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30일 전격 회동해 갈등 봉합을 시도했으나 의견 차이만 확인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배석자 없이 비공개 차담 회동을 가졌다. 이 전 대표가 지난 7월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이 대표를 만난 지 5개월만에 다시 이뤄진 만남이었다. 회동 시간은 55분 정도였다. 짧지 않은 시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서로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전 대표는 이 대표에게 대표직 사퇴 및 통합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이 대표는 거절 의사를 분명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모두 애당초 양보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별을 위한 명분 축적용 회동이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재명의 계산된 발언 1= 이낙연의 탈당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번복’을 공개 압박...이낙연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사태

이 대표는 이날 사실상 이 전 대표의 탈당 결심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회동이 끝난 뒤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을 만나 먼저 마이크를 잡고 할 말을 했다. 이 대표는 먼저 “상황이 매우 엄중하기 때문에 국민들, 우리 당원들 눈높이에 맞춰서 단합을 유지하고 이번 총선을 반드시 이겨야 된다는 말씀을 드렸다”면서 “당에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될 수 있고 실제로 기대치에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당을 나가시는 것이 그 길은 아닐 것이다는 간곡한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가능한 길을 찾아서 단합을 이뤄내고 그 힘으로 우리 국민들의 이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야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이 전 대표를 바라보면서 “총리님, 다시 한번 깊이 재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 앞에서 만나 회동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 앞에서 만나 회동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전 대표가 비공개 회동에서 자신에게 ‘탈당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이 전 대표로서는 당혹스러운 사태이다. 탈당이나 신당 창당에 대해서 뜸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먼저 탈당을 기정사실화해버리는 발언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표면적으로는 잡으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전 대표가 나갈 의사를 굳혔고 자신이 간곡하게 붙잡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역설하는 모습이었다.

이재명의 계산된 발언 2= 이낙연을 ‘대표님’이 아니라 ‘총리님’으로 호칭

심지어 기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총리님’이라고 부르면서 ‘탈당 의사’를 재고해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탈당’이 내년 총선을 앞둔 엄중한 정치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단합을 해치는 행위’라고 규정해 놓고, 이 전 대표에게 ‘탈당 의사’를 번복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사실상 이 전 대표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수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총리님, 다시 한 번 깊이 재고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이 전 대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전 대표가 ‘탈당’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이 없는데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의 탈당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결정을 번복하라고 한 탓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 회동을 마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이낙연 전 대표와 회동을 마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특이한 것은 이 전 대표를 겨냥해 ‘대표님’이 아니라 ‘총리님’이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이는 무심코 나온 표현이 아니라, 계산된 발언이라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일종의 ‘하대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이 대표가 이 전 대표를 자신과 대등한 정치 지도자로 여기지 않고, 전직 총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해석이다.

‘대표’는 치열한 경선을 통해 선출된 정당의 지도자인 반면,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책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던 이 대표가 옆에 서 있는 이 전 대표를 ‘총리’라고 부른 것은 상당히 껄끄러운 풍경이었다.

이낙연, 이재명이 할 말 다하고 떠난 뒤 홀로 남아 ‘단합’보다 ‘변화’의 중요성 강조

더욱 압권인 것은 이 대표가 이렇게 할 말을 다하고 나서는 이 전 대표에게 “먼저 갈까요”라고 한 마디 던진 뒤, 식당을 먼저 떠났다는 사실이다. 회동이 결렬됐지만, 결코 정중한 태도는 아니었다.

뒤에 남은 이 전 대표는 몇 초 동안 침묵을 지켰다.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윤석열 정부의 형편없는 폭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단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면서 “오늘 그 변화의 의지를 이재명 대표로부터 확인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회동 직후, 이재명 대표가 먼저 발언을 하고 떠난 뒤 혼자 남아 기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회동 직후, 이재명 대표가 먼저 발언을 하고 떠난 뒤 혼자 남아 기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구현하고자 했던 그 가치와 정신과 품격을 지키는 것이 더 본질이라고 믿는다”면서 “그 정신과 가치와 품격이 지금 민주당에서 실종됐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라는 노력은 어디선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역설했다.

민주당이 살기 위해서는 ‘단합’보다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그 변화는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와 통합비대위 출범을 통해 ‘이재명의 사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을 정상화시키는 게 선결과제라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향후 행보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탈당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그것은 차차 말씀드리겠다. 좀 더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 제 갈 길을 가겠다”고 대답했다. 이 대표가 이미 이 전 대표를 ‘당을 나가는 길을 선택한 사람’으로 공개해버린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말꼬리를 흐리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통합비대위 전환에 대해 논의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네, 그걸 (이 대표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동에서 이 전 대표는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종합 정리= 이재명, “당 안에서 가능한 길을 찾아라” VS. 이낙연, “민주당의 가치와 품격을 찾아야”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현장에서 브리핑을 갖고 두 사람의 회동 내용을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이 대표는 ‘엄중한 시기에 당 안에서 가능한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 대표가 강조한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는 것은 당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 안에서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는 “지난 7월 이 대표를 만났을 때부터 혁신을 통한 단합을 강조했으나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그 반대로 갔다. 양당을 떠난 국민도 국민이고 민주당을 떠난 국민을 모셔오는 것이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민주당이 잘 되기를 바란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수십년간 지켜왔던 가치와 품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에서 그런 기대를 갖기는 어렵다”고 말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박 대변인은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에게 ‘대표직 사퇴나 비대위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낙연, 1월에 신당 로드맵 발표할 듯...신당 세력이나 자금 동원력은 미지수

이에 앞서 당 원로인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는 이 대표를 잇달아 만나 이 전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통합 노력을 해줄 것을 주문한 바 있다. 회동은 가졌으나 통합의 실마리를 찾지는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는 일단 탈당 및 신당 창당 행보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1월에 신당 로드맵을 발표하겠다는 게 당초 계획이다. 그 계획대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낙연 신당’이 빠른 물살을 탈 것이라고 아직 단언하기는 어렵다. 전반적인 세대결 측면에서 이 전 대표가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불투명하다. 신당을 차리려고 해도 동원 가능한 자금이나 인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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