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의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이 바뀐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신임 행정처장으로 천대엽(60·사법연수원 21기) 대법관을 임명했다. 대법원은 최근 김상환 행정처장의 후임으로 천 대법관을 오는 15일자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천대엽 신임 법원행정처장.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천대엽 신임 법원행정처장.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작년 12월 8일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당초 1월말~2월초 행정처장을 교체할 예정이었지만,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신속한 재판을 위해서는 행정처장의 교체가 필수적이라는 여론을 감안해 교체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대엽 신임 법원행정처장,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속한 재판’ 실천 의지 담겨

조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천 대법관을 행정처장으로 검토했지만, 천 대법관이 건강상 이유 등으로 고사하다가 최근 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대법원장 취임 이후 약 1달이 지나도록 인사 주무 담당자인 행정처장이 교체되지 않자, 법조계에서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행정처장이 짜는 인사안으로 ‘과연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김명수 체제에서 일부 좌경화된 판사들의 재판 지연을 목도한 국민들로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법관이 업무를 기피하거나 늑장을 부릴 경우, 그걸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장은 물론이고, 대법원장도 막을 수가 없다. 따라서 ‘신속한 재판’을 강조한 조 대법원장의 실천적 의지가 천 신임 행정처장 기용에 담겨있다는 해석이다.

천대엽, ‘중도 성향’의 청렴 코드로 평가돼

천 대법관은 지난 2021년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31회에 합격했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쳤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임명됐지만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특정 진영에 몰입돼 있지 않는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과 천 대법관의 ‘청렴’ 코드가 잘 맞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천 대법관은 대법관으로 임명될 당시 공개된 재산이 2억7388만원으로, 고위 법관 144명 가운데 가장 하위에 속했다. 서울고법 부장 시절에는 경기도 오포 전셋집에서 서울 서초동 법원까지 매일 버스를 타고 편도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했다고 한다.

조 대법원장이 이런 점에서 자신과 유사한 천 대법관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그만둔 뒤, 일반적인 로펌 대신 성균관대학교 로스쿨행을 선택했었다. 조 대법원장에 앞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재산 문제로 이런저런 시비에 휘말려서 낙마한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 덕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 덕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파성 배제된 2월 법관인사 기대돼...재판 지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전망

천 신임 행정처장의 임명으로 법조계에서는 ‘당장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황당한 판결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중요한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몰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특정 연구회 소속 출신이거나 호남 출신 판사들로 인해 재판이 하염없이 지연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조국 전 장관과 무소속 윤미향 의원의 재판 지연 등이 꼽힌다.

영장전담판사에 대해서도 특정한 진영에 경도된 판단을 내린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따라서 신임 천 행정처장의 임명으로 이런 부분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법원은 천 대법관이 해박한 법률지식과 뛰어난 균형감각으로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다며, 합리적 사법제도를 구현하고 국민 신뢰를 높이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해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행정처장은 재임 중 대법원 재판을 맡지 않는다. 하지만 행정처장의 임무는 막중하다. 대법관 후보 추천 위원회와 공수처장 후보 추천 위원회 등에 당연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행정처장은 늘 문재인 정부의 편에 서 있었다고 평가된다. 퇴임을 앞둔 김진욱 공수처장의 후임 추천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현재 김상환 행정처장이 여당 성향 특정 후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법조계에서는 신임 천 행정처장의 임명으로 이런 문제가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정 진영에 치우치지 않는 법관 인사가 단행돼, 재판 지연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강규태 판사 사표 제출...이재명 공직선거법 재판 지연 해소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재판장인 강규태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0기)는 재판을 지연시킨 대표적 판사로 꼽힌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대표의 3개 재판 가운데 가장 먼저 2022년 9월에 기소된 만큼, 결론도 가장 먼저 나올 걸로 예상됐지만 총선 전 1심 선고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욱이 강 부장판사는 현재 19일로 예정된 공판기일도 이 대표의 흉기 피습을 명분으로 연기한 상태이다. 현재까지 재판부는 일정 논의도 하지 않고 있다. 재판을 마무리하지 않고 떠나가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강 부장판사가 정기인사를 앞두고 최근 사표를 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번 정기인사 대상자인 강 부장판사가 사표를 냄에 따라, 이 대표 공직선거법 재판은 더 미뤄지는 상황에 놓였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법조계 일각에서는 강 부장판사가 정기인사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미리 사표를 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 부장판사가 16개월째 1심 선고를 지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천 신임 행정처장이 임명하는 판사가 빨리 진행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겠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2월에 법관 절반이 교체돼...재판 지연을 위한 꼼수는 어려워질 듯

이 대표의 위증교사, 대장동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의 김동현 부장판사는 인사대상자가 아니다. 김 부장판사는 위증교사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인사 대상이 아닌 법관까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김 부장판사가 조 대법원장의 ‘신속한 재판’ 의지에 부담감을 가진다면, 재판 진행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이번 2월 정기인사에서는 절반 정도의 법관이 교체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 대법원장의 인사가 완성되는 시기는 나머지 절반의 법관이 교체되는 내년 2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피습으로 재판 지연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이 대표가 피고인인 공직선거법 재판과 위증교사 재판의 총선 전 1심 선고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하지만 2027년 대선 전까지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막으려는 이 대표의 의도가 성공할지의 여부는 천 신임 행정처장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판 지연을 위해 온갖 꼼수를 동원할 이 대표를 천 신임 행정처장이 제지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