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친구들에게 때때로 질문해본다. 대한민국 오늘의 번영을 1960년대 대학생 시절 예상했었느냐고. 그랬다고 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10년 후 마이카 시대가 온다고 말했을 때 뜬금없는 헛소리라고 비웃었었다.

  그 당시 이어령의 수필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대학생들에게 베스트셀러였다. 책의 요지는 ‘한국인은 무능해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였다. 소위 엽전(葉錢)이라고 자조하는 한국인들은 색깔 감각마저도 없어서 흰옷만 입기 때문에 백의(白衣)민족이라 불렸고, 그래서 일본 순사가 일부러 먹물을 뿌려댔다고 하였다. 시간관념이 없는 소위 ‘코리안 타임’ 때문에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비관하였다. 그 책을 읽고 나면 힘이 쪽 빠졌다. 가뜩이나 암울한 분위기에서 의욕이 생길 수 없었다.

  지금 북한은 그보다도 더 열악한 상태인 것 같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10대 원칙에 따라 김씨 일가에 대한 절대 충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주민들은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적극적으로 성과를 올려서 보상받을 생각은 없다. 

  정권이 어쩔 수 없이 장마당을 묵인하면서 주민들이 살아날 구멍은 조금 트였다. 하지만 정권은 체제 안전을 위해 외부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한다. 순박한 주민이 북한 사회가 지상낙원이라고 믿게 한다. 

  1972년까지도 남한보다 앞서 있던 북한경제가 1/60로 졸아든 경과는 종주국 소련의 말로와 같다. 책임을 면하려는 필사적인 노력과 함께 잉여생산을 구태여 내지 않으려고 행동한다. 잉여생산이 생기면 권력자가 수탈해 가버리기 때문이다. 자기의 필요만 채울 수 있으면 족하다. 쓸데없이 땀 흘릴 필요가 없다.

  헤세 바르테그(Ernst von Hesse-Wartegg)라는 오스트리아 여행가가 동학란 이후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조선을 삼키려고 각축하던 시기에 조선을 방문한 경험을 ‘조선 1894년 여름’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조선 남자들은 청나라나 일본인에 비하면 코카서스 인처럼 체구가 건장하였으나, 삶의 의욕을 잃은 듯 길거리에 누워서 긴 담뱃대를 물고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욕을 잃은 민족이었다. 그 근본 원인은 악질 관리들의 수탈에 있었다. 애써서 잉여생산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지금 북한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어령이 분석했듯이 아무 능력도 의욕도 없던 한국인은 어떻게 땀 흘려 일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는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나라를 세운 것이 출발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초를 깔았다. 국민이 땀 흘릴 동기를 부여하였다. 복거일 작가의 평가(조선일보 2023. 11. 15. A34페이지)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후 ‘산업부흥 5개년 계획’을 세웠다가 6.25전란으로 무산되자 1952년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원조자금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고 했다. 사욕을 부리지 않고, 기업가와 국민이 일할 토대를 마련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재건의 목표를 세워서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온 힘을 다하였다. 국가건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과 개인이 힘을 모으도록 노력하였다. 그는 거버넌스의 달인이었다. 산업화, 수출입국, 과학진흥 등 커다란 목표를 세워서 정교하게 실현해 나갔다. 하나하나 세운 목표를 달성해가면서 ‘하면 된다’의 정신(Can do spirit)을 일으켰다. 국민은 게으름의 늪에서 벗어나 땀 흘리는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위로부터의 호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참여하는 국민의 자발적 의욕이 매우 중요하였다. 그걸 끌어낸 리더십이 탁월하였다. 제2차 대전 후 선진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막대한 원조를 퍼부었지만, 대부분이 권력자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주민들의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승만, 박정희 두 지도자는 청렴하였다. 지도자의 사심 없는 솔선수범이 국민의 자발적 노력을 북돋웠다. 

  ‘새마을 운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당시 농촌에는 잠재 실업자들로 가득하였다. 겨울이면 사랑방에서 화투 노름으로 소일하였다. 이를 깨트리기 위해 농촌 재건을 위한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다. 한편으론 유달영 교수와 같은 애국지사가 덴마크의 달가스 같은 부흥운동가의 선례를 소개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실제 각 마을의 청년회와 부녀회를 통해 근로의욕에 불을 댕겼다. 특히 부녀회원들은 몸베 바지를 입고 손수레를 끌면서 농지정리, 마을 정리, 수로 정리를 해 나갔다. 여기에도 경쟁심리를 부추겼다. 이웃한 마을들에 우선 시멘트, 모래 같은 자재를 똑같이 나눠주었다. 열심히 노력한 마을에는 다음번 지원에서 차등을 두었다. 새마을 경진대회를 통해 우수사례에 상을 주었다. 게으름에 안주하던 농촌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세계 유례없는 성공사례가 되었다.

  국제신용이 없어 산업 자본을 끌어올 수 없을 때,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마르크화를 벌어들였다. 베트남 파병 시 진출했던 근로자들이 전쟁이 끝난 후엔 중동에 진출하여 석유 달러를 벌어들였다. 

  70년대 수출은 연 40퍼센트씩 성장하였고, 국민경제는 10퍼센트가 넘는 고도성장을 계속하였다. 일본의 뒤를 좇아 한국의 세일즈맨들이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기왕의 제조업 강국이던 독일이나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복귀한 것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취였다.

  이런 역사를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원래부터 풍요로웠다고 착각하기 쉽다. 한국사회 발전의 역동성은 전 세계가 부러워한다. 일제통치 동안 반상구별에 금이 가고, 6.25전란으로 민족대이동이 일어나 조선 시대의 세습신분제도가 무너졌다.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게 되었다. 자유경쟁 사회에서 누구든 노력하면 당대에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 계급 없다는 북한사회가 55개 성분으로 차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금 한국의 일부 정치인은 포퓰리즘을 이용하려 한다. 지지율을 높이려고 공짜 혜택을 마구 뿌리려 한다. 국민의 근로의욕을 좀먹는 일이다. 마구 공짜를 뿌려대면 나라 재정이 파탄 날 뿐만 아니라 국민정신이 망가진다. 마약을 퍼트리는 것 같다. 또다시 국민이 의욕을 잃고 방황하게 만들려는가? 국민의 수준보다 못한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나라의 장래를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오염되지 않은 젊은 세대가 냉철한 판단으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한국 현대사에 녹아있는 발전 의욕을 되살려 원대한 꿈을 펼쳐야 한다.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 다른 선진국은 100년 전 산업화를 이루었고, 그 1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는 그 1세대가 아직 생존하고 있다. 그러기에 경험을 전파하기 편하다. 한국의 젊은 세대야말로 자유가 흘러넘치고 함께 번영하는 세계의 주역이다. 의욕을 잃은 북한 땅의 젊은이들과 비교해보라. 가슴 벅찬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前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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