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100여년 전 동아시아의 근대사는 시초부터 일본과의 복잡하고 깊숙히 얽힌 관계망 속에서 전개된 것을 더 이상 언급할 여지도 없다. 특히 조선반도는 지리적 관계로 인해 일본과의 영향관계는 더욱 두드러진다

1905년을 전후로 일본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게 된 조선은 불가피하게 또는 숙명적으로 일본의 정치, 사상, 경제, 문화, 학문 제반에서 심대한 영향의 그물 속에서 이 모든 것이 전개된다

조선의 국어인 조선어(한글)에 대한 연구도 사실 의외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일본이 선행해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기 중 전면 전쟁시기(1937-45)의 수년을 빼고는 일본이 조선어를 말살했다는 정설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조선시대 한문 숭상이라는 절대적 관념 하에 언문(한글)이 경시당한 근대 초기에 이르러서도 조선인 자체의 조선어 연구는 오히려 일본인 연구자보다 뒤쳐졌던 것이다.

이미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썼다시피 조선에서는 19세기 말부터 한자, 한글의 국한혼용의 문장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는 원래 일본의 근대적 대사상가, 계몽가, 교육가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제안한 것이다. 그래서 이 문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일본에서 우선 주조한 한글 활자를 사용해 인쇄했다. 즉 1886년 '한성순보' 신문이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한글로 쓴 책인 유길준의 저작 '서유견문'이 1895년이니 그보다 근 10년이나 뒤지고 있다. 1886년 '한성순보'는 '한성중보'로 개칭하며, 문체의 창안자는 한성순보의 창간자인 이노우에가 후쿠자와에게 소개한 노유학자라고 전해진다.

그뒤 조선 지식인들의 호응을 받아 국한혼용과 한글이 근대학교교육에도 도입되어 점차 대중 속으로 보급되게 됐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정설로 알고 있던 '일제 36년 동안 조선어를 말살당했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면이 많다.

일본의 근대 조선어연구의 제일인자 오구라 신페이(1882-1944)의 저작 '조선어학사'에 이런 기술이 나온다.

"종래로 조선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사전은 운서(韻書, 중국의 음운관계의 저작)는 옥편 류에 제한돼 있으며, 언문(한글)을 기초하여 어휘를 배열하고 그에 주석을 단 진짜 의미의 사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근년에 이르러 겨우 이런 종류의 근대식 사전이 편찬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인이 만든 사전이 없는 대신에 외국인이 편찬한 조선어 사전은 19세기 말에 이미 출판되었다. 1880년에 프랑스 선교사가 파리에서 상재한 것이 있다. 그후 1890년에는 H.Q 앤드위드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1897년에도 영국인 게일이 요코하마에서 조선어 사전을 편찬 출판했다.

한국의 학자 김사엽의 저작 '조선의 풍토와 문화'에 따르면, 1874년의 푸티루로에 의한 러한사전에서부터 1920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어 사전에까지 등장한 근대적 사전은 러시아어 1권, 라틴어 1권, 불어 3권, 영어 8권, 합계 13권이다.

일본인 연구자에 의한 조선어 연구는 1872년 츠시마이즈하라에 조선어학소를 설치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듬해 부산으로 이전한 뒤 조선어 연구는 일본인이 독차지했다고 한다. 특히 근대어표기 원칙의 확립에 많은 업적을 쌓았다. 알려진 것만으로도 가나자와 쇼자부로(1872-1967), 오구라 신페이 등 학자들이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와 가나자와, 오구라 등 학자들은 조선인 학자들에게 큰 지적 자극을 주었다. 그래서 조선의 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조선어 연구에 관심을 갖고 실행하게 된 때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가장 본격적인 '조선어자전'은 1911년에서 1920년 3월까지 조선총독부에 의해 완성된다. 조선인 학자가 본격적으로 만든 한글사전인 '조선어자전'은 1939년 문세영이 편찬 출간한다.

사실 한글을 조선의 전국민에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이다. 조선어는 각 도마다 방언이 심해 그 8대방언을 표준어제정에 넣을 것인지 고심한 조선총독부는 근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하는 조선어 교육을 통해 조선에 보급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 문자인 한글은 철자법이 번잡했고 근대 국어, 국문으로서의 언어 체계화가 완성되지 못했다. 또한 교과서도 적었다. 국한혼용체도 사용 역사가 너무 짧았다. 이리하여 총독부에서는 1911년 7월에 '언문철자법연구회'를 발족시켜 양국 학자를 모아 연구, 보급에 노력했다. 그리고 '보통학교통언문철자법'을 결정, 교과서로 채택했다.

그리고 1911년 8월 조선어교육회가 탄생되고 조선어교육령에 의해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학교에 '조선어 및 한문'의 매주 수업시간을 규정짓기도 했다.

당시 총독부학무과장 로게즈는 그의 저서 '조선시정사'에서 "일본인 제자에게도 같은 조선어과목을 설치했다"고 증언한다. 소중고교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에게 모두 조선어를 필수로 요구했던 것이다. 일본이 조선어를 배제한 것은 전면전쟁시기(1937-45) 등 몇년 사이였다. 이것이 역사의 진상이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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