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이며 비평가인 복거일 씨를 필자는 존중한다. 지난 5월 서울에서 만나 회식을 하면서 그의 인생 경력과 예리한 통찰력과 슬기에 찬 화술에도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희유의 유니크한 문인으로서 늘 반기를 들고 역사비평에서도 '반일'을 성찰하는 복거일 씨에 필자는 동감하는 부분이 많다.

복거일 씨의 '대체역사소설'이란 SF소설에 「경성·소화 62년-비명을 찾아서」(1998년)가 있다. 소설은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저격에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흥미로운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토는 결국 6년이나 더 살면서 군부를 지배하며 제2차 대전에서 영미와 우호적 중립노선을 유지하는데 일본은 공전의 경제적 번영을 구가한다.한편 1910년 한일병합으로부터 소설 집필 당시 1987년 현재까지 일본제국의 식민통치가 줄곧 이어진다. 경성은 물론 서울이다.

그리하여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상황은 모두 일본식민지 치하라는 가상 속에서 전개하는 소설은 현재진행 중의 제악(諸惡)은 일제식민지 통치에서 유래한다는 테제를 제기하고 있다. 소설은 재미있지만 일본 식민 통치에 대한 '피해망상'에 일본을 과잉 의식하는 한국인의 집단 의식을 잘 반영했다.

필자는 이로부터 21세기 현재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는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포스트 콜로니얼 스터디스' 등 용어를 떠올렸다. 이 주안점은 세계의 식민지 주의, 제국주의 시대의 지배가 지배당한 지역, 국가에 어떤 충격을 안겨 주었나를 분석하는 것에 있다.

즉 지배자 측의 책임만 추궁하는 데 있다. 그러나 당연히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지배를 받은 측의 책임도 규명하지 않은 채 식민지 지배의 제악의 근원이라 해도 문제는 해명하기 어렵다.

'포스트' 식민지 시대는 당연히 식민지 시대의 모든 유산, 물질적·정신적 유산을 양면에서 어떻게 불식하거나 건설적으로 계승, 재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대근 교수의 노작 '귀속재연구'는 일본의 유산 없이 한국의 발전이 없었다는 포스트 식민지 한국의 현실을 면밀히 고찰 분석하였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이 남겨 준 물질적·정신적 유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귀중한 유산에 대해서는 망각하거나 등지고 있으며 혹은 실제적으로 계승하여 사용하면서도 겉으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출발하여 일본의 과거나 현재를 무조건 비판, 규탄하는 것은 어딘가 저열하고 유치하다.

필자가 가장 불가사의하게 여기는 것은 세계에서 어느 식민지보다도 한국, 대만, 만주가 계승할 우수한 유산을 물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만이 의도적으로 일본을 무시하고 비방한다. 이는 매우 슬프고 불합리한 일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라는 표현을 빌면 한반도는 '슬픈 반도', 불합리한 반도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방 후 일본의 경제적 원조를 받은 것조차도 '일본의 신식민지시대다'라고 '식민지경제침략설'이 대중과 지식인들 속에서도 유포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과연 그런가. 대답은 당연 NO!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병합조약은 정당하다'고 하는 일본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른바 '매국외교'라고 비난당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해 6월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다.

이로써 양국간의 식민지 시대나 전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 또한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다"로 상호 인정하였다. 물론 이 조약은 법적인 효력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당시 박정희 정권에 대해 국가재건을 위한 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나 한국에 돈을 빌려 줄 나라는 거의 없었다. 박 대통령은 타개책으로서 지금까지의 반일정책을 타파하고 대일국교회복을 이룩했다.

당시 일본은 8억 달러를 한국에 보상해 주었다. 물론 현재 떠들고 있는 '위안부'나 '징용공'에 대한 보상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한국 경제 기획원이 1976년 12월에 발표한 '청구권자금백서'에도 명확히 쓰여 있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의 지원에 의해 경제 최우선 국책을 세우고 고속도로, 제철, 지하철, 댐, 항만, 학교, 병원, 전신, 간탁사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일본의 자금원조와 기술협력이 오늘 한국의 기적적 발전의 기초를 닦아 주었던 것이다.

한국의 경제가 일본의 자금과 기술원조에 의존했다는 것은 국제적 상식이기도 하다. 서양의 어떤 경제 평론가는 한국의 일본 의존은 '속국경제'라고까지 야유하기도 할 정도였다.

"일본의 경제침략"하는 말은 아무 근거도 없는 허무한 주장이다. 이런 논설은 작금의 국제경제 호혜원리를 모독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가지 아주 흥미로운 현상은 한국은 고대의 신라시대부터 오늘의 민주주의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자력이기보다는 대륙중국, 섬나라 일본이란 강대국의 보호 아래서 살아온 것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잠시 불문하고 이것은 사실이 아닌가. 이같은 강국에 붙어다니는 것을 '사대주의'라 하는데, 근대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식민지적 의존증' 행동패턴이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반일'을 외치며 대일규탄을 무슨 축제라도 벌이듯 반복하면서도 결국엔 또 일본에 기술과 자금을 달라고 떼쓰는 한국인.

한미디로 이는 바로 '식민지 근성'이다. 결국 한국인은 시종 이 '식민지 근성'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로 있다. 장기간 새장 속에 갇혀 안주하던 새가 자유로운 넓은 하늘로 내보내도 또 새장이 그리워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

물리적인 의존, 정신적으로도 지금도 여전히 '식민지인'에 스스로 안주하려는 한국인들의 자주는 있기나 할까. 일본식민지라는 피해망상에서 철저히 해탈하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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