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제임스 1세의 얼스터 식민화 정책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즉위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 사람의 국왕 치하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아일랜드인들의 앞날에 큰 시련을 가져오게 된다. 이제 아일랜드인들은 잉글랜드의 영국 국교도들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들과도 대결해야 했다.

1609년 이후 제임스 1세는 휴 오닐 등 유럽 대륙으로 도주한 얼스터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잉글랜드의 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 토지는 다시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장로교도들에게 임대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아일랜드의 얼스터 지방으로 건너온 사람들 역시 켈트인이었지만 기존 아일랜드 카톨릭 교도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오늘날까지 영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의 후손들까지 누군가 그들에게 "당신은 아일랜드인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저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잭슨, 폴크, 뷰캐넌, 앤드류 존슨, 그랜트, 아더, 해리슨, 맥킨리, 테어도어 루스벨트, 태프트, 윌슨, 트루먼, 린든 존슨, 닉슨, 카터, 부시, 클린턴은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헨리 2세의 아일랜드 정복 이래 아일랜드 주민들은 켈트인과 노르만인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었지만 카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단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헨리 8세의 종교 개혁과 제임스 1세의 얼스터 식민화 정책 이후 아일랜드 거주민들은 그들의 종교에 따라 카톨릭 교도와 개신교도로 나뉘어 대립하게 된다.

영국 정부는 1160년 드 클레어와 함께 잉글랜드에서 아일랜드로 건너왔던 노르만 기사의 후손들을 옛 잉글랜드인들(The Old English)이라고 부르면서 신뢰할 수 없는 아일랜드 카톨릭 세력들 중 하나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5. 올리버 크롬웰의 아일랜드 정복

1625년 제임스 1세의 사망 후 즉위한 찰스 1세는 실정을 거듭한 끝에 1641년부터 잉글랜드 의회와의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옛 잉글랜드인을 중심으로 한 아일랜드 카톨릭 교도들은 카톨릭 교회에 대한 포용 정책을 펼쳤던 영국 국교회 중심의 왕당파가 청교도가 많은 잉글랜드 의회파에게 패배할 경우 신앙 생활의 자유를 위협받게 될 것으로 생각하여 국왕 찰스 1세를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찰스 1세와 참전 조건을 두고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헨리 8세 이후 아일랜드에 온 새로운 잉글랜드인들(The New English)과 스코틀랜드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다시 찾아오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1649년 잉글랜드 내전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고 스코틀랜드로 도망쳤던 국왕 찰스 1세는 결국 런던으로 송환되어 참수되었다.

의회파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12만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아일랜드에 상륙하여 카톨릭 교도 소유의 토지를 몰수하여 의회를 지지했던 신교도들에게 헐값에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토지를 몰수당한 아일랜드 카톨릭 지주들 중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에 한하여 서부의 코노트 지방과 먼스터 지방의 클레어 주의 토지를 대체 농지로 지급하였다.

이제 [지도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일랜드 토지의 대부분을 신교도들이 소유하게 되었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카톨릭 교도들은 소작농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도 3] 아일랜드 토지 소유권 변화

 

 

6. 윌리엄 3세의 아일랜드 정복

크롬웰의 통치 하에서 청교도적 삶을 살아 본 잉글랜드인들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1660년 프랑스로 도망쳤던 황태자 찰스 스튜어트를 국왕으로 옹립한다.

새로운 국왕 찰스 2세는 자신을 잉글랜드 국왕으로 추대해 준 크롬웰의 옛 부하들과 자신과 망명생활을 함께 했던 왕당파들의 눈치를 보면서 잉글랜드 의회에서 토지정착법(Act of Settlement)를 통과시키도록 한다.

그 내용은 크롬웰을 지지했던 의회파 신교도들이 무고한 사람들로 판별된 왕당파 카톨릭 교도 500여명에게 자신이 받았던 아일랜드의 토지를 돌려주는 대신 반환한 토지와 동등한 시가의 다른 토지를 획득한다는 것이었다.

토지 반환과 관련된 아일랜드의 모든 사람들이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중 1685년 찰스 2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 제임스 2세가 즉위하는데 새로운 국왕이 카톨릭 교도라는 사실이 아일랜드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희망을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우려를 가져다 주었다.

제임스 2세는 아일랜드 내 주요 요직을 카톨릭 교도들로 채우고 크롬웰이 의회파 신교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 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 하고 있었다.

1688년 잉글랜드 신교도들이 제임스 2세를 더 이상 국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한 후 그의 사위인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William of Orange)을 새로운 국왕 윌리엄 3세로 추대했다.

1690년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도망쳤다가 여전히 자신을 국왕으로 인정해 주던 아일랜드에 상륙하여 윌리엄 3세와 보인강 유역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였다.

1691년 제임스 2세와 윌리엄 3세는 전자를 지지하던 아일랜드 군인들이 유럽 대륙으로 떠나기로 하는 대신 후자가 아일랜드 카톨릭 교도들의 생명과 재산 및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보장하기로 하는 내용의 리머릭 조약(Treaty of Limerick)을 체결한다.

7. 개신교 패권주의 (The Protestant Ascendancy)

윌리엄 3세가 아일랜드 카톨릭 교도들을 보호하겠다고 맹세했지만 잉글랜드를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국왕이 아니라 의회였다.

신교도들이 대다수인 잉글랜드 의회에서 보기에 아일랜드 카톨릭 세력은 언제나 잉글랜드 국왕의 적들과 협력했던 반역자들에 불과했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들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제한선거 하에서 아일랜드 의회 역시 크롬웰 이후 아일랜드 토지의 대부분을 보유하게 된 신교도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잉글랜드 의회의 영향력 하에 있던 아일랜드 의회가 카톨릭 교도들과 국교회가 아닌 기타 개신교도들을 차별하는 일련의 법령들을 제정하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1704년의 카톨릭차별법(The Popery Act)이다.

카톨릭 교도의 토지매입 제한 및 해외여행 허가제, 카톨릭 교도와 개신교도의 결혼 금지 등 일련의 차별적 입법이 계속되자 아일랜드 카톨릭 대지주들이 하나 둘씩 국교회로 개종하기 시작한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의회가 합병하여 영국 의회가 만들어졌다. 뒤이어 1720년 영국 의회가 아일랜드의 입법권을 갖는다는 내용의 법령이 제정되었는데 이는 아일랜드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잉글랜드인들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인들도 아일랜드의 운명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영국 의회는 아일랜드 경제에 불리한 내용의 법안을 제정하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아일랜드의 토지를 대부분 소유하고 있던 새로운 잉글랜드인들은 이 조치에 격분하였지만 본국의 도움 없이는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저항 운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1729년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로 유명한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이라는 글에서 영국 의회를 상대로 "아일랜드의 갓난아기들을 푸줏간에 팔아버려서 잉글랜드인의 식탁에 오르도록 하자"는 등 경멸과 독설을 날렸던 것이 거의 유일한 저항이었다.

잉글랜드에서 파견된 아일랜드 총독들은 해당 법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하면서 '의회의 폭주를 막아줄 사람은 아일랜드 총독뿐이다'라고 생각하던 카톨릭 교도들과 '아일랜드 총독이 내 토지를 노리는 카톨릭 교도들을 막아줄 것이다'라고 기대하던 개신교도들 모두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식민지 주민들을 차별적으로 대하면서 서로 대립하게 만든 후 이들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는 영국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방식은 잉글랜드가 아일랜드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노하우이다.

다만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경우 13개 주가 단결하여 영국에 대항하였기에 분할통치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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