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우리가 평소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전통(傳統)'이란 단어는 그 내용만큼 유구하지 않다. 사실 100여년 전 서구 근대어(영어)의 '문화의 계승성'이란 의미의 단어인 'tradition'을 일본에서 '전통'이란 일본제 한어로 창작하여 그것이 중국과 조선에 전파된 것이다.

그러니 전통이란 관념이 생긴 역사는 아주 짧아서 겨우 100여년이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이란 한 민족이나 사회, 단체가 유구한 역사를 통해 길러내고 전승되어 온 신앙, 풍습, 제도, 사상, 학문, 예술 등 역사적 존재감의 총칭이다. 그것은 인간의 행동, 언어, 사고 및 관습에서 표현되며 특히 이런 것을 중핵으로 한 정신 양상을 가리킨다

서구근대어 'tradition'은 왕후(王侯)의 혈통이나 어떤 인물의 한정된 계보에 계승되는 습속을 뜻했는데 식민지에서의 이민족과의 접촉, 또는 각국이 근대 국민국가로 편성되는 과정을 통해 '문화의 계승성'이란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전통'이란 다시 말해서 '근대'의 대립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근대'의 대칭 또는 대립적 의미에서 발명시킨 개념이다. 문화내셔널리즘의 일환으로 자민족, 자문화의 역사적 자신감, 우월성 내지 그런 것을 훈육하는 '전통'이 발명되었다.

'전통의 발명(invention of tradition)'이란 언설을 제기한 곳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New-Left-Review 잡지를 중심으로 전개한 역사학에 있어서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였다.

'전통'이라 하면 우리는 머나면 옛적부터 계승되어 내려왔다고 생각하기 일쑤이지만, 사실은 근대에 들어서서 민족의 독자성, 아이덴티티를 언급하기 위해서 새삼스럽게 만들어진 (즉 창조된) 풍속, 습관이 많다고 '문화연구' 성과가 규명했다.(스즈키 사다미)

실례를 들어 보자. 스코틀랜드 북부 하이랜드 지방의 민족복장으로서 알려진 킬트 즉 남성이 정장으로서 착용하고 있는 옷은 실제로는 19세기 런던의 재봉소에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부족 사회에 의례 제도나 복장 등이 새롭게 제작됐다고 한다. 이밖에 근대 도시 생활에서도 5월 1일에 벌어지는 노동자의 축전으로 불리는 메이데이(MayDay) 역시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의 8시간제 노동 요구 동맹파업을 기념하여 1889년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서 5월 1일을 국제 노동의 축전으로 제정했다.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전통'의 '발명'에 솔선 착수한 나라였다. 서양 제국(諸國)을 따라배워 '전통'의 형성을 제도적 및 조직적으로 진행한 것은 메이지 중엽 제국헌법이 제정되고, 교육칙어가 창출되고 '국어', '일본문학'이 재편성되는 1890년 전후라고 한다.

스즈키 사다미 교수의 '일본의 문화내셔널리즘'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전통의 발명'은 여태까지 신분, 계층 또는 지방마다 지니고 있던 문화의 여러 양상을 국민이 자긍심을 갖게 하고 계승해야 할 전통으로서 즉 국민문화의 형태 만들기였으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화 제요소가 '전통'으로서 재편성(re-organisation)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따라서 일본의 오래된 습속이라 불리는 신도의 양식으로 거행되는 결혼식이나 새해 신사 첫 참배(하츠모우데, 初詣) 등의 습관이 메이지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과 달리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중후한 '상고(尙古)' 사상을 원점으로 하는 사상 체계, 유학이 재조직화되면서 사대부 계층의 학문 및 가치관으로서 성립되어 긴 세월 보전해온 경위에서 이런 '전통'으로 인해 서양의 지식을 실학 중심으로 경시하고 그것이 근대화 추진의 장벽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무사 계층에서 학문 내부의 다양화를 이루면서 에도 시기에는 중국 문화에 대항하는 일본 독자적 문화를 상정한 '국학'이 형성되었으며, 서구의 충격으로 화란의 의학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 수용되고 19세기 중반에는 영국의 학문이 상해를 경유하여 수입되었다. 그러므로 서양적인 '전통의 발명'에 대한 재편성에 견고한 장벽이 없었고 중국과 조선보다 용이하게 전통의 발명에 착수, 추진할 수 있었다.

'전통'의 관념이 중국, 조선보다 일찍 수용되고 이른바 근대 '국어', 문학, 종교, 역사라는 문화 전반에 '전통의 발명'이 이루어졌다. 이런 문맥에서 근대화는 서양 근대 문화의 수입인 동시에 자국 문화, 전통 문화의 발명이 공시적으로 병진하는 과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21세기의 오늘날 전 지구적 규모로 파급되고 잇는 이른바 '글로벌' 시기 자국 문화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하려는 지역화도 공시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이러한 '전통'의 '발명'이 재편성되는 도경이기도 하다. 국민시기 중국에서 제기됐던 신생활운동이나 근년 중국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여러가지 제기법, 이념(이를테면 오강사미五講四美 둥)들도 중국의 전통 문화 '발명'의 일환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이 자국민의 문화적 아이덴티티와 국위 발양에 도움된다면 좋은 '전통'이 될 것이 아닌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실 한국의 '전통문화'로 자리매김된 단순신앙, 화랑도, 검도, 다도, 유도, 향가 등도 사실은 근대 일본문화와 조우하면서 일본의 영향으로 그에 의거하여 본 떠서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 '한국 전통문화는 일본의 본을 떠서 만들어진 것이다'에서 상세히 쓰기로 하겠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