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상대위원장으로 추대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21일 이임사를 통해 정치권으로 향하는 각오, 출사표(出師表)를 던졌다.

1800년전, 중국의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 제갈공명이 위나라 정벌에 나서면서, 유비의 아들인 황제 유선에게 올린 표문(表文), 출사표나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구원에 나서는 한 장관의 이임사는 맥락이 다르지 않다.

이날 한 장관의 이임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료시민’이라는 단어였다. 이임사의 첫 마디, “저는 잘 하고 싶었습니디”에 이어 “동료시민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 등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국민’이라는 단어 대신 ‘동료시민’이라는 말을 한동훈 장관이 만들어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창작을 하는 문필가가 아니라, 20년 이상을 검사, 법률가로 살아온 한동훈이기에 이 대목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정문(正文), 올바른 언어법으로 볼 수 있다. 이에대해 한 장관은 “ 제가 평소에 많이 쓰던 표현이다. 민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건 동료의식이라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평소에도 많이 써왔다”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국민이라는 단어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 법률적 뉘앙스가 강하다. 한 장관의 ‘동료시민’은 추후 그가 시민사회의 동료의식, 수평적 연대를 강조하는 정치를 지향할 것임을 시사한다. 시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춰 불공정과 비정상을 타파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 수사와 검수완박, 각종 검찰수사 현안을 놓고 문재인 정권 및 민주당 의원들과 대립해온 그동안 자신의 행보 또한 이런 차원이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의 이임사는 누군가 써준 것을 대독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곳곳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한 장관의 캐릭터가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한 장관의 문장은 짧고 간결하다. 하지만 유학생활, 어학연수가 보편화된 그의 세대답게 영어식 문법이다. 오바마 등 역대 미국 대통령의 간결한 두괄식 연설어법을 옮겨 놓은 듯 하다.

“저는 잘 하고 싶었습니다.”로 시작해 “고백하건대,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라고 끝내는 방식이 딱 그렇다.

자신이 비대위원장으로 나서는 국민의힘 상황을 야구경기에 빗댄 것 또한 신세대 내지 X세대인 한 장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주요 정당의 당 대표급 정치인이 이런 식의 비유, 은유를 사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런 어법은 듣는 사람들의 이해가 빠를 뿐 아니라, 부정적 내지 무미건조한 정치현실을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트의 상황으로 흥미진진하게 이끌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비유 자체가 그동안 보수정당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세대적 감성이다.

조선의 22대 군주, 정조임금은 사사건건 자신의 치세에 반기를 드는 영남사림 등 선비들을 견제하기 위해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일종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선비들의 문체가 공자와 맹자 같은 정통문체가 이난 국적불명의 ‘패관(稗官)문체’로 치닫고 있다면서 누가 그런 문장을 쓰는지 색출하고 사용까지 금지시킨 것이다.

명분은 그랬지만, 본질은 하구한날 자신을 비판하는 상소문 등을 작성하는 선비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반대파에 대해 “문법에 안맞는 영어식 어법에 인터넷 약어체 같은 해괴한 문자를 사용한다“고 공격한 것이다.

정조임금 같은 기존체제의 시각에서 보자면 국사(國事), 정치를 시중의 씨름판(야구경기)에 비유한 것 자체가 불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금 한국정치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대, 데모로 날을 새웠거나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시공부만 한 구세대의 두 부류가 이끌고 있는 낡은 구체제, ‘앙시앙레즘’이다.

과거 윤석열 같은 구세대 검사들은 신세대, 후배 검사들에게 ”오늘 저녁에 술 한잔 하지?“라고 말하면 무조건 따라오지 않고, ”저는 술 안먹습니다“ ”저녁때 와이프랑 할 일이 있습니다“라며 당당하게 거절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50살 신세대 한동훈의 정치진입은 단순히 여야대결, 총선승패를 떠나 구체제 정치, 낡은 정치문법의 해체의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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