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남자선생님 교권 침해 (PG).2019.07.29(사진=연합뉴스)
남학생-남자선생님 교권 침해 (PG).2019.07.29(사진=연합뉴스)

문제상황: 학생 인권이 무시되던 시대와 교권이 무너진 시대

최근 교권의 추락이 크게 문제되고 있지만, 돌이켜 보면 학생들의 인권이 무시되던 시기도 꽤 오래 지속되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학생들에 대한 체벌은 당연시되었고, 심지어 교사가 학생을 심하게 구타하여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되고 국민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학생인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 결과가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나타났고, 교사가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의 획기적 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학부모가 교사에게 갑질을 하는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모든 교사가 학생들을 구타했던 것도 아니었고, 모든 학생이 교사에게 폭행을 가한 것도, 모든 학부모가 갑질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 논란되듯이 교사-학생의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것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과연 교권과 학생인권은 조화될 수 없는 것이며, 어느 한쪽의 강조는 필연적으로 다른 쪽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일까?

최근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마치 노사관계처럼 이해하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사업자의 이해관계와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교사와 학생의 이해관계도 충돌할 수밖에 없고, 어느 한쪽의 우위는 다른 쪽의 억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노사관계도 대립적 관계가 아닌 협력적 관계로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더욱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노사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무엇보다 교육의 본질 및 기능으로부터 비롯된다.

교육의 본질은 가르쳐서 키우는 것, 즉 사람을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것에 있으며, 이를 위한 교육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지식과 소양을 쌓는 것이며, 둘째는 각자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재능을 계발하여 원하는 삶(공직자로서의 삶, 의사로서의 삶, 연예인으로서의 삶 등)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셋째는 자기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다각도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당사자인 교사와 학생은 결코 대립적인 관계에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왜곡된 교사-학생의 관계 속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이 대립적인 것으로 오해되고 있을 뿐이다.

더 많이 모인 교사 도심집회…폭염에도 전국서 참석.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고인이 된 서이초 담임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검은색 복장으로 참석하고 있다. 2023.7.29.(사진=연합뉴스)
더 많이 모인 교사 도심집회…폭염에도 전국서 참석.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고인이 된 서이초 담임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검은색 복장으로 참석하고 있다. 2023.7.29.(사진=연합뉴스)

교권의 추락, 학생인권 때문인가? 학부모의 갑질 때문인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매우 불완전한 존재이며, 어린이들은 인간 사회의 복잡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의 교육을 통해서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는 그 나라의 교육수준이 곧 국력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교육은 공적으로도 중요성을 갖기에 헌법은 교육의 권리와 더불어 교육의 의무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

특히 미성년기 아동-청소년의 교육은 그 중요성이 큰 반면에 학생들의 정신적 미성숙으로 인하여 교육과정에서 강제수단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를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교육목적상 불가피한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교권이 오남용되어 학생들에게 가혹한 체벌, 부당한 처우 등으로 나타난 경험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의 강조,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교권의 오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학생인권의 지나친 강조가 교권의 무력화로 이어졌다. 교권의 무력화는 곧 교육의 기능 상실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공교육의 붕괴와도 연결된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교권의 의미와 기능을 무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지방자치단체별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및 실행되는 과정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일방적으로 학생인권을 선언할 것이 아니라 교권과의 관계 설정에 관한 내용들이 상세하게 규정되었어야 했다.

셋째,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교육감을 비롯한 교육관청들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교사들의 어려움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교육당국이 교권과 학생인권의 균형과 조화에 신경쓰지 않은 결과가 때로는 학생인권의 침해로, 때로는 교권의 무력화로 나타난 것이다.

한때 학생인권조례가 마치 교육의 선진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앞다퉈 도입했지만,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장까지 나올 정도로 논란이 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완전히 폐지하기는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교권조례라도 만들어서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운영해야 할까?

학생인권이 아니라 학부모의 갑질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학부모의 갑질 또한 학생인권을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학생인권이 강조되기 이전부터도 이른바 돈 있고 지위 있는 학부모들의 갑질은 존재했다. 지금도 일부 교사들의 갑질이 문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의 일탈과 달리 최근에는 학부모의 갑질이 제도적으로 보호되는 듯한 양상이라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학생인권이 강조된 이후에 학부모의 갑질이 마치 정당한 것인 듯 인식되었고, 그로 인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던 것이다.

결국 교육당국이 어느 편에 서는지에 따라서 교사의 갑질이 늘기도 하고, 학부모의 갑질이 더 많아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교육당국은 어느 한쪽의 편이 아니라, 사안별로 합리적 기준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하게 공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 주먹질에 학대 신고까지…커지는 교사들 한숨.2022.10.22 (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학생 주먹질에 학대 신고까지…커지는 교사들 한숨.2022.10.22 (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문제해결의 방향: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균형과 조화

교권의 확립을 위해 학생인권이 후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균형과 조화의 관계 속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다시금 교육의 본질과 기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교육의 본질은 교사가 아닌 학생의 성장과 성취에 있다. 교권은 이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교육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의 하나가 교권인데, 교권을 무력화하면서 교육이 제 기능을 다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교육이 교육이기 위해서는 교권이 바로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생의 교사 폭행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교사의 학생 체벌은 –그것이 설령 부적절한 수단이라 하더라도-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할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학생의 교사 폭행은 어떤 말로도 변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교권 침해 이전에 교사에 대한 인권 침해다. 학생만 인권의 주체이고, 교사는 인권의 주체가 아니라고 할 것인가? 어린 학생이고, 아직 잘 몰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때문에 교권이 더욱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교권을 무력화하면서 어린 학생들의 일탈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이며, 정상적인 교육을 할 것인가?

과거의 권위주의적 교육이 더 좋다는 말은 아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해도 사랑의 매라는 말로써 눈을 가릴 수 있던 시대가 더 좋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와 학생(+학부모)이 상호 존중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한다. 이는 교사-학생의 관계에서만 특별히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의 충돌이 문제될 때면 항상 요구되는 것이다.

예컨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도 타인의 사생활이나 명예, 영업비밀 등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다만, 공익을 위해 진실에 부합하는 발언의 경우에만 우선적인 보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즉, 음해 목적이거나 허위의 사실로 발언할 때는 언론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교권을 내세워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학생인권을 억압해서는 안 될 것이며, 학생인권을 내세워 정당한 교권을 무력화하려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상호 존중이며, 양자의 균형과 조화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학생의 관계를 적대적 대립의 관계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무너진 교권. (CG). (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무너진 교권. (CG). (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교사와 학생의 상호 존중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

오늘날 공교육의 붕괴라는 말은 우려가 아닌 현실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단지 졸업장 때문이고, 실제 공부를 배우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나 과외라는 것은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권을 주장하고 교사에 대한 존중을 말하는 것이 과연 어떤 반향을 얻을 수 있을까?

교권 추락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존중이 가능한 교육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교사보다 학원 강사를 더 존중하는 학생들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

공교육 붕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교육에 비해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사교육을 억제해도 공교육이 경쟁력이 없으니 사교육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향후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은 교육수요자의 입장에서 공교육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또한 이를 위해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이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소통의 전제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공교육의 방향이 새롭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교육당국이 교사와 학생의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늘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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