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70년간의 바빌론 유수를 마치고 일부 유대인들은 본토로 귀환했지만, 상당수는 자의든 타의든 현지에 남거나 다른 이방 지역으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diaspora)의 원류다. 유럽 도시의 게토(빈민가)에서 억눌려 지내던 유대인은 나치에 의해 더욱 심한 핍박을 받았고, 6백만 명이나 독가스로 집단살해 당하기도 하였다. 

  지구상의 인류는 기후, 환경, 전쟁과 같은 원인으로 집단적 이동을 해왔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든 땅을 버리고 유랑의 길에 오른 경우도 많았다. 재외동포가 많은 민족으로는 유대인을 꼽지만, 중국의 화교는 5천만 명이나 된다. 아일랜드, 스페인, 폴란드, 터키도 재외동포가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다. 750만 명이나 된다. 미국에 260만 명, 중국에 230만 명, 일본에 80만 명, 구소련과 주변에 50만 명, 캐나다에 25만 명, 동남아에 40만 명이나 산다. 

  조선왕조가 쇠잔해지고 백성이 먹고살기가 힘들어지자 1860년대부터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일본의 식민 통치 이후 더 많이 고향을 떠났다. 연해주에 정착한 조선인들은 독립운동의 본거지를 만들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1937년 일본인 첩자들과 식별하기 어렵다는 구실로 17만 명의 조선인을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들의 후예를 카레이스키(고려인)라 한다. 전 세계적으로 50만 명에 달한다. 그중 10만 명 가까이가 조상의 나라 대한민국에 들어와 있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주로 한국 젊은이들이 꺼리는 소위 3D업종에 취업하고 있다. 전국의 중소기업 공단에서 개도국 출신 근로자와 함께 일한다. 자연스레 일자리 인근의 주거지역에 몰려 살게 되어 고려인 마을을 이루고 있다. 7-8천 명 규모의 고려인 마을이 전국에 10여 개나 조성되어 있다. 인천의 함박마을, 안산 땟골마을, 광주 고려인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공단 근로자들이 중심이지만, 독립투사의 후예라는 점이 사증 발급과정에도 반영되어 부모와 어린 자녀들도 많이 와서 산다.

  유튜브에는 고려인 4세, 5세 어린이들의 발언이 자주 소개된다. 그 아이들은 두 가지 자부심을 품고 있다. 첫째, 자기 선조가 연해주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장 어려웠던 시대에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후예다”라는 자부심이다. 두 번째는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농사를 성공시킨 자부심이다. 그들은 움막을 짓고 정착을 시작하던 시기부터 학교를 세워 교육에 정성을 다했다. 구소련 시기에 근면하고 성실했던 고려인들이 200명 넘는 노력영웅을 배출하였다. 소련 전체의 민족영웅 2만 명 중 1퍼센트에 해당한다. 고려인 인구가 소련 전체의 0.2퍼센트에 불과하니 인구에 비례하면 5배가 넘는 민족영웅을 배출한 것이다. 소련의 어느 민족보다도 월등하게 우수했다는 자랑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도 귀중한 디아스포라다. 해방 당시 2백만 명 중 대부분 귀국하였으나 80만 명이 일본에 남았고, 이들을 재일교포라 한다.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재일교포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일본 사회의 특성이 소수민족(minority)의 존재를 싫어하기에 재일 한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애썼다. 차별정책의 원인이다. 한국 성(姓)을 일본식으로 고쳐서 귀화하라고 종용하였다. 지문날인, 외국인등록증 휴대 의무, 연금혜택 제한과 같은 차별적 조치들이 해소되는 데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부 간 거듭된 교섭과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운동의 도움으로 차별문제가 서서히 해소되고 있다. 

  한일 양국 관계가 우월감과 열등감의 구도서 벗어나 점차 대등한 관계로 발전함에 따라서 양국 관계 악화의 상징이었던 재일 교포가 자연스레 양국 간 협력을 촉진하는 윤활유와 같은 자산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이 부강해지고 민주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손 정의(孫正義)와 같은 세계적 기업인이 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일본 경제에 공헌하는 것은 대표적 성공사례다. 

  260만 재미 교포도 한국의 산업근대화와 정치 민주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현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뉴욕 야채시장과 주류소매점에서 유대인의 뒤를 따르던 한인들의 2세, 3세가 이제 미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주 정부 차원에서 나아가 연방 차원의 정치인들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특히 8.18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에서 전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한·미·일 3국이 선도적 역할을 하기로 다짐하였다. 이제 지구촌의 중심 역할에 한국의 참여 지분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BTS와 같은 K-문화의 확산은 한국의 국력을 미국에 투사하는데 중요한 상징이었고, 이에는 현지 교포들의 역할도 크게 작용하였다. 시간과 공간상의 거리가 축소되는 현대사회에 한인 디아스포라와의 긴밀한 유대는 한국이 세계 최첨단의 문화를 누리는 지름길이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 그리고 국력 6위의 중견국으로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2천만 명이 매년 해외여행을 한다. 기마민족의 DNA가 발현되고 있다. 

  한편 지금 한국 사회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활동 참여와 자녀 양육에 드는 높은 부담 때문에 0.78퍼센트의 저출산, 그리고 인구절벽을 이미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한국을 더욱 개방사회로 만들고, 세계 우수인력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쉽게 적응하도록 촉진하기 위해서도 카레이스키 4세, 5세와 같은 역사적 연계가 강한 인재들을 우선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고난을 극복하여 일어섰던 자부심과 모국 한국이 온갖 시련을 넘어서 당당한 중견 강국을 세운 자부심에는 똑같은 성공 DNA가 작동하고 있다. 상호 시너지효과가 크게 기대된다. 

  한국은 이미 다문화국가가 되었다. 9월 말 현재 한국의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89퍼센트나 된다. 43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5.7퍼센트로 다인종, 다문화국가에 진입하였다. 지금 명동 거리에 나가면 인종전시장과 같은 인파를 볼 수 있다. 한국의 안보와 질서를 해치지 않는 한, 이들을 최대한 환영하고 한국의 미래지향적 발전동력으로 함께해야 한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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