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세계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같은 건 없다. 촌구석에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쳤든 어릴 적부터 대학교수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든 일단 콩쿠르에 나가면 심사위원들에게는 그거야 나 알 바 아니고다. 잘 치면 1등 못 치면 탈락, 이유 불문 무조건 잘 치는 게 갑이다.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저는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호소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그건 댁의 사정이고요, 하는 냉소 혹은 조소의 시선이다.

britain's got talent에 나왔던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을 기억하시는가. 그들의 조건과 외모는 감동을 증폭시켰을지는 몰라도 평가의 기준을 낮춘 것은 아니었다. 음악뿐이겠는가. 빈민가 출신의 장 미셸 바스키아나 전직 트럭 운전사 안도 다다오도 마찬가지다. 기준은 엄격했고 그들은 핸디캡에 대한 대중의 정서적 가산점 없이 당당하게 우승선을 통과했다.

소설의 위기가 아니라 소설가의 위기

소설로 등단했고 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했음에도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재미가 없어서다. 내러티브가 탄탄하다느니 심리묘사가 탁월하다든지 같은 평론가들의 말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면 뭐하나? 스토리가 주저앉고 있는데. 소설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사람은 이야기에 환장하는 동물이고 그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천 권의 소설을 손에 들었다가 한 두 권 빼고는 몇 장 읽고 던져버린다. 흔히 소설의 위기를 말하지만 정확히는 소설의 아니라 소설가들의 위기다.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해 외면당하는 것일 뿐 책 안 읽는 풍토와는 아무 상관없다. 아니 그보다 그런 거지같은 소설을 쓰니까 소설이 더 대접을 못 받는 것이니 이들은 소설을 안 쓰는 게 오히려 소설의 사회적 위상에 도움이 된다.

어떤 아줌마가 소설을 썼다. 태어난 걸로 치면 거의 60년, 소설 쓰기로 마음먹은 걸로 치면 40년만이다.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분류하자면 용감한 일에 가깝겠다. 추천사를 써 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안 써도 될 만한, 읽고 추후에 거절해도 이유가 충분한 소설이 올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신은 확실하게 빗나갔다. 박선경의 첫 장편소설 <86학번 승연이>와는 그렇게 만났다.

80년대라는 우화, 재미없던 시대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

소설은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야 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운명이 궁금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86학번 승연이>는 기본에 충실하다. 일단 ‘세게’ 질러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킨 후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문법을 한국 소설에서 만난 셈이다.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된다. 여기서 흥미롭다는 것은 재미있고 즐겁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인공은 골병이 들고 피눈물이 나지만 독자는 그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게 될지 궁금하다는 얘기다. 그 결말이 알고 싶어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다. 물론 소설의 배경이 80년대이다 보니 586운동권의 황당하고 엽기적이고 짜증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다뤘다고 소설의 미덕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게 전면에 나선다면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남발됐던 선전, 선동 책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일 뿐 목적이 소설을 점령해서는 안 된다. 그 지점에서 <86학번 승연이>는 가뿐하게 합격선을 넘는다. 이 소설을 발표하기 전 작가는 수많은 습작 메모를 했다고 하는데 그게 단순히 문학소녀의 로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40년 만의 제대로 된 회고담, 이제는 그 시대와 헤어져야 할 시간

속칭 일류대 문ㆍ사ㆍ철이 주도했던 70년대와 달리 학교 불문, 전공 더더욱 불문의 학생들이 전(全)방위로 저항한 80년대는 예외적이고 비상식적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분칠되어 무흠(無欠)의 신화(神話)처럼 전해진 게 무려 40년이다. 재미라고 하는, 소설의 미덕을 제외하고 보자면 <86학번 승연이>는 이 신화의 탑을 강타한 아마도 첫 번째 소설이다.

운동을 끌고 간 인간들이 도덕으로 중무장한 비도덕적 존재였다는 아이러니를 작가는 예민하게 포착했고 그걸 소설로 옮겼다. 성적 자기 주체성이라는 명분으로 남자들에게 발가벗은 몸을 보인 운동권 여자들의 이야기는 슬프고 코믹하다. 운동에서 떨어져 있었으니 본인의 경험은 아닐 것이고 죄다 취재의 결과일 텐데 참 많이도 기본 자료를 끌어 모았다. 사람이 뭔가를 하려면 계기가 있어야 한다. 내내 가수가 되고 싶었다던 수잔 보일은 왜 이제야 사람들 앞에 나섰냐는 심사위원의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기회가 없었어요.” 박선경에게 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소설 도입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중산층 두 부부의 식사 자리에서 주인공 승연은 속칭 진보를 자칭하며 여권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전(前)운동권 여자에게 이렇게 쏴붙인다. “물리적으로 타인의 성기를 확장하겠다는 것이 솔직하고 인간적이에요?” 그러니까 박선경에게 계기이자 소설 쓰기를 작심하게 만든 것은 이재명이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86학번 승연이>가 소설적으로 그리고 세속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그 일등 공신은 이재명이라는 이 코믹한 상황. 더 쓰면 스포일러가 될까 여기서 줄인다. 작가의 건승을 기원하며 펜앤드마이크 독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참고로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19금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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