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스스로 모멸한 끝에 망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그 해 여름 미군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모기도, 지긋지긋한 더위도, 칼을 물고 달려드는 베트콩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마음 속 연인이었던 한 미국 여배우가 베트남까지 날아와 미국 비행기를 격추하는데 사용했을 대공포 위에 북베트남 군대와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들의 동료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북베트남 군인들과 시시덕대며 장난까지 치고 있었는데 이는 미군들에게 절망감을 넘어 공포심까지 안겨주었다. 나는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여기서 낯선 동양인들과 싸우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녀의 행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방문 동안 그녀는 Voice of Vietnam 라디오를 통해 미군 조종사들에게 폭격을 멈춰 달라 호소했다. 그것도 가장 치욕스러운 비유를 통해서. 당시 그녀의 말은 이랬다. “저는 그들에게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적과 싸우는 조국의 장병들에게 왜 싸우는지 모르는 멍청이라고 조롱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 일로 미군의 전력戰力을 최소한 30% 이상은 감소시켰을 그 여배우의 이름은 제인 폰다, 그리고 그녀가 북베트남을 방문한 것은 1972년 7월의 일이었다.

(이 사진 외에도 귀를 막는 시늉을 하는 등의 사진이 있다. 덕분에 얻은 그녀의 별명은 ‘하노이 제인’으로 이 이벤트 직후 미국의 한 군사학교에서는 ‘Good night Jane Fonda, Good night Bitch!’라는 야간 구호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이 사진 외에도 귀를 막는 시늉을 하는 등의 사진이 있다. 덕분에 얻은 그녀의 별명은 ‘하노이 제인’으로 이 이벤트 직후 미국의 한 군사학교에서는 ‘Good night Jane Fonda, Good night Bitch!’라는 야간 구호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자신이 접촉한 미군 포로들에 대한 정보를 북베트남에 넘겼다는 등의 루머는 그녀를 곤혹스럽게 하기 위해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지어낸 것이지만 그렇다고 제인 폰다의 행동이 양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제인 폰다는 그러고도 남을 충분한 ‘싹’을 보이고 있었고 북베트남 이벤트는 분명 그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인 1970년 5월 수 천 명의 학생과 반전 시위자들이 메릴랜드 대학을 점령한 채 그 곳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환호와 함께 등장한 것은 제인 폰다. 동지이자 할리우드 스타인 제인 폰다는 대중들에게 요새 말로 ‘개념 연예인’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원조급인. 그녀는 길고 풍성했던 갈색 머리를 짧게 잘라 정치적 십자군으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었고 미군을 평화주의자로 바꾸려는, 말 같지도 않은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제인 폰다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배우들과 모임을 결성해 이를 자유군(FTA : Free the Army)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fuck the Army’의 이니셜을 가지고 장난친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바보는 없으리라. 이 사진과 비교되는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누군지 설명해야 하면 근래 사람. 바로 알아보면 옛날 사람)
(누군지 설명해야 하면 근래 사람. 바로 알아보면 옛날 사람)

1954년 한국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됐을 때 한 여배우가 한국을 방문했다. 정확히는 남편과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주한미군을 위해 위문 공연을 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에 따라 일정을 변경해 낯선 땅을 일부러 찾은 것이다. 그녀는 무엇을 입고 있나. 군복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여배우는 자신이 위로해야 할 사람들이 병사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과 동질감을 나누기 위해 투박한 군복을 걸친 것이다. 사진 한 장 더 보자.

(당시 그녀를 에스코트를 한 것은 최은희라는 한국 배우)
(당시 그녀를 에스코트를 한 것은 최은희라는 한국 배우)

그녀의 옷차림과 달리 병사들의 옷은 두툼한 겨울 복장이다. 그녀는 추위를 타지 않는 특이 체질인가. 아니다. 무대에 오를 때 그녀는 두툼한 군용파카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파카와 병사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 이거 보러 오신 거 아니죠?” 그리고는 파카를 벗어던지고 이브닝드레스 차림으로 노래를 불렀다. 병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꿈같은 여배우를 봐서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았기에 고마워서 더 그랬던 것이다. 여배우의 이름은 마릴린 먼로, 케네디 가문과 엮이는 바람에 세상을 떠난 비운의 할리우드 스타다.

자, 대체 누가 개념 연예인인가. 아니 그걸 떠나 대체 머릿속에 개념이라는 게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베트남 전쟁과 한국전쟁은 성격이 다르지 않느냐고 되묻지 말라. 그것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이국땅에서 총을 쥐고 죽어간 수많은 젊은이들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나라 일부 배우, 가수들의 개념 연예인 놀이를 볼 때마다 나는 이 사진들이 생각난다. 자기에게 특권과 혜택을 준 나라를 무시하고 침을 뱉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국가는 스스로 모멸한 끝에 망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현재 넷플릭스에서는 제인 폰다 주연의 영화 ‘Book Club: The Next Chapter’이 상영 중이다. 10분 쯤 보다가 꺼버렸다. 제인 폰다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았을 뿐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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