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OTT (PG).(사진=연합뉴스)
해외 OTT (PG).(사진=연합뉴스)

1995년을 방송·통신 융합 원년이라고 한다. 미국 의회가 방송과 통신 겸영을 허용하는 통신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해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오랜 기간 미국 방송시장을 지배해왔던 케이블TV와 통신사업 겸영이 허용되었다. 특히 2001년 타임워너(Time Warner)와 AOL(American Online) 합병으로 일약 세계 1위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올라서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빈 수레가 요란했던 것인지 ‘AOL-타임워너’ 합병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완전 실패로 돌아갔다. 도리어 통신법 개정 10년 후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케이블TV와 통신사업 상위 5개 업체가 미국 방송시장 80%를 장악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시장에서의 독과점구조만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런 법·제도적 융합이 확산되지도 않았다. 방송법이나 방송사업자 개념이 없었던 미국은 논외로 하더라도, 유럽에서도 방송과 통신을 함께 규제하는 법제 정비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었다. 전송수단과 무관하게 미디어 서비스를 ‘콘텐츠-플랫폼-송출’ 단계로 구분해 규제하는 수평적 규제 패러다임은 법·제도적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방송의 공적 속성과 내용 규제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더 했다. 2000년 출범한 위성방송을 시작으로 위성DMB 같은 디지털 방송들은 법적 진입장벽과 기존 사업자들의 제도적 저항으로 크게 고전하거나 파산하였다. 현재 유료방송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IPTV도 2008년에야 별도의 법 제정을 통해 시장에 겨우 진입할 수 있었다.

이런 진입장벽들 때문에 신규 디지털 미디어들은 좀처럼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말로만 무성하던 방송·통신 융합이 생각보다 별 것 아니라는 ‘폭풍 후의 고요’라고 조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진짜 미디어 혁명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폭풍 전의 고요’라고 경고했다.

최근 분위기는 확실히 ‘폭풍 전의 고요’였음을 확실하게 입증해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무섭게 성장을 지속해 온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선두로 OTT서비스가 미디어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통계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영국의 ‘Global Data’ 보고서에 따르면, SVOD(정기 구독형 VOD) 즉, 넷플릭스 같은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가 전 세계적으로15억 명을 넘어 유료방송 가입자를 추월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유튜브 같은 광고형 VOD(AVOD) 이용자 숫자를 더하면 방송 주도권은 이미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로 이동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렇게 미디어 패러다임 전환의 촉발점이 된 것은 2008년 아이폰의 등장이다. 휴대폰으로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인터넷이 억지춘향격으로 방송과 통신을 구분해 놓고 있던 법·제도적 장치들을 한 번에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방송규제는 여전히 갈라파고스에 머물러 있다. 2014년 OTT서비스 법규제 도입 논의가 처음 시작된 후 10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OTT 법제화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규제기구의 주요 정책추진과제로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기존 방송규제 틀에 신규 인터넷 매체들을 포함해 규제하려다 보니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규제 효율성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기술 발달에 법·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적 지체’ 수렁에 빠져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방송계에 뿌리박힌 ‘문화적 주권’ 같은 배타적 국수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OTT 규제 논의는 넷플릭스 한국 시장 침식이 화두가 되고, ‘문화주권’과 ‘미디어 제국주의’ 같은 선·악논리가 논의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법적 지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미디어들은 이미 전통적 방송매체들은 밀어내고 급속히 방송시장을 흡수해 나가고 있다.

이미 코드 커터(code cutter)가 된 것이다. 매체기술 변화를 법·제도로 저지하려는 소극적 태도를 벗어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EU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OTT를 법적으로 수용하되, 자국 콘텐츠 투자나 편성 쿼터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 BBC나 독일 공영방송은 공동제작 방식으로 연착륙을 도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규제 여부를 놓고 지리한 논쟁만 이어지고 있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에서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제작시장을 장악하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마치 첨단 기술로 무장한 OTT와 재래식 방송규제와의 싸움 같다. 묵을 대로 묵은 철 지난 OTT규제 논쟁에서 벗어나 현실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 법규제 논의가 필요한 지금이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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