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간의 패권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또 다른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힐지 여부가 내달 5일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이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 및 전·현직 임직원들에 대한 1심 선고를 진행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사건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7.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7. [사진=연합뉴스]

이 회장은 삼성그룹 부회장 직을 수행하던 지난 2015년 당시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 회장이 1심 선고에서 실형을 받을 경우 삼성전자는 최악의 리스크에 휩쓸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 수년 간 ‘총수 부재의 시대’를 추가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당시 파기환송심 재판부, 준법감시위 만들라고 압박해놓고 ‘실형’ 선고

이 회장은 이미 8년째 사법리스크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하지 못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2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후 유죄판결을 받아 감옥과 법원을 오가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건이 대한민국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경영족쇄로 작용한 셈이다.

1심 실형→2심 집행유예→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다시 2021년 1월 18일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파기환송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승영 강상욱 부장판사)는 재판과정에서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권고했고, 삼성전자는 이를 이행했다. 따라서 한국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취지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됐다. 다수 여론도 집행유예를 지지하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당초 예상을 깨고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준법감시위 활동이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변이었다. 준법감시위를 제대로 만들면 이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았다가,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 회장이나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실형을 받을 것이라면 굳이 준법감시위를 만들기 위해 인적 물적 노력을 쏟아부을 필요도 없었다. 준법감시위를 만들어놓고도 실형을 받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든 것이다.

이러한 사법부의 행태를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일단 확정된 판결을 바꿀 수는 없었다.

문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이재용 사면 대신 취업제한 적용받는 가석방 단행

단 이 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펼 수 있도록 광복절 특별사면을 실시해야 한다는 언론의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회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삼성전자 그리고 삼성전자가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와중에 정부가 삼성전자의 공격적 투자와 연구개발을 방해하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도 거세졌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끝까지 이 회장에 대한 사면조치를 단행하지 않았다. 대신에 법무부가 2021년 8월 9일 이 회장을 가석방했다. 하지만 경영복귀를 가능케하는 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취업제한조치가 수반된다. 이 회장도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취업제한 조치를 적용받아 정상적인 경영복귀가 불가능했다.

2022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경영 족쇄'가 풀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글로벌 행보를 가속하며 삼성의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만난 이재용 회장.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2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경영 족쇄'가 풀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글로벌 행보를 가속하며 삼성의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만난 이재용 회장.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삼성전자의 경쟁자만 반사이익 봐...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의 족쇄를 풀어줘

당시 문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사면이 아니라 굳이 가석방이라는 애매한 조치를 선택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는 태도”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미국의 인텔이나 대만의 파운드리기업 TSMC 등은 문재인 정부 기간 내내 경쟁기업인 삼성전자의 수장이 한국의 사법부와 행정부에 의해 손발이 묶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사법부와 문 대통령의 선택을 통해 반사이익을 본 것은 삼성전자의 경쟁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야 문제가 해결됐다. 윤 대통령이 1년 뒤인 2022년 광복절 특사로 이 회장을 사면함으로써 이 회장은 등기이사로 복귀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펼 수 있게 됐다.

‘부당 합병 의혹’에 대한 1심 선고 쟁점은 합병 비율의 ‘합법성’

내달 5일 나올 1심 선고는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에 관한 것이다. 재판이 시작된 지 3년5개월 만이다. 지난해 11월 17일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이재용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지금은 폐지된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합병 업무를 총괄한 최지성 전 실장(73)과 김종중 전 전략팀장(68)에게는 각각 징역 4년6개월과 벌금 5억원을, 장충기 전 실차장(70)에게는 징역 3년과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사법적 쟁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의 합법성이다.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 대 0.35의 비율로 합병됐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그룹 총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그룹이 이 회장의 안정적인 승계를 돕기 위해 제일모직보다 자산 규모가 3배 정도 큰 삼성물산이 오히려 3분의 1 비율로 제일모직에 합병됐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이 아니라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근거라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결심 공판 당시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두 회사(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이 지배구조 투명화와 단순화라는 사회 전반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검사의 주장처럼 다른 주주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다른 주주를 속인다든가 하는 의도가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7.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1.17. [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에 대한 합법성 판단을 둘러싸고 검찰과 이 회장측이 선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인텔, TSMC 등은 새로운 반도체 패권 전쟁 돌입해

1심 판결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행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처한 글로벌 경쟁 상황은 엄중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애플에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1위 자리를 13년 만에 빼앗겼다.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부진으로 인해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도 미국의 시스템반도체 기업 인텔에게 내주었다.

인공지능(AI) 반도체라는 새로운 시장을 둘러싼 각축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인텔,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생성형 AI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샘 올트먼 오픈 AI CEO는 AI 반도체 칩 생산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기 위해 인텔, TSMC, 삼성전자 등과의 파트너십 타진을 시작하고 있다.

이같은 글로벌 경쟁의 와중에서 이 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펼 수 있도록 1심 재판부가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인텔이나 TSMC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게 ‘반사이익’을 안기는 판결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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