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사시 시대의 힌두교

제사 관련 문헌들인 베다를 기반으로 하는 브라만 중심의 힌두교는 세상을 멀리하면서 속세에서 벗어나려 하는 새로운 사상적 흐름 - 이하 '슈라만' - 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특정 종교 창시자의 가르침이 아닌 그 제자들의 합의에 의하여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내는 전통을 가진 인도인들은 슈라만 계열 및 토착 종교의 많은 신들을 힌두교 신들의 화신(化身, avatar)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론적 모순을 해소하려 했다.

힌두교의 비슈누 신. [사진=위키피디아]
힌두교의 비슈누 신. [사진=위키피디아]

 

동시에 인간의 참된 본질이면서 우주의 법칙인 '다르마'에 따라 브라만 중심의 사회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힌두교 최고 법전인 [마누법전]의 내용이 기타 토착 종교들에 영향을 주면서 인간 사이의 평등을 주장하던 기타 슈라만 계열 종교 신자들 사이에 사회적 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4세기에 편찬된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기반하여 사랑, 구원 등의 태양 계열의 수많은 신들은 '비슈누'라는 신의 화신들로 정리되고 그 이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서사시 [라마야나]에 기반하여 죽음, 징벌 등 태음 계열의 신들은 '쉬바'라는 신의 화신들로 분류되면서 힌두교가 비슈누교와 쉬바교의 두 가지 계통으로 체계화된다.

5. 대승불교의 성립

붓다 본인은 브라만 중심의 사회질서인 다르마에 대하여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종교의 창시자가 아닌 그 제자들의 합의 하에 교리를 형성해 가는 인도의 종교 전통 하에서 불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붓다는 힌두교 소수 종파의 수장 또는 수많은 우파니샤드 현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던 일반 민중들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교리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출가하지 않고 속세에 머물러 있는 재가의 불교 신자들은 붓다를 신처럼 떠받들며 윤회를 위한 공덕을 쌓기 위해 절에 재산을 기부하는 힌두교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일부 불교 승려들에 의하여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붓다의 가르침은 출가승에게만 적용되고 재가 신자들은 공덕을 충분히 쌓으면 다음 생에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새로운 교리가 확립되었다.

붓다의 생각에 배치되는 교리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 민중지향적 불교 사찰의 승려들은 자신들의 불교를 큰 수레라는 뜻의 대승불교(大乘佛敎)라고 부르면서 붓다의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하는 기존의 불교를 작은 수레라는 뜻의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칭하면서 우월감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현재 전세계 불교의 주류는 소승불교이지만 한국 내 거의 모든 사찰들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따르고 있다.

6. 탄트라 힌두교와 밀교

인도의 대부분을 통합했던 굽타 왕조가 붕괴하고 7세기 이슬람 세력의 성장에 따라 비잔틴 제국과의 교역로가 막히자 인도 전역은 대혼란에 빠져 든다.

어쩔 수 없이 인도 내 미개척지로 이주하게 된 브라만들은 해당 지역의 각종 설화들을 편집하여 [푸라나]라는 이야기책을 편찬하고 토착민들이 믿는 수많은 신들과 비슈누, 쉬바 등 힌두교의 주요 신들을 어떻게든 연결시켜 지역 주민들을 힌두교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하려 노력했다.

힌두교의 쉬바 신. [사진=위키피디아]
힌두교의 쉬바 신. [사진=위키피디아]

 

브라만들은 토착민들이 믿던 신들을 그 성격에 따라 비슈누 또는 쉬바의 화신으로 분류하여 정통성을 부여하면서 브라만 중심의 사회질서인 '다르마'를 새로 이주한 지역에 이식하려 하였다. 이 때 힌두교 측은 불교의 창시자, 붓다를 힌두교의 주신인 비슈누의 9번째 화신으로 분류하면서 불교를 힌두교의 소수종파인 것처럼 널리 선전하는 방법을 통하여 인도 내 불교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인도 토착민들 중에는 우주와 인간 본질의 일치를 정신적인 측면에서 찾으려는 아리아인들과 달리 물질세계, 그 중에서도 인간의 육체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브라만들은 새로 이주해 간 지역 주민들의 이질적이고 모호한 신앙 체계를 베다의 형식을 빌려 체계화하였다.

이렇게 토착민들의 물질 중심의 종교 전통에 제사 중심의 브라만 전통 및 우파니샤드 사상가들로 대표되는 슈라만 전통이 결합된 것을 탄트라(tantra)라고 하고 이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베다를 기초로 하는 브라만 중심의 기존 주류 힌두교를 수트라(sutra)라고 한다.

춤을 추는 쉬바 신을 묘사한 촐라 왕조 시대의 조각상. [사진=위키피디아]
춤을 추는 쉬바 신을 묘사한 촐라 왕조 시대의 조각상. [사진=위키피디아]

 

탄트라 힌두교의 특징은 기존 힌두교와 그 이론적 체계는 유사하지만 숭배의 대상이 되는 여러 신들이 거의 모두 (현실 세계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 하는) 여성 및 하층 계급 사람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 탄트라에 기반한 힌두교는 주로 밀교 쉬바교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탄트라에 기반한 불교는 티베트 밀교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 베다 및 불교 경전과 같이 문헌을 통하여 가르침을 직접 전달하는 종교를 현교(顯敎), 다산 숭배 및 주술 등 간접적 방법으로 가르침을 전달하는 종교를 밀교(密敎)라고 한다.

7. 박티 운동과 푸자 예배의 확산

인도 전 지역이 힌두교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면서 브라만들이 토착민들을 기존 힌두교 질서인 다르마에 편입시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용인해야 했던 것들 중 하나가 토착 종교 의례의 존중이었다.

새롭게 힌두교도가 된 토착민들은 [푸라나]에 나오는 신들 중 주로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 여신 락슈미의 화신인 라다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크리슈나와 라다의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그 앞에 꽃을 바치는 등의 행위를 통하여 공덕을 쌓는 대가로 다음 생애에 복을 받기를 기원하였는데 이를 '박티'라고 한다.

박티를 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신 앞에 평등했으므로 하층민들은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 겪는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었고 지배층들은 이를 통하여 사회가 평화롭게 유지되는 것에 만족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베다에 기반한 제사 등 기존의 각종 의례는 신상을 장식하고 그 앞에 꽃, 물 등을 바치는 일상 속 예배인 푸자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힌두교 브라만들이 현재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리와 의례 측면에서 끊임없이 양보하는 모습은 종교의 창시자가 아닌 그 제자들이 교리를 형성해 가는 인도 종교의 전통에 더하여 정신보다 물질을 중요시하는 인도인들 특유의 기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8. 시크교의 성립과 발전

1192년 델리가 이슬람 교도들의 손에 들어간 이후 1857년 인도 전역이 영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기까지 힌두교는 불가피하게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람교와 힌두교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양자의 비주류에 속하는 이슬람 내 수피즘과 힌두교 내 박티 운동 사이에는 무언가 통하는 점이 있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영적 교류를 강조한 이슬람의 수피즘과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만의 신을 숭배하는 힌두교의 박티 운동이 서로 접점을 찾아가면서 새로운 종교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시크교이다.

시크교의 창시자인 나낙 (1469년 - 1539년)은 이슬람교와 같이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면서 인도 사회의 극심한 신분 차별, 우상 숭배, 불필요한 제사들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동시에 신이 말씀하는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존 힌두교 관행과 같이 종교생활의 스승인 구루(guru)가 그들의 제자인 시스야(sisya)를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종교 전통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크교 역시 나낙의 가르침을 따르던 제자들이 스승의 사후 새로운 종교 이론을 만들어 가는데 나낙의 포용력과 중도적 성향을 거의 대부분 계승했다는 점에서 이슬람적 성격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시크교도들은 대다수의 주민이 유럽인과 유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인도 펀잡 지방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남자들은 모두 사자(獅子, lion)라는 의미의 싱(Singh)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러한 절충적 성격의 시크교 신자들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에 이주하는 경우 어느 이민 집단보다 빠르게 현지 중산층의 일원이 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는 반면 그들과 생김새가 유사한 기독교 백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종교적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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