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中 중진국 함정론 급부상...근저요인은 '시진핑 리스크'
'보편주의' 아닌 中의 중화사상
'투키디데스 함정' 맥락서 보면 中의 승리 가능성 거의 없어
등소평의 '도광양회' 부정한 시진핑의 섣부른 대국굴기
中 보이콧하는 외국자본...자승자박 끝에 중진국 함정 가능성 높아져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중진국 함정’은 성장동력이 꺼져 고도성장을 이어갈 수 없는 경제상황의 도래를 의미한다. 2015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관변 학자와 관영 언론은 ‘중국의 중진국 함정’ 가능성을 일축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질투나 서방의 반중(反中) 정서로 치부했다. 중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예외론’을 신봉했다. 
 그러다가 중국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 부장이 2015년 4월 한 포럼에서 “향후 5~10년 이내에 중국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질 확률은 50% 이상”이라고 시인하면서, 중국 지도부가 중국 경제의 현실적 위협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진국 함정론은 통상 경제성장률로 포착되며 중국의 경우 ‘성장률 7.0%’가 기준으로 제시된다. 2015년 중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6.9%이었다. 

O 급부상하는 중진국 함정론 

 올 들어 중국의 중진국 함정론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올 2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6.3%로 시장 전망치 평균 7.1%를 크게 밑돌았다. 성장의 양대 축인 소비와 수출 모두 예상보다 부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수와 수출 등 경제변수 만으로 중국의 중진국 함정을 설명하는 것은 표피적이다. 근저요인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2001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클린턴 전(前)대통령이 적극적이었다. 중국이 자유와 공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세계의 일원이 될 것이란 순진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중국은 보편적 국제질서에 역행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 초강대국 실현의 꿈을 쫓았다. 시진핑이 들어오면서 '대국'과 ‘굴기(崛起)’가 자주 인용됐고, 이웃 나라들에는 공세적이고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미국편을 들지 말라’는 오만한 발언은 그 작은 예에 지나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은 과거 중화의 영광을 회복하고 ‘세계의 지배국’으로 부상하겠다는 구상을 노골화한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는 ‘중국의 팽창주의와 독재체제’를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3연임을 강행하면서, ‘시진핑 리스크’가 ‘상수화’되고 있다. 이처럼 서방세계에 급속히 확산된 반중 정서가 중국경제를 옥조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서방세계의 직접투자가 작년 1분기 1000억달러에서 올 1분기 200억달러로 쪼그라들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월가의 투자자들이 중국에 등을 돌리는 것도 심상치 않다. 템플턴 자산운영의 ‘마크 모비우스’는 HSBC은행과 자금인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으며, 투자사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도 중국 주식을 매각하고 있다. 중국은 사방에 적(敵)을 키우고 있다.  

O 중국 패권의 문화적 DNA 

 영어 표현에 ‘shift left’란 말이 있다. 왼쪽으로 가서 보라는 말이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왼쪽부터 읽는다. 결국 ‘원점에서 꼼꼼하게 검토하라’는 의미이다. 

 중국의 공식 명칭은 ‘中华 人民共和国’이다. 중화(中華)에는 ‘중국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변두리’라는 오만이 깔려있다. 중화는 ‘미국 지배에 의한 세계 평화질서 유지’라는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와도 결이 다르다. 미국은 2차 대전 승전국으로 나름의 권위와 자격을 갖추었지만, 중국은 스스로 ‘중화’를 칭했다.   

 영문명은 ‘People's Republic of China’로 ‘사회주의’를 국명에 못박았다.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승자가 된다고 가정하면, 보통명사인 사회주의가 아닌 고유명사화한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된다. 미국이 중국식 표기를 따른다면, “United Democratic States of America”가 된다. 그렇게 표기하지 않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중간 체제를 둘러싼 패권 다툼은 ‘미국의 보편주의’ vs ‘중국 특색 사회주의’ 구도로 압축된다. ‘G1’으로서의 제1 강대국은 보편주의를 지향해야 합당하다. 그것이 리더의 자격인 것이다.  ‘중국이 중화사상을 버리지 않는 한’, ‘중국특색 사회주의 강국 중국몽(中國夢)을 고집하는 한’ 세계 정치·경제질서는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국 편에 선다면, 미국이 아닌 보편주의 추구에 동참해서일 것이다.   

O 미·중간 투기디데스 함정

 미·중갈등을 투키디데스 함정의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기존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패권국과 이를 추격하는 신흥 강대국 간의 다툼을 의미한다. 패권경쟁에는 쫒기는 자의 초조감이 묻어있다. 따라서 도전국의 의도와 관계없이 ‘패권국의 지위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인식 자체가 패권 경쟁을 추동한다. 2021년 현재 중국은 미국 GDP의 70%를 넘어섰고, ‘글로벌 포춘 500대 기업’ 중 중국기업이 135개로 미국(122개)을 추월했다. 패권경쟁의 외형 조건은 충족되고도 남는다.  

 미·중 이전(以前)의 투키디데스 함정 결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의 60% 수준에 육박했을 때 일본을 위협적인 도전국으로 지목하고 견제했다. 미국은 일본에 ‘플라자 협약’(1985)과 ‘미·일 반도체 협정’(1986)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첫 단추는 엔화를 강제로 50% 절상시킨 ‘플라자 협약’에 의해 끼워진 것이다. 오늘날 굴지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대만의 TSMC도 미·일반도체 협정의 산물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미국에 대한 도전자 명단에서 지워졌다.  미·소갈등도 투키디데스 함정의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소련 서기장  흐루츠초프는 1956년 11월 서방측 대사를 위한 리셉션에서 "우리는 너희들을 묻어버릴 것이다!(We will bury you!)" 라는 비외교적 폭언을 발설하며 사회주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소련은 30년여년 후 “Mr. 코르바초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십시오”라는 레이건 대통령의 명연설이 기폭제가 되어 붕괴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인구 1억 5,000만명, 국내총생산(GDP) 2조 달러 남짓 국가로 추락했다. 전(前) 흐루츠초프 서기장 아들은 미국 브라운 대학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9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렇게 러시아도 미국의 도전 국가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미·소간 미·일간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소련과 일본이 미국에 패배한 것은 미국의 경제력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 상에서 볼 때, 중국이 미국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투키디데스 패권경쟁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2인자의 추격을 불허하겠다는 패권국의 ‘원초적 본능’이 작동한 과이다.  

O 등소평의 정치적 유지(遺旨) : 도광양회 유소작위
   

등소평의 외교전략은 ‘도광양회 유소작위(韜光養晦 有所作爲)’로 압축된다. “칼을 칼집에 넣어 검광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조용히 실력을 기르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에만 나서라”는 것이다. 

 모택동 사후 1978년에 실권을 잡은 등소평은 ‘화평발전(Peaceful Developmet)’을 대외적으로 선언했다. 모택동의 전처를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모택동은 ‘초영간미’(超英赶美)’, 다시 말해 “빠른 시간 내에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과 한판 겨루겠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시간 단축을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 ‘대약진운동’이 철저히 실패해서 경제가 수렁에 빠지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는 참극을 맞았다. 그리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모택동이 벌인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은 초토화됐다. 

 등소평은 ‘사회주의 실패’를 ‘흑묘백묘론’으로 절묘하게 피해갔다. 그리고 ‘선부론(先富論)’으로 시장경제를 사실상 수용했다. 그 결과 중국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꾀했다. 

 도광양회는 3연임을 한 시진핑에 의해 부정되었다. 3연임 취임 일성으로 “금세기 중반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겠다”고 말했다. 건국 100주년 되는 ‘2049년 초강대국 건설’ 목표를 다시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 “조국의 완전한 통일은 모든 중국인의 공통 염원이며 민족 부흥의 핵심”이라며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적극 추진하고, 외부 세력의 간섭과 ‘대만 독립’의 분열 활동을 단호히 반대하겠다”고 천명했다. 무력통일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의 패권적 질서에 맞서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기필코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O 중국만 쏙 빼고, 아시아 신흥시장에 베팅하는 외국투자자 

 기일을 정해서 세계를 제패하고 대만의 무력통일을 완수하겠다는 호전적 발언을 하는 중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선이 좋을 리 없다. 정치적 압박은 차치하고 외국자본이 중국을 보이코트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개월간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 시장으로 순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410억달러로 집계됐지만, 같은 기간 홍콩 증권거래소와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를 통해 중국 본토로 순유입된 자금 규모는 330억달러에 불과했다. 중국 외 아시아 지역으로의 순유입 외국인 자금이 중국으로의 순유입을 웃돈 건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이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중국은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국제결제수단으로서의 위안화 등극을 희구한다. 중국은 올 초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화하고 드디어 5월에는 ‘중국 경제 재개’(re-opening)를 선언했다. 제로 코로나 완화로 올 1월 달러당 6.7위안까지 안정화 되던 위안화는 중국경제 재개에도 불구하고 7월 초 달러당 7.2위안까지 추락했다. 가치가 속락하는 위안화가 결제수단이 될 수는 없다. 전 세계를 향해 호전적(好戰的) 메시지를 내뱉는 정치 지도자에게 글로벌 금융시장이 화답할 이유는 없다. 중국의 정치적·외교적 자승자박으로 중국 경제는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개연성이 그만큼 커졌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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