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1년 전에 마무리돼야 하는 선거제 개편의 법정 시한(4월 10일)을 6개월 이상 넘겼지만, 여야 간 협상은 여전히 난항 중이다. 그간 도출한 합의는 지역구 선거에서 ‘소선거구제’를 유지한다는 큰 틀뿐이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양당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크다. 국민의힘은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당내 입장도 통일되지 않은 상태이다. 선거제 유불리를 두고 당내 의견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여야가 합의에 실패하면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된다. 그럴 경우 우후죽순처럼 위성정당이 난립했던 2020년 총선의 혼란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홍’ 1= 준연동형 유지시, 위성정당 방지법 두고 정파 간 계산법 엇갈려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는 12월 12일이 예비후보자 등록 시작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11월에는 여야 합의를 끝내 선거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총선에서 후보자와 유권자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취지에서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 지난 21일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여야는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민주당 내부는 선거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로 내홍의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은 “‘위성정당 방지법’을 추진하라는 당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며 지도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탄희 의원을 포함한 30여명의 의원은 지난 15일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채택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비명계 외에 친명계에서도 ‘위성정당 방지법’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많다. 이들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는 퇴행만큼은 막아야 하며, 위성정당과 같은 기이한 형태의 선거 구도가 재현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선 위성정당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홍 원내대표는 “29일 의총에서 선거제 관련 논의를 집중적으로 할 생각”이라고 해, 격론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내홍’ 2= 친명계, 이재명의 비례대표 출마 위해 병립형으로 회귀 추진 VS. 비명계 반발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저울질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사진=채널A 캡처]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저울질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사진=채널A 캡처]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선거제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이재명 대표의 의원직 유지’가 꼽히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각종 재판리스크에 직면한 이 대표가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라는 방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지역구인 계양을 대신 ‘비례 출마’를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되면서, 민주당 내부 셈법이 복잡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주당 비명계인 이원욱 의원은 22일 페이스북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이재명 대표가 안전하게 당선될 수 있는 방법, 즉 비례대표 출마를 위해 선거제도까지 바꾸겠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안정적으로 당선되고 싶어할 것”이라며 “하지만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비례대표 출마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민주당원 자격으로 비례대표에 출마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표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선거구제를 바꾸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가 과거 퇴행의 ‘병립형 비례대표 선거제’로 돌아가려 시도한다면 ‘방탄을 위한 사당화’도 모자라서 선거제도까지 ‘방탄 선거제’를 만들었다는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런 관측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친명계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 증거라고 이 의원은 비판했다. 친명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가 비례로 당선될 경우, 사퇴해도 ‘민주당이 승계’하는 것이 장점”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2016년 총선까지 시행된 제도로, 지역구 의원과 비례 의원을 각각 따로 뽑는 방식이다. 이 제도로 회귀할 경우 이 대표가 현 지역구인 계양을에 출마하지 않고, 안전한 비례 순번 앞번호를 받아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당선이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내부에서는 병립형 비례제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채널A 캡처]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내부에서는 병립형 비례제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채널A 캡처]

이재명의 딜레마= 현행 준연동형에선 비례대표 출마 불가능해

이원욱 의원의 지적대로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3일 유튜브 채널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현행법상 이 대표가 비례로 가기 위해서는 위성정당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럴 경우 위성정당 소속인 이 대표가 민주당의 선거유세를 지휘할 수 없다. 따라서 준연동형제를 고집하던 민주당이 서서히 병립형으로 가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설명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 21일 CBS라디오에서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는 비례 의석도 공천권”이라면서, 그런 차원에서 병립형 선거제도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대목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원희룡이 부담스러운 이재명?...비례대표 출마 저울질 관측

이 대표가 병립형으로 돌아가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원희룡 장관의 계양을 출마설’이 거론된다. 원 장관은 '만일 총선에 임해야 한다면 국민과 당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도전과 희생이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인천 계양을 출마를 복선으로 깔았다. 이 대표와의 대결로 선당후사 정치인의 모습을 확고히 하고 싶은 것으로 풀이된다.

원 장관은 인천 계양을 등판설에 확답하진 않았지만, 부인도 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원 장관의 계양 출마설에 대해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고 있다. 원 장관이 야권의 대권 주자인 이 대표와 맞붙는다면 향후 대권을 노릴 수 있는 정치적 실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원 장관이 총선에서 이 대표에게 지더라도 ‘이긴 것과 다름 없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당을 위한 그의 헌신에 대해 당원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대선주자로서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고, 대선주자로서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총리 등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계양을 츨마설'에 확답도 부인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도전과 희생이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계양을 츨마설'에 확답도 부인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도전과 희생이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반면 이 대표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은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송영길 전 대표가 내리 5선을 한 지역구이기 때문에 입지가 탄탄하지만, 현재 계양을의 민심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현종 논설위원은 “이 대표가 계양을에 가서 자기 방탄만 했지, 실제로 지역 발전을 한 게 하나도 없다. 개발에 목말라 있는 지역인데, 이 대표가 오고 나서도 바뀐 게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대표 입장에서는 원 장관의 계양을 출마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결국 이 대표가 ‘전국 유세 지원’을 명분으로, 지역구 출마를 하지 않는 대신 비례대표 앞 번호를 꿰찰 것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례대표 앞번으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준연동형 대신 병립형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이런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23일 유튜브에서 “만약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병립형을 수용하게 되는 셈”이라며, 2019년에 패스트트랙까지 해서 통과시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 대변인은 “이 대표가 (계양을을 포기하고) 병립형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격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은 정말 치졸하고 파렴치하다”고 비판했다. 재판리스크와 방탄 때문에 ‘무조건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이 매섭게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체제’ 단일대오 형성 위해 국민의힘과 합의할 가능성 대두

이 대표 입장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신당이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의석 획득에 성공하는 것이 탐탁치 않다. 그런 신당은 ‘방탄국회’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장애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된다면, 조국 신당이나 송영길 신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이 ‘이재명 체제’라는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제3의 변수가 출현하는 것이다. 이 대표와 친명계가 내년 총선 이후에도 민주당을 확고하게 장악하기 위해 국민의힘이 주장하고 있는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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