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율 시민기자

 

권익위원장 전현희는 6월 27일 임기만료를 앞두고 자신을 ‘통영의 딸’로 부르며 남해 바다를 보호하고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를 저지하기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녀는 휴식은 사치라며 앞으로 통영에 공천을 받아 정치에 뛰어들 공산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근무일 중 95%를 제대로 출석하지 않은 기록이 있으며, 이에 대해 감사원이 감사를 하자 감사원 앞에서 일인 집회를 하며 천박한 정치 쇼를 벌였다. 

우리는 또다른 ‘통영의 딸’에 얽힌 슬프고 애절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파독 간호원 신숙자 씨는 가난한 독일 유학생 오길남 씨와 독일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오길남 씨는 박사학위 취득 후 윤이상의 꼬임에 넘어가 월북을 하게된다. 신숙자 씨는 그곳이 어디라고 가느냐며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남편의 황소고집에 어쩔 수 없이 두 딸과 함께 지옥의 동토(凍土)로 향하게 된다.   
                    
1985년 12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비쩍 마른 화동(花童)을 보는 순간 신숙자 씨는 두 딸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같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후 북한에서 민영훈이라는 가명으로 선전방송을 하던 오길남 박사는 독일 유학생 2명을 유인해서 북으로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때 통영의 딸은 다음과 같이 오박사에게 말한다. 

“내 사랑하는 딸들이 짐승처럼 박해받을망정 파렴치하고 가증스러운 범죄 공모자의 딸들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지 말고 당신 하나만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우리 몫을 살아 달라. 나는 애들에게 아버지는 바보스러웠지만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말하겠다. 그 범죄 공모에 절대 가담하지 말라! 도망쳐라!”고 말했다. 

어리석은 한 남자에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이 얼마나 진실로 위대한 여인인가? 비록 자신과 사랑하는 두 딸이 수용소에서 짐승만도 못한 극한의 고통을 겪을지언정 또 다른 가족을 이 지옥으로 데려오는 범죄에 가담하여서는 안 된다고 남편에게 탈출을 권한 여인, 신숙자 씨는 바로 1942년 통영에서 태어나고 통영에서 자랐으며 통영초등(45회) 통영여중(9회)을 졸업한 ‘통영의 딸’이었다. 

오길남 박사는 독일로 가던 중 코펜하겐 공항에서 탈출한다. 그리고 혜원 규원 자매와 아내 신숙자 씨는 1987년 요덕수용소에 갇히는데 이때 혜원은 11세, 규원은 9세였다. 2012년 북한 당국은 신숙자씨가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고 UN에 신숙자씨의 소식을 전하였다. 

또다른 ‘통영의 딸’은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압살하려는 인민민주주의 반역세력에 빌붙어 권익위원장 자리를 이용하여 북의 간첩으로 의심받는 문재인을 우두머리로 하는 공산주의 주사파 세력에 부역하였다. 권익위원장 자리를 얼굴에 철판깔고 끝까지 유지하며 전 정권의 이념에 충실한 결정을 내리면서 철저히 공산당 세력을 도왔다. 수많은 예가 있으나 2020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휴가 불법 연장의 수사와 관련하여 추장관의 직무가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통영의 딸 운운하면서 은연중에 공천을 요구하고 있다. 

통영의 딸, 신숙자 씨는 대한민국의 딸이었던데 반하여 또다른 통영의 딸 전현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딸이었다. 신숙자 씨가 고귀한 자기 희생을 보여준 데 반하여 전현희는 파렴치하고 천박한 권력욕을 보여주었다. 역사는 비록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나 동토(凍土)의 왕국(王國)에서 비운의 일생을 마쳤으나 ‘위대한 통영의 딸’로 신숙자 씨를 기억할 것이다. 반면에 전현희는 ‘사악하고 파렴치한 통영의 딸’로 기록될 것이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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