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 무기력한 직능대표, 전문가 vs. ‘이념전장의 싸움닭’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1일 열린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이번달 안으로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 지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법 개정시한(총선 13개월전)은 이미 지났다. 총선까지의 일정을 감안할 때, 시간이 별로 없지만,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만큼 곡절이 예상된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제기된 선거제도 변경안은 중·대선거구제 도입, 의원정수 축소, 비례대표 선출방식 등 크게 세가지다.

이중 윤석열 대통령이 올초 신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필요성을 제기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당내 다수의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제기한 이슈라는 점에서 아직까지 ‘불가론’을 공식화하지는 않은 상태다. 중대선거구제가 여당의 내년 총선 최우선 목표인 과반수의석 확보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민주당 또한 최근 정기국회를 앞두고 소집된 의원총회에서 현행 소선거제 유지로 사실상 당론을 확정함으로써 중대선거구제 이슈는 사실상 소멸한 셈이다.

현재 300명(지역구 253명+비례대표 47명)인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문제는 비례대표 문제와 연계돼 있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여야가 실제로 의원수를 줄이는데 합의할 경우 현역 국회의원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지역구 대신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지 않더라도 인구감소로 인해 지역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농촌 출신 의원들의 요구로 비례대표 수를 줄여 이들의 지역구를 살리는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할 가능성도 있다.

올봄, 김기현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현행 비례대표 제도를 전면 폐지해 의원 수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기국회 개회 직전 윤재옥 원내대표가 21대 총선 때 도입된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 선출방식이 아닌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 방식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비례대표 존치를 기정사실화 했다.

여기에 민주당 또한 전국을 3개 권역으로 쪼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함으써 내년 22대 총선에서도 비례대표 형식으로 뱃지를 다는 국회의원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 제도에 대한 비판여론은 드높기만 하다. 지난해말 나온 한국행정연구원의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비례대표 폐지 27%,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 24%였다.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비례대표의 수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라는 의견인 것이다.

지난 7월10일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시민단체 선거법개정 대토론회는 비례대표 제도 성토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여야가 따로 없이 왜곡된 비례대표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불투명한 공천과정과 소속됐던 이익집단 대변, 재선을 위한 몸부림 등이 비례대표 의원을 당리당략을 위한 ‘싸움닭’으로 만들어 정치불신과 혐오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 폐지론과 더불어 후보 공천의 투명성 및 공정성을 위해 '개방형 비례대표' 등의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폐쇄적 정당의 공천구조 때문"이라며 "비례대표제도에 대한 불신도 결국 여기에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은 "국민들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비례대표제도는 중앙당의 공천권을 강화하고 특정 정치세력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은 "비례대표제는 폐쇄적 공천과정으로 인한 문제와 선출 이후 자격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우리나라 비례대표제는 입법 민주주의의 편법 지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비례대표 무용론의 또다른 이유는 진영의 전사론"이라며 “"17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처리한 3만건의 표결 기록을 보면 각 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지원들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표결양상을 보였다"이라고 지적했다.

권인숙 용혜인 윤미향 양원영 김병주 최강욱 김의겸....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및 여권이 비례대표로 충원한 주요 국회의원들의 면면이다.

다양한 직군 직능의 대표들을 국회에 참여시킨다는 비례대표 본래 취지와 달리 운동권 출신 등 투쟁성 위주로 후보군을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 1번에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을 발탁하는 등 외교 안보 의료 보건 노동 장애인 등 각계를 망라하려는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180석 압승을 바탕으로 조국사태와 검수완박 등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입법독재 폭주를 뒷받침했는데 비례대표 의원들은 최전방에서 싸움닭 역할을 했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보여준 모습의 차이는 민주당 의원들의 경우 국민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해서는 ”그런 국회의원도 있었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에서 드러난다.

치열한 이념전장터가 되버린 국회의 현실을 외면한 무색무취(無色無臭)한 전문가들, 늘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려온 직능대표들이 공천권자들의 입맛에 따른 ‘밀실공천’으로 발탁된 결과다. 그러다보니 역대로 민주당에 비해 보수정당이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의 잡음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 중 상당수는 지역구를 받아 내년 총선 출마준비를 하고 있거나 이곳저곳 지역구를 기웃거리는 등 다시 국회의원 뱃지를 달기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역대로 민주당의 비례대표 대부분이 운동권 생활,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국회에 진입했던 반면, 보수정당의 비례대표는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기회주의자들의 등용문이 됐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국상황을 보면 22대 국회는 21대 국회 못지않은, 더 치열한 체제 및 이념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이 그동안 보수여당이 해왔던 비례대표 충원방식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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