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강문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서울 메가시티론이 제기되자마자 즉각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지역사회에서는 약간의 온도 차이가 있긴 했지만, 부․울․경 메가시티를 부활시키자는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미 배부른 수도권보다는 부․울․경이 급하다는 야권과 시민단체의 성토가 나왔고, 한편에서는 이제라도 추진하다 말았던 부산울산경남특별연합 운영을 다시 시작해 보자는 푸념이 나왔다. 이러한 와중에 어차피 행정통합으로 살림을 합칠 수 없다면, 당분간 각자 살림살이나 잘하자는 각자도생의 파열음도 나왔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질책하는 성명이 나오기도 했고, 차근차근 따져보자는 세미나와 공청회 등이 여권과 야권에서 모두 한동안 바쁘게 이어졌다. 전 정권에서 약속받았던 각종 국책사업들을 빨리 시행하라는 요구도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다시 또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고, 마침 조를 수 있는 호재의 이슈가 나타난 것이다. 

  돌이켜보면, 수도권에 대항하여 부․울․경을 동남권 메가시티로 도약시키자는 논의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벌써 20년이 넘은 이야기다. 그런데 모두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필자는 이들의 긴 여정과 슬픈 연애사의 스토리를 적어보고자 한다. 재결합을 위해서는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를 말하고 싶어서다.

실연으로의 긴 여정, 오랜 만남 짧은 연애

  부․울․경은 <사랑인 듯, 사랑 같은, 사랑 아닌>으로 오래 이어지다 끝나버린 불행한 삼각관계였다. 오랜 만남은 2003년 노무현 행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우면서 이에 발맞추어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는 부․울․경 광역경제협의회를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협의회는 법적 구속력도 없었고 조직이나 예산도 전무한 그저 양해각서를 교환하는 정도의 상징적 계약에 불과했다. 각 지역사회의 주민들 역시 협의회를 통해 실질적인 사업이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PK 정서만을 확인하는 상징적 결사였을 뿐 사실은 각자 살기에 바빴다. 

  2019년에 이르기까지 간헐적 친교의 만남에 머물렀던 관계가 돌연 연애 모드로 급변한 것은 세 지역의 광역발전을 추진하기 위한 특별자치단체를 구성하자는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다. 메가시티를 위해서는 이를 전담할 주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합의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 지역은 당시 모두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단체장을 두고 있었고, 이들은 문재인 행정부와 함께 기꺼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정치적 동맹의 관계이기도 했다. 

  연애는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중매인으로 적극 나선 중앙은 지방자치법까지 개정하여 특별자치단체라는 새로운 유형의 자치단체를 추가했고, 운영방안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2022년 4월 만들어진 부산울산경남특별연합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명칭만 보면 그럴싸한 독립 자치단체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세 지역이 각자 자기의 자율권은 그대로 보유한 채 광역사업만을 추진할 수 있는 조합 성격의 연합체에 불과했다. 운영을 위한 조직과 예산은 세 지역이 갹출하여 147명 공무원과 161억 규모로 기획했지만, 69개로 구성된 세부사업의 총 41조 원 규모 예산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사무소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놓고도 세 지역은 신경전을 벌였다. 울산은 울산, 부산은 양산, 경남은 창원을 고집했다. 경남은 김해, 양산, 창원으로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헤어질 결심이 드러난 것이다. 두 달 뒤 6월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울산과 경남은 새로운 단체장을 선출한다. 두 단체장은 취임하자마자 사업을 다시 검토하자며 제동을 걸었고, 끝내 같은 해 10월 특별연합은 결렬된다. 대신 법에도 없는 <부․울․경 초광역 경제동맹>을 하자고 선언한다. 연애는 여기서 끝난다.

  슬픈 연애담은 각자도생, 미팅, 중매로 이어진 교제, 동상이몽, 헤어질 결심, 이별로 길게 이어진 스토리였다. 지난 삼 년간의 어설픈 연애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활극이 벌어졌고, 활극이 끝난 지금은 각자 자기가 좋은 놈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누가 좋은 놈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지난해 7월 12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회 부울경정책협의회' 및 경제동맹 출범 행사에 참석한 부울경 지방자치단체장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7월 12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회 부울경정책협의회' 및 경제동맹 출범 행사에 참석한 부울경 지방자치단체장들. [사진=연합뉴스]

 

실연의 속사정은?

  헤어짐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야권에서는 습관처럼 윤석열 정부 탓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판을 깼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윤석열 정부는 결코 헤어지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다. 그저 각자의 사정이 있어 헤어졌을 뿐이다. 주위에서 아무리 좋다고 부추겨도 사랑은 쉽게 시작될 수 없고 궁합이 안 좋다는 험한 소리를 들어도 이미 불붙은 사랑은 어쩔 수 없듯이, 만남과 이별엔 다 서로만 아는 속사정이 있는 것이다. 

  속사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속사정은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울산-경남은  광역단체로서 오랫동안 각각 지역의 맹주로 존재해 왔다. 지리적으로는 인구 대비 관할권의 면적도 각자 충분히 여유가 있었고 각각의 경계는 엄청난 녹지와 산으로 구분되어 왔다. 특별연합은 장기적으로 세 지역의 교통망을 확충할 것이라는 사업계획을 담아냈지만, 계획에 대한 기대와 이해관계는 서로 달랐다. 특히 18개 시․군이나 품고 있는 경남의 경우는 늘 머릿속이 복잡했고, 차라리 경주와 포항을 끌어안고 싶었던 울산도 속으로는 늘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산 역시 속마음은 인접한 김해와 양산을 통합해서 빨리 숨을 쉬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오랫동안 부․울․경 연대를 함께 외쳐온 체면 때문에 두 동생과 함께 제2의 수도권으로 부상하자는 공허한 상상의 목소리만 높였을지 모른다. 막내 동생에게 알토란같은 땅을 무작정 달라고 할 순 없었으니까. 

  경제적으로는 굳이 힘을 합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만한 기반산업을 가지고 있었다. 울산은 자동차와 조선, 부산은 항만과 물류, 경남은 기계와 방위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고 이들 산업은 광역권으로 서로 연계되기 보다는 오히려 지역 내에서 연관 산업을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됨에 따라 지역단위의 독자성만을 강화시켰다. 경남은 진주까지 이어가는 서부경제권 확장을, 울산은 경주와 포항을 묶는 해오름동맹으로 세력을 키우고 싶어 했다. 즉, 부․울․경은 광역단위의 지역 클러스터로 뭉치기보다는 각자의 권역별 산업 클러스터 형성에 치중해 온 것이다. 

2021년 9월 30일 오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컨벤션센터(CECO)에서 열린 '부울경 메가시티 특별위원회 출범식'. [사진=연합뉴스]

 

  정치적으로도 단체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 및 지방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역구 기반을 독보적으로 유지하고 싶어 했다. 굳이 통합정부를 만들어 자신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적당히 느슨한 형태의 연대만 유지하면서 <광역발전> <상생발전>이라는 립 서비스만 제공하면 충분히 정치적 실익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연합의 사업들은 사실상 자신들이 지역구에서 자랑해야 할 정치적 업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행정적으로도 이 세 지역은 도시 확산 현상에 따라 밀접하게 연결되기보다는 산과 자연녹지로 구분되는 분명한 경계를 가지고 있어서 공공서비스 공급에 따른 외부효과도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서비스 비용을 분담하거나 상대에게 청구할 이유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세 지역은 비슷한 억양의 사투리를 공유하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형제의 허세만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만나서 건배사를 외치긴 했지만, 돌아서고 나면 늘  각자 손해 볼 것을 염려했다. 

  두 번째 속사정은 돈의 문제였다. 진정한 협력은 주머니를 함께 털 때 일어날 수 있다. 각자 자기 주머니 따로 챙기게 되면, 협력이란 가끔 만나서 식사 한번 하는 정도의 친교 수준에 머무른다.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에서 주식회사가 가장 합리적인 협력의 결사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바로 다수의 참여자들이 돈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자본과 노동이 결합된 조합보다는 자본과 노동을 분리한 냉정한 경영은 수익창출을 위한 최고의 방식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부산-울산-경남은 각각 돈주머니를 따로 차고 있었다. 진정한 협력을 위한 주식회사를 설립한 적도 없고, 광역단체장 자리가 두 개나 날아갈 행정통합으로 단일 정부를 만들기는 더욱 싫었기에,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조합 형태의 특별연합만을 구성했을 뿐이다. 경계를 허물고 돈을 합해 서로 뭉치기보다는 각자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경쟁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중앙으로부터 어렵게 얻어낸 돈을 굳이 바보처럼 상대와 나눌 이유는 없었다. 중앙의 지원은 오롯이 자신만의 이득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돈은 지역의 민심을 위해 자기 지역에만 알뜰하게 써야 했다. 부․울․경은 그래서 실패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어설픈 연애의 끝은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는 희망을 걸어본다. 대신 조건이 있다. 간절함의 자각과 돈의 공유를 통한 진정한 협력이다. 특별연합은 이미 아픈 실패를 경험했으니 방법은 새로 모색해야 할 일이다. 가능할까? 필자에겐 사실 묘책이 있긴 하다. 

강문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