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객원칼럼니스트
주동식 객원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가 대북전단 금지법을 통과시키려 할 때 한 음식점에서 옆 자리 손님들이 대북전단을 날려보내는 사람들을 맹비난하는 것을 듣게 됐다. 그들에게는 김정은이 아니라 대북전단을 날리는 사람들이 문제의 근원이자 나쁜 사람들이었다. 같은 지역 출신 모임으로 보이는 이들이 모두 소리 높여 분개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율성 공원’ 뉴스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이 모습이었다.(2023.8.31.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한 나라 두 국민’ 걱정케 하는 정율성 문제)

위의 칼럼에서 말하는 ‘같은 지역’이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이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바로 호남 즉 전라도 출신들인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좌파들 사이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언론이면 파리도 새고, 화장지도 팔만대장경이다’는 식의 반응이다. 저런 스테레오 타입 반응을 너무 자주 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조선일보가 수구꼴통 언론이라서 그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면 다른 분의 소셜미디어 발언을 인용해보자.

‘언제부턴가 편향적이고 문제가 있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 판사의 출신지가 어디인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분이 말하는 ‘출신지’가 어디인지도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다. 평범한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저 출신지가 호남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린다. 이런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분은 유명 사립대학 의대 교수로 지식인 사회에서 신뢰도가 높은 분이다. 평소 발언을 보면 호남보다 영남에 대해 훨씬 비판적이다. 그런 분조차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편향된 법원 판결이 나오면 출신지를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도대체 호남은 왜 이렇게 다를까? 아니 이렇게 말하면 호남이 억울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표현을 바꿔보자. 왜 대한민국 다른 지역 사람들은 호남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느낄까? 이 ‘다르다’는 느낌이 결코 긍정적인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정율성 기념공원을 보자. 이 사업을 밀어붙이는 광주시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남 통영에서도 친북 음악가 윤이상 음악제를 하고 있고, 경남 말양에도 친북 활동을 한 의열단 김원봉을 기리는 의열단 공원이 있다’고 반박한다. 광주만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율성은 6.25전쟁에 직접 참전한 당사자다. 그의 음악은 중공군과 북괴군이 우리 국민과 국군을 죽이는 데 직접 도움을 주었다. 윤이상은 친북 성향이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을 직접 죽이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친북 행위의 성격과 정도라는 점에서 정율성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다. 그리고 의열단 공원은 김원봉만을 기리는 게 아니다.

더욱 심각한 차이가 있다. 영남에는 윤이상 음악제도 있고 의열단 공원도 있지만 박정희 생가도 보존하고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 동상도 있다. 하지만 호남에는 건국의 주역 이승만도, 산업화의 주인공 박정희도, 호국의 영웅 백선엽도 없다. 오직 반(反)대한민국의 상징 정율성만 기념한다. 이런 호남만의 특이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호남은 산업화에 따른 권력과 이권 배분에서 소외됐다. 경부축이 대한민국 권력의 핵으로 등장하고 영남 출신 엘리트들이 자원 배분의 특권을 장악하면서 호남의 소외감이 커졌다. 산업화에 따른 노동력 동원을 위해 호남의 농촌 사회가 해체되면서 호남 출신들은 낯선 타향에서 차별과 설움을 겪어야 했다. 노동자와 도시빈민 등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상이었기 때문에 호남 출신들은 더욱 노골적인 차별에 노출됐다. 이런 경험이 호남의 소외감과 피해의식을 자극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호남은 약자가 아니다. 오히려 87체제의 승자이자 오너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호남 출신들은 대한민국 최대의 유권자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단단한 결속력을 통해 머릿수보다 훨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치적 영향력이 과다 대표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광주에서 국민의힘이 5.18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을 때 그들로부터 “호남은 적은 숫자지만 그 힘을 집중해서 사용할 줄 아는 민족”이라며 자부심에 찬 발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호남 사람들은 이렇게 강자의 위상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라는 자의식은 반드시 가해자의 존재를 설정한다. 그 가해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영남 출신 박정희 정권 당시에 지역차별과 소외가 전면화되었기 때문인지 호남 사람들은 영남을 가해자의 위상에 올려놓는 경향이 있다. 이것까지는 그런다 치자. 문제는 영남이 주도한 산업화와 관련 가치조차 적대시한다는 점이다.

시장질서와 기업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는 계약, 법치, 개인 등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로 구성된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가치이며 대한민국은 사회주의와 집단주의 이념으로 구성된 북한과 대립하며 체제 경쟁을 전개해왔다. 호남이 산업화 관련 가치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는 얘기이다.

특히 5.18의 비극 이후 호남에서는 영남정권에 대한 반감이 기업과 시장, 계약, 법치, 개인, 자본주의, 그리고 미국과 일본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전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구성해왔던 주류적 이념과 가치관에 대한 분노와 저항인 것이다. 이런 정서는 반(反)대한민국, 친북종중의 태도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이번 정율성 파문 아닌가 싶다.

수도권의 거대한 아파트 군락은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구축한 가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저 많은 아파트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저 아파트에는 1960~1980년대에 농촌에서 올라와 고생하며 정착한 호남 출신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내 주위에도 중산층 이상의 신분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호남 출신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온 게 과연 불행한 결과였을까?

60~70년대에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익숙했다. 3~4월이면 절량(絶糧) 농가가 속출했다. 말 그대로 끼니를 잇기 힘든 농민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들에게 도시의 일자리는 소외와 차별이었을까 아니면 구원의 손길이었을까? 당사자들에게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득한 가난의 절망에서 벗어난 탈출구 아니었을까? 그들이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처지가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수도권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라고 본다. 거기에는 호남 출신들도 많이 산다. 호남 출신들에게 신업화의 기수 박정희가 결코 악마일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건국의 영웅 이승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광주와 전남, 전북에는 이들을 기리는 흉상 하나도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강한 지역이 호남이다. 광주에는 그 대신 정율성 거리가 있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

더 기막힌 얘기를 해보자. 송갑석은 더불어민주당의 지명직 최고위원이자 재선 의원이며 광주광역시당 위원장도 역임했다. 한마디로 광주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송갑석은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김일성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북한을 정의와 자주권이 보장돼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로 인정하며,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송갑석은 이런 보도가 안기부의 조작에 의한 것이며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송갑석은 당시의 수사 결과를 뒤집기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꿔 표현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을 보면 안기부의 수사 발표가 사실에 근거했다는 심증도 생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송갑석을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로 선택한 광주시민들의 판단이다.

왜 광주시민들은 종북 및 이적 혐의가 있는 송갑석을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로 선택했을까? 이건 노골적인 반(反)대한민국 성향의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밖에도 호남이 반(反)대한민국 성향을 드러낸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좋은 것이면 악(惡)이고 북한과 중국에 유리한 것이면 선(善)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이 글 서두의 양상훈 칼럼이 적시한 에피소드가 그런 사례 아닌가.

어이없는 것은 광주시민들이 자신들의 이런 선택을 ‘애국적인 행동’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김대중의 영향력이 남아있다는 증거 같기도 하다.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에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북핵과 미사일 등 북한의 일상적인 안보 위협은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복합쇼핑몰 문제를 발굴하고 이슈화했을 때 기이하게 여겼던 현상이 있다. 광주시청 민원 게시판에 코스트코 유치 청원이 이어지고 광주시민 상당수가 대전의 코스트코로 원정 쇼핑까지 가는 상황이었다. 광주 안에서는 이 이슈가 상당히 알려져 있었고, 복합쇼핑몰 유치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폭발성에 착안해 단체를 만들고 이슈화를 시도했지만 별로 큰 반응은 없었다.

복합쇼핑몰 이슈가 여론의 반응을 얻고 전국적인 화제가 된 것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광주에 와서 유세하며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심지어 광주 지역사회 안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토론이 활성화된 것도 윤석열 후보의 언급 이후였다.

이 이슈를 띄우기 위해 노력했던 입장에서 유력 대선후보가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이슈화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내게는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왜 광주시민 자체적으로는 이 문제를 의제화할 수 없었을까? 왜 여론 형성의 자생력이 막혀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지 않는 한 호남 문제는 여전히 미궁에 갇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는 ‘호남의 가두리 양식장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호남 안의 이슈가 여론 형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정보와 담론의 유통이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호남 내부의 정치적 금기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5.18 상징자산의 압력 때문인지 호남에서는 해도 되는 말과 안되는 말의 구분이 너무 강하게 금기로 작용하고 있다.

정율성 기념사업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호남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40%를 넘겼다. 찬성하는 의견보다 많다. 그럼에도 강기정 시장은 이 사업을 강행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호남 내부에서도 여론 주도층과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 괴리되어 있다는 얘기이다. 아마 정율성 사업 자체를 모르는 호남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즉 호남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정율성 이슈나 복합쇼핑몰 등 이슈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기 어렵고 외부에서 호남을 바라보는 시각을 객관화하기가 어렵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실은 민주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현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애초에 의견의 다양성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담론의 가두리 양식장을 만든 것은 호남의 이념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좌파 패권이라고 봐야 한다.

호남은 재정 자립도가 가장 낮은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재정 지원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 상징과도 같은 5.18 관련 예산 지원도 마찬가지다. 이런 재정 지원이 가능한 것은 결국 대한민국 기업들이 열심히 수출하고 해외에 나가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호남은 대한민국 기업들에게 가장 감사해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반기업 정서가 가장 강한 지역이다.

호남은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에서 소외와 차별을 경험해왔다. 호남 출신으로서 내가 60여년 이상 살아온 경험을 솔직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나머지 지역 전부가 호남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호남이 옳고 정의로운데 나머지 지역이 모두 생각이 비뚤어지고 편견에 사로잡혀서 호남을 싫어하는 것일까? 미안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호남 혐오가 생기는 원인의 일부는 적어도 호남 내부에 있다고 본다. 그 내부 요인의 핵심이 바로 반기업 반시장 반미반일 친북종중 반대한민국 정서를 부추기는 좌파 패권이다. 이걸 고쳐야 호남 혐오도 개선할 수 있고 호남과 대한민국 다른 지역 사이의 이질감도 해소할 수 있다.

그 이질감을 통해서 이득을 취하는 게 좌파 패권이다. 호남과 다른 지역을 가로막고 호남을 가두리 양식장으로 만드는 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호남이 이 문제에 대해 눈을 뜨고 적극적인 변화에 나서지 않으면 21세기에도 호남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前 국민의힘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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