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묘법은 도 닦듯이 하는 작업"
서울대병원에 빈소

생전의 박서보 화백이 작품 '묘법' 연작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연합뉴스]
생전의 박서보 화백이 작품 '묘법' 연작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연합뉴스]

'묘법'(描法, Ecriture) 연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단색화 대가'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아흔을 넘어선 나이에도 작업을 계속했던 박 화백은 올해 2월 페이스북을 통해 폐암 3기 진단 사실을 스스로 밝히며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며 작업 의지를 드러냈다.

그래서 지난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박 화백의 회고전을 열며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라는 전시 제목을 달았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무수히 많은 선을 긋는 '묘법'(escrite) 연작으로 '단색화 대표 화가'로 불리며 한국 현대 추상미술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해외 미술계는 그를 일컬어 ‘한국 단색화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서양 미술과 차별화하는 단색화를 선구적으로 실험하고 그 이론(행위의 무목적성·무한 반복성·수행 도구론)을 정립했으며, 수많은 후학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박서보, 묘법(Ecriture) No43-78-79-8
박서보, 묘법(Ecriture) No43-78-79-8
박서보, Ecriture (描法) No 060910-08
박서보, Ecriture (描法) No 060910-08

박서보의 반복적으로 내려긋는 선은 계속되고 연속되면서 지지체인 종이의 결들을 밀어낸다. 그리고 그 밀려난 종이를 구성하는 펄프의 속살이 선, 색과 함께 뒤섞여 수많은 결을 만들어 촉각적인 화면의 결을 조성한다.

그는 생전에 묘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묘법은 도(道) 닦듯이 하는 작업이에요. 그림이란 내 생각을 표현하는 마당이 아니라 비워내는 마당이죠. 일종의 수행입니다."

그의 '묘법' 연작은 초기의 '연필 묘법'과 후기의 '색채 묘법'으로 나눠진다.  전자가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우고 수신하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면, 후자는 손의 흔적을 강조하기 보다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부여하면서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했다. 

지난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벨기에 보고시안재단이 주최하고 국제갤러리가 후원한 ‘단색화’전에 등장한 박 화백의 묘법 그림들이 해외 유명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국내외에서 수많은 개인전을 열었고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고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6년에는 데이미언 허스트 등의 전시로 유명한 영국 ‘화이트큐브’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작품은 전시가 개막하기도 전에 다 팔려 나갔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 해외 화단에서도 그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2∼1997년 모교인 홍익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홍익대 미대 학장(1986∼1990)과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석류장(1984년)과 옥관문화훈장(1994), 은관문화훈장(2011), 금관문화훈장(2021) 등을 받았고 제64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명숙씨를 비롯해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은 이날 오후부터 받는다.

이경택 기자 kt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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