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명분론에 불과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젊은 세대에서 통일거부론 또는 영구분단론까지 나와
흡수통일의 당위성 외면 말아야
흡수통일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전문가들 몫
北주민들 韓국민과 동일 대우 받으려면 한 세대 가까운 동화 단계 필요
대한민국 내부 진영대립도 분단 상태에 그 근원 있어
2023년 대한민국 국민에게 통일에 대한 각성 절실해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현재 대한민국에는 통일론이 없다. 물론 헌법에는 ‘평화통일’이 실현해야 할 목표로 명시되어 있고 좀더 구체화된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란 것이 있다. 문제는 이 통일 방안이 비현실적인 명분론에 불과하고 진정한 통일 방안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1994년 8월 15일 김영삼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시한 방안으로 탈냉전과 남북 체제경쟁의 종결, 1992년 2월 19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을 반영한 것이다. 통일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에서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조 아래 통일의 과정을 화해·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통일국가 완성단계의 3단계로 설정하고 있다.

1단계인 ‘화해·협력단계’는 남북이 적대와 불신·대립관계를 청산하고, 상호신뢰 속에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를 정착시켜 나가면서 실질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해 평화공존을 추구해가는 단계라고 한다. 즉 남북이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 적대감과 불신을 해소하고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2단계는 남북이 연합하여 단일 민족공동체 형성을 지향, 남북 간의 공존을 제도화하는 중간과정으로 과도적 통일체제인 ‘남북연합’을 구성·운영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남북 간의 합의에 따라 법적·제도적 장치가 체계화되어 남북연합 기구들이 창설·운영된다. 남북정상회의와 남북각료회의가 상설화되고 남북 의회대표들이 모여 통일에 따르는 법절차를 준비하게 된다.

제3단계인 통일국가 완성단계는 남북연합 단계에서 구축된 민족공동의 생활권을 바탕으로 정치공동체를 실현하여 남북 두 체제를 완전히 통합하는 것으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단일국가로의 통일을 완성하는 단계이다. 남북 의회대표들에 의해 마련된 통일헌법에 따라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통일정부, 통일국회를 구성하고 두 체제의 기구와 제도를 통합함으로써 1민족 1국가로의 통일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남북이 우선 화해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민족공동체를 건설해 나가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통합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자는 구상이다. 남과 북의 현재 정치제도를 상호 인정하면서 두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평화통일’이라는 우리 헌법상의 원칙과 일맥상통하는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통일방안이 전혀 합리적이거나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통일론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북한이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방안과 큰 차이가 없다. 아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 통일의 실제 내용을 제목만 바꿔서 우리가 수용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방제 통일 자체가 ‘북진 통일’을 내세우던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이후 대북정책에서 훨씬 온건해진 민주당 정부와의 협상을 고려해 김일성이 제안한 노선이라고 봐야 한다.

김일성은 1973년 당시의 동서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하여 ‘조국통일 5대 방침’을 제시하면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 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 실시를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북이 내건 연방제의 선결 조건들이다. 첫째 대한민국에서의 군사독재 청산과 민주화, 둘째 미국과의 평화조약 체결과 미군 철수를 통한 전쟁위험 제거, 셋째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내정 간섭 종식이었다.

연방제 통일방안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통일은 남북의 차이를 극복하고 체제와 헌정질서의 단일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연방제 주장은 이 엄연한 대전제를 외면하고 있다. 대한민국 내부에서 북의 이념과 사상, 정치 공작을 전면화할 자유를 허용해주는 장치인 반면 북한에 대한 대한민국의 이념, 사상, 정치 공세의 자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렇게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기 때문에 이 방안은 한 걸음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1단계인 화해 협력 단계가 사실상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남북 체제의 적대적 성격이 분명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이 이 환경을 지탱하는 한 화해 협력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이 단계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2단계와 3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이 통일방안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전무하다. ‘평화통일’이라는 구두선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87체제의 승리자인 주사파와 호남의 영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비현실성이 낳은 후유증이 있다. 젊은 세대가 갈수록 통일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통일론을 평화니 민족이니 하는 공허한 단어로 치장하고 있으니 실용적인 성향의 젊은 세대가 공감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사실상 통일 거부론 또는 영구분단론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좌파에 비해 우파 청년들이 그런 경향이 강하다.

젊은 우파 청년들이 내세우는 통일 거부론이란 것도 유치하고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의 통일을 거부하는 근거란 게 △엄청난 비용이 소모된다 △북한 사람들과의 이질성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직접 국경을 맞대느니 중간에 북한이라는 버퍼를 두는 게 낫다는 황당한 주장도 있다.

통일은 한반도 근대화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근대화는 정치적으로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형태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1945년 8.15해방으로 일제라는 외부의 강제력을 벗어난 자발적인 근대화를 시작했을 때 남과 북이 공통적으로 국민국가의 건설에 나섰던 것이다. 어떤 체제의 국민국가이냐에 따라 근대화의 성격과 방향이 결정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6.25는 국민국가의 성격에 대한 이견을 단기간에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 대신 어떤 국민국가의 형태가 궁극적으로 성공하는가를 두고 남과 북이 경쟁을 시작했다. 분단은 그 경쟁의 외적 표현이다. 그 경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경제는 물론이고 인권과 민주화 등 근대화의 모든 측면에서 북한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북한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불량국가(rouge state)이고 그 체제 자체가 범죄를 지향하고 정체성화하는 집단이다.

물론 북한은 체제경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건 패배가 객관화할 경우 김씨정권은 존립의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씨정권의 필요에 의해 패배를 분식하기 위해 만든 것이 핵과 미사일이며 세계 최악의 인권 유린이다. 김씨정권이 어떤 사상의 자유나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결국 체제 대결의 실패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김씨정권은 또 87체제의 승자인 주사파의 영향력을 지렛대 삼아 이념적 대립 전선을 대한민국 내부로 확장시켰다. 내전을 연상시키는 대한민국 내부의 좌우 진영대립이 그 결과이다. 이런 문제들은 분단이 유지되는 한 해결이 불가능하다.

통일은 한반도 역사의 최종 결론 즉 어떤 근대화 노선이 옳았는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경제적 부담이나 사회적 혼란을 이유로 들더라도 회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통일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통일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엄밀하게 말해 그동안 대한민국이 제시한 통일론은 하나뿐이다. 북진통일론이 그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퇴장으로 인해 현실 정치의 근거를 상실했지만 그 이론적 정당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진통일론의 본질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체성 혼란은 평화통일이라는 달콤한 사탕발림에 취해 흡수통일의 당위성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흡수통일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다.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도 단계론적인 접근이지만 흡수통일 역시 단계론의 적용이 필연적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요소와 함께 남북의 체제 이질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론의 디테일을 그려내는 것은 전문가들의 몫이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 있다. 그것은 북한 김씨정권의 타도와 그에 이은 북한 자체적인 친미친남 정권의 수립이다.

지금 통일의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단계적 접근이 아닌, 직접적으로 대한민국이 북한을 흡수한다는 전제 위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 전제는 사실 1990년 독일 통일의 경험을 한반도에 그대로 대입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독일 통일의 사례를 한반도에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독일의 경우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 차이가 크지 않았고 양국의 주민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비교적 자유롭게 교류하고 왕래했으며 TV 시청 등 상호 교류도 활발했다. 이런 점들이 독일 통일에 유리했던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 비해 남북은 경제력 격차가 동서독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오랜 기간의 단절에 따른 이질화도 훨씬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모두 독일 통일에 비해 남북 통일이 훨씬 불리한 요인으로 거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독일 통일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통일 방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은 사실상 서독이 동독을 매입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것도 실제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른 거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통일 후 동서독 화폐를 1대1로 교환해준 것이고, 거의 무제한적으로 서독의 복지 제도를 동독 지역에 그대로 적용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독일의 통일 비용이 20년간 3천조원이 들었다는 얘기도 나온 적이 있다. 어마어마한 부담이다. 그 결과 독일은 한동안 ‘유럽의 병자’라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통일의 1단계로 북한에 먼저 친미친남 정권이 수립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도기 단계 없이 북한 지역을 곧바로 대한민국의 일부분으로 대우하기 시작하면 그 부담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북한의 친미친남 정권은 스스로의 조건과 환경에 맞는 방식과 속도로 자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이자, 직접적인 흡수 통일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시켜주는 버퍼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과의 동일한 대우가 아니다. 생존권 차원의 문제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와 위생, 안전의 보장 문제이다. 그래서 독일 통일에 비해 경제적인 부담이 오히려 덜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독일과 한반도의 차이는 통일에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정반대로 낙관적인 요소로 평가할 수 있다. 서독의 이념 공세에 젖은 동독 주민과 달리 북한 주민들은 그런 비현실적인 기대가 적다는 얘기이다. 북한 주민에게는 상당 기간 남한 주민과 동일한 대우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한 세대(20~30년) 동안은 남북한의 접근 및 동화 단계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연방제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주장하는 사실상의 화해·협력단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런 화해·협력 자체가 북한 김씨정권의 붕괴가 전제되지 않고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점을 명백하게 확인하는 것이 통일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통일 전략 1단계는 북한 김씨정권 타도와 친미친남 정권의 수립이다. 그동안 남북대화에 쏟아부었던 에너지와 자원을 김씨정권 타도에 사용해야 한다. 그 방법은 무척 많다.

북한 김씨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군과 미군이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김씨정권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 인민들이 내부에서 봉기해 김씨정권을 타도하는 시나리오다. 2020년 김여정이 문재인에게 하명해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식으로 뚝딱 제조해낸 대북전단금지법이 김씨정권의 이런 공포를 가장 잘 보여준다. 북한 김씨정권은 북한 인민들을, 그들의 정치적 각성을 가장 두려워한다.

사실 대북전단이래봤자 메시지가 인쇄된 종이조각일 뿐이다. 솔직히 이런 전통 미디어가 북한 인민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 그럼에도 김씨정권은 여기에 대해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다. 좀더 발전하고 영향력이 강한 첨단 뉴미디어 등을 동원할 때 김씨정권이 느낄 공포와 불안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적이 가장 두려워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전략 전술의 기본이다. 인터넷이나 핸드폰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김씨정권 타도 메시지를 전달할 때 북한 내부에 주는 타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김씨정권은 이런 충격을 결코 이겨낼 수 없다.

우파 시민들 중에는 통일이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영구분단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영구분단론은 명분도 명분이지만 현실성이 없다. 분단은 매우 취약한 구조이다. 분단 상태가 70여년 넘게 지속되면서 분단이 매우 견고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오해가 일반화됐다. 하지만 한반도의 아슬아슬한 세력 균형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고 그럴 경우 통일은 마치 도둑처럼 들이닥칠 수 있다.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역사의 주도권을 외부 세력에 빼앗겼던 근대사의 비극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내부의 심각한 진영 대립도 그 근원을 찾아보면 분단에 그 근원이 있다. 이념 대립은 분단이 대한민국 내부에 확대 재현된 현상인 것이다. 분단은 그래서 우리 내부의 가장 근원적인 적대적 현실이다.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불구 상태는 해소될 수 없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세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자신의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의 근본적 한계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그 거대한 뿌리는 다름 아닌 분단이다. 분단의 존재감이 너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한 실존적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은 실존적 조건이 아니고 제도와 환경으로 주어진 것이다.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 한다. 분단의 발견과 통일에 대한 각성이 2023년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무엇보다 절실하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前 국민의힘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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