, 그 장면을 고스란히 내어놓는 수업은 숭고하다"면서 이번 논란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보자는 입장을 냈다.

김현동 씨(연세대 경제학과 졸업)는 이날 오후 SNS에 올린 글에서 2018년 류 전 교수의 교양 수업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수강했을 적에 겪은 일을 떠올렸다. 그는 "저서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과제였고,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한적 없다는 책의 논지에 동의하지 않아 4페이지 가량의 반박을 써 올렸다. 솔직히 수업 철회할 각오를 하고 올렸다"고 했다. 서평 제목은 '류석춘은 진실만을 얘기했는가.'

류 전 교수는 다른 학생들에게 "여러분 나이에는 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게 보통인데, 학점 잘 받고 싶어서 동의한다고 적어 쓴 사람들은 반성하세요"라며 김 씨를 불러 세웠고, 두 사람은 수업 시간이 다 되도록 모든 학생들 앞에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김 씨는 "언론에서와 같이 단지 '유명대학의 교수가 위안부를 매춘이라고 말했대' 따위로 이 사건을 정의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는 해오던 것과 같이 위안부와 관련해 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논문을 소개했고, 수업의 일환으로 그 논문에 대해 논박하고자 했다. 류석춘 교수의 주장에 반박해야 하는 학생은, 조금의 언쟁을 벌인 후 페이퍼로 반박하는 대신 녹음한 수업을 언론에 제보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그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 말이었다면, 그가 정치인이었다면, 혹은 그가 고위 관료였다면 그 발언을 언론이 대서특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교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논문을 소개하는 행위를 타인이 유출한 것이라면, 그것을 짓밟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그것을 이유로 수업을 빼앗는 것은, 그것을 이유로 수년간 재판에 부르며 괴롭히는 것은 과연 타당할까"라고 반문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는 이날 류 전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는) 해당 발언이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학 강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토론의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밝힌 견해나 평가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다만 류 전 교수가 '정대협이 일본군에 강제 동원당한 것처럼 증언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대해서만 허위사실을 적시해 정대협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하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류 전 교수는 일부 유죄 판결이 난 것에 대해 항소하겠다고 밝혔고,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은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부인하는 것인가. 검찰은 즉각 항소하여 다시금 죄를 물어야 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이하 김현동 씨가 올린 글 전문

1. 류석춘은 진실만을 얘기했는가

 2018년 봄, 그의 교양수업을 들으며 제출했던 과제의 제목이다. 저서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했는가’라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과제였고, 박정희가 노동자를 착취한적 없다는 책의 논지에 동의하지 않아 4P 가량의 반박을 써 올렸다. 솔직히 수업 철회할 각오를 하고 올렸다.

2. 김현동 학생이 누구에요?

 새파랗게 어린 대학교 2학년생의 도발적인 제목을 만난 교수님의 첫 반응이었다. 나를 일으켜 세우길래 당황했는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나이에는 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게 보통인데, 학점 잘 받고 싶어서 동의한다고 적어 쓴 사람들은 반성하세요”

3. 오늘 수업은 저랑 김현동 학생이 토론을 할거에요.

  정말로 앞에 나가서 내가 책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발표하고, 교수님과 수업시간이 다되도록 토론했다. 학술적으로 ‘착취’는 무엇인지로 시작해서, 아주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때 경험이 후에 어디에서건 토론을 할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4. 오늘 저녁에 약속있어요?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은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교수님의 지인들과 소주에 회를 먹었다. (그때 함께했던 분 중 하나는 지금 국회의원 후보로 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응원한다)

5. 원래 대학은 그래야하는거야

  얼마 후 레디컬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은하선이 연세대에서 강연을 했고, 일부 학생들이 이를 거부하는 일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한 학생이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다. 은하선 강연을 비판할 줄 알았던 것과는 달리 교수님은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원래 대학은 그래야하는거에요. 나 같은 극우 또라이부터 저 끝에 극좌 또라이까지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연구를 꺼내놓고 학생들에게 선택받길 바라는 곳이어야해요. 여러분들은 고등학생이 아니잖아요. 아닌것을 안듣는게 아니라 다 들으세요. 듣고 비판하세요. 은하선이 싫어요? 그러면 은하선이 오지 말라하는게 아니라, 은하선의 주장이 틀렸다고 가서 주장하세요”

6. 학생의 글을 내 논문 뒤에 실어도 될까요?

  나는 19년도에도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다. 이번에는 경제사회학이라는 전공수업이었고, 내가 했던 것 보다 더 수준 높은 토론이 수업 내내 오갔다. 

 수업의 마지막 과제는 출고를 앞둔 그의 논문을 읽고 서평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역시 교수님 다웠다. 수업 내내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학생의 글을 소개하며, 이 맥락은 자신이 반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는 논문 뒤에 이 글을 실어도 되냐는 양해를 구했다.

7. 연세대 교수, 위안부 매춘 발언 논란

  그 다음학기, 논란의 사건이 터졌다. 뉴스는 연일 이 사건을 보도했고, 대중은 분노했으며, 일부는 그를 찾아가 난동을 피웠다. 

 그러나 언론에서와 같이 단지 “유명대학의 교수가 위안부를 매춘이라고 말했대” 따위로 이 사건을 정의해서는 안된다. 그는 해오던 것과 같이 위안부와 관련해 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논문을 소개했고, 수업의 일환으로 그 논문에 대해 논박하고자 했다. 류석춘 교수의 주장에 반박해야하는 학생은, 조금의 언쟁을 벌인 후 페이퍼로 반박하는 대신 녹음한 수업을 언론에 제보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사건이다.

8. 노교수의 마지막

 그 뒤, 정년퇴임 전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노교수는 망신창이가 되었다. 하던 수업을 빼앗겼으며, 모욕적인 글이 적힌 포스트잇이 그의 연구실을 덮었다. 조회수에 눈먼 기자참칭 유튜버가 연구실을 급습해 물리적 위해를 가해도 ‘사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9. 학문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그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한 말이었다면, 그가 정치인이었다면, 혹은 그가 고위 관료였다면 그 발언을 언론이 대서특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논문을 소개하는 행위를 타인이 유출한 것이라면, 그것을 짓밟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그것을 이유로 수업을 빼앗는 것은, 그것을 이유로 수년간 재판에 부르며 괴롭히는 것은 과연 타당할까.

10. 나도 비겁했다

  사건 당시 나는 모 정당의 청년대변인이었다. 그와 관련된 생각을 올리는 것이 혹여 당의 입장이라는 오해를 살까봐 공개적으로 글을 쓰지 못했다. 아직도 죄송스럽고, 아직도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11.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 보호”

  오늘 있었던 법원의 판결이다. 그 앞에는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지만” 이라는 말이 붙었다.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기만 하는 말을 하기는 쉽다.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어렵다. 사회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교수와, 그것에 반대하는 학생, 그 장면을 고스란히 내어놓는 수업은 숭고하다.

  오늘의 판결이 류석춘 교수의 부정당한 마지막 한 학기에 작은 위로라도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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