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천재 아드님, 조국의 인플루언서 따님...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준 숙제

“엄마, 우리 미래가 더 긴데 왜 미래 짧은 분들이 1대 1 표결을 해? 남은 수명 따져 비례해서 투표해야 하는 거 아냐?” 김은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의 아들이 중학교 때 했다는 말이다(이하 존칭 생략). 내 생각에 이 아드님은 천재다. 나는 그 나이에 그런 위대한 발상은커녕 선거나 투표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김은경은 아들이 많이 기특했던 모양인지 이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되게 합리적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1인 1표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라며 소감을 피력했다. 그걸로 끝? 이 대목에서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자녀가 천재성을 보이면 부모는 그걸 키워줘야 한다. 그런데 무릎을 치고 그만이었다니 책임 방기다. 김은경은 당연히 아들의 사고를 한 차원 높여줘야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아들, 그것도 좋은 의견인데 좀 더 다양하게 생각을 펼쳐보면 안 될까? 재산세를 내는 사람도 있고 면제인 사람도 있어. 그럼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 둘 다 똑같은 투표권을 줘야 할까?” 아니면, “군대도 안 갔다 온 여자들이 국가 대소사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좀 비합리적이지 않니?” 뭐 이런 식이었다면 그 아드님 아마 사고의 수직 상승을 반복했을 것이다. 남의 집 아이지만 내가 다 아깝다. 진심이다.

민주주의라는 긴 여정

사실 나도 민주주의 1인 1표 별로다. 천재 아드님의 그 번뜩이는 사유 말고 가령 하버드 박사 마치고 온 석학과 불운한 시절을 사시느라 한글 겨우 깨친 두메산골 아흔 할아버지의 투표에서의 가치가 같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인 1표를 수긍하는 것은 민주주의는 완성품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 효율과 형평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놓고 인류가 이제껏 노력하고 있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중 그나마 그게 제일 낫기 때문이다. 처칠이 그랬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올시다. 이제껏 등장했던 모든 정치체제를 제외한다면 말입죠.” 바로 그런 이유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가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대되어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내 삶과 운명을 적어도 이제는 남이 결정하지는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운명이었던 신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 나은 것을 위해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준 숙제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는 좋아하면서도 고민은 없다. 우리의 ‘민주’가 주어진 것이었지 피 흘려 얻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동료가 죽은 끝에 얻은 투표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는 ‘민주정政’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주의ism는 완성품이다. 일본 사람들이 번역 잘못한 단어가 대표적으로 두 개 있다. 하나는 철학이다. 세상의 모든 지혜를 모색하고 사랑한다는 이 뜻이 철학으로 번역되면서 졸지에 플라톤은 철학자가 정치를 하는 나라를 꿈꾼 팔푼이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데모크라시다. cracy(고대 희랍어 kratos)가 ism이 되면서 주의主義도 아닌 것이 주의 행세를 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민주民主는 고민苦悶이다. 아직도 정의定義가 내려지지 않은 여정인데 고민이 없으니 슬그머니 정의正義가 되고 이게 현실에서는 포퓰리즘이다. 그 일본 놈 진짜. 이래서 내가 친일에 매진을 못한다.

고문을 해 달라는 부정父情

엄마와 아들에 이어 이번에는 아빠와 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님이 따님인 조민 씨의 불구속 기소에 “차라리 옛날처럼 나를 남산이나 남영동에 끌고 가서 고문하길 바란다.”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지도 않은 남영동 남산 운운하는 가증스러운 궤변”이라며 “민주화운동으로 진짜 남산과 남영동 다녀온 사람들은 당신처럼 말 따로 행동 따로, 입 따로 몸 따로 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교수가 콕 찌르기 전까지 나는 장관님께서 칠성판이라도 한 번 타신 줄 알았다. 그동안 허언증이 생기신 모양이다. 장관님을 매우 좋아하며 중요한 사회적 증상으로 관찰하는 입장에서 이런 조언을 드리고 싶다. 장관님께서는 재능 없는 법보다 차라리 과학에 관심을 가지시는 건 어떨지 말이다. 가령 타임머신 같은 거. 예전에 전두환 대통령은 이런 농담을 했다.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 감정이 안 좋은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아직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연희동에 머물고 계신 대통령은 울분을 터트리는 장관님께 이런 농담을 하실지 모르겠다. “맞지도 않고 체험을 하셨다고? 돌아와라 80년대로. 고문해줄 테니.” 따님은...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린 근황을 보면 어머니의 고난, 아버지의 분통 뭐 하나 관심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여간 엽기적 부녀 세트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