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일본과 여러모로 엉클어진 한국의 근대사 사료를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양상은 우리 현대인의 상상 이상으로 한일합방을 희망하고 긍정한 조선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는 오로지 당시 대량으로 나타난 '친일파' 척결에만 편향된 나머지 왜 '친일파'가 생겼는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포함한 자신에 대한 성찰·반성은 방치한 채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는 일종의 숙명이고 숙명에는 다 그렇게 되는 원인이 있다. 또한 원인은 자타 양면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분석을 해야 하며,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감성적 비판에 그친다면 결국 그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함정을 다시 스스로 파게 될 것이다.

1901년 8월 한국병합까지의 조선사를 보면 한국의 교과서에서도 지적하다시피 19세기 초부터 조선에 세도정치가 발호하고 정치의 문란, 경찰의 횡포, 민중의 빈곤이 길게도 이어졌다. 개혁의 시도도 누누이 조선 왕조와 내부 당쟁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대중의 고난을 두고 궐기에 나선 이용구는 대등한 일한합방을 지향하여 일본의 힘을 빌어 조선을 재건하려 했다. 같이 일진회 리더로 있던 송병준은 "한국의 황제는 덕이 없다. 일본과 협력하여 그 체제를 수용하여 문명개화를 조속히 이룩할 수 있다. 매국노라 모욕당해도 한국 민중을 구하기 위해서는 합병밖에 길은 없다"고 여겼다. 이용구와 손병준은 '친일파'로 규탄당하고 있으나 당시 국제적 시야를 갖춘 조선의 엘리트들이며 특히 이용구의 조선을 구하려는 애국적 정열은 존경스럽다. 그는 사실 지금 너무 많이 왜곡당하고 무시당한 조선의 근대 엘리트 중 한 사람이다.

현재 '을사오적'에게 한국병합의 죄를 몰아 씌우고 그 필두에 있는 이완용 등이 친일파의 상징으로 척결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완용은 애국자이며 조선의 대표적 엘리트 정치가로서 국제적 시야를 갖췄는데, 그런 그가 친미, 친러에서 친일로 기울어졌던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조선을 살리는 길은 '병합'이며 그렇지 않으면 바위에 계란던지기 식으로 자멸을 초래함을 엘리트들은 잘 숙지하고 있었다. 그는 1926년 임종시 이렇게 유언을 남긴다. "나 역시 자주독립만을 절대치로 믿는 자다. 다만 그 차선지책으로서 친일이었을 뿐이다."

이완용 및 을사오적. 이용구, 송병준 등 한국병합을 찬성·긍정한 엘리트들의 열길 속을 한번 다시 알아보는 분석, 냉철한 연구가 매우 필요하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민족주의, 민족심에 불탄 '친일파 척결'도 좋으나 우선 그 배경·원인 분석을 토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필자는 늘 생각한다.

이 나라, 민족을 일본에 맡긴 매국노가 있다면 필자는 그것은 고종을 필두로 우리 민족 전체 성원이 다 그 범주에 든다고 본다. 어느 누구 개인보다 우리 민족을,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일 뿐이다.

한국병합에 대해 의외로 조선의 엘리트, 대중들 속에서도 긍정하는 이가 많았는데 아래 대표적인 인물·언론을 들어보기로 하겠다. 

이성옥이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조선 말기 전권공사로서 미국에 체류했으며 그때 통역을 맡은 인물이 유명한 서재필이었다. 이성옥은 미국에서 조선인이 아메리칸 원주민보다 멸시당하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이렇게 술회한다. 

"현재의 조선민족의 힘으로서는 독립국가로서의 체면을 세우기 어렵다. 망국은 필지(必至)다. 망국을 구하는 길은 병합밖에 없다. 또한 병합 상대는 일본밖에 없다. 구미인은 조선인을 개돼지처럼 보고 있으나 일본은 아니다. 일본인은 일본식의 도덕을 휘둘러 시끄럽게 군소리를 하는건 마음에 안 들지만, 이는 조선인을 동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인을 이끌어 세계인류의 문명에 참입하게끔 하는 유일한 적임자이다. 그 말고서는 조선민족이 돼지같은 경우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일한병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나의 병합관은 구미인의 조선민족관을 토대로 고찰함에서 온 것이다."('이완용 후작의 심사와 일한화합')

다음은 홍종우라는 인물을 들어보자. 그는 젊은 시절 일본에서 활판공으로 일한 적이 있으며 그후 파리에 갔다가 개화파 인물로서 김옥균에게 접근했다. 상해에서 김옥균을 사살한 홍종우는 귀국후 평리원 재판장으로 영달의 길을 걷는다.

반일가로서의 그는 국왕의 무능에 실망해 비난한 탓으로 정계에서 멀어졌다. 그는 경성신문 주간이었던 일본인 지식인 야오야기 코타로와 친숙해지며 야오야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국왕을 모신 한국이 망하지 않음이 요행이다." "한국은 지금 말로에 있다. 4천년 구방(舊邦)도 지금은 단말마에 인접했다. 일진회 회원이 아니더라도 이 나라의 불쌍한 서민들은 도탄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신속히 병합시켜 일본 천황폐하에 의해 1200만 국민이 소생하게 되면 나라가 망해도 망한 가치가 있다."

한국 국왕의 뜻을 일관적으로 따랐던 인물인 만큼 그 발언은 통렬한 데가 있었다. 지폭의 관계로 다른 인물의 긍정론은 할애하지만, 당시 병합긍정자의 언동에 무조건 민족정서로 규탄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냉철하고도 진지한 역사 성찰, 분석작업이 필요하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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